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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민속박물관에서 옛날 썰매를 본 적 있었다. 아빠가 어릴 적 탔다던 썰매였다. 아빠께선 "겨울이 되면 날마다 저 썰매 하나로 종일 밖에 나가서 놀았다. 쉬는 날에는 아침에 나가 저녁밥 먹을 때까지 놀다가 들어왔다"고 말씀하셨다.

 

그 썰매를 정말 정말 타보고 싶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논이나 강이 잘 얼지 않아서 썰매를 탈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곡성에 썰매장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옛날 아빠께서 타던 썰매를 탈 수 있다.

  

지난 토요일, 가족과 함께 곡성에 있는 썰매장을 갔다. 썰매장은 섬진강 기차마을 옆에 있었다. 논 같기도 하고 주차장 같기도 한 곳에 물을 채워 썰매장을 만들어 놓았다.

 

 

바람이 정말 매서웠다. 이런 걸 보고 '칼바람'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차가웠다. 썰매장의 얼음은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만약에 얼음이 깨지더라도 발목 깊이 밖에 안되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썰매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얼음에 미끄러질 아래에는 스케이트용 날이 붙어 있었다. 아빠 어렸을 땐 창문틀을 빼내거나 굵은 철사로 붙였다고 했는데, 거기에 비해 상당히 세련된 썰매였다.

 

썰매를 이끌 스틱도 두 개씩 골랐다. 모든 준비가 다 돼 있어 편했다. 우리는 준비돼 있는 썰매와 스틱을 골라 썰매장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예슬이와 내가 머뭇거리자 아빠께서 시범을 보여 주셨다. 아빠께서는 썰매장에 들어가자마자 마치 어제 타 본 것처럼 엄청 잘 타셨다. 타는 게 쉬워 보였다. 나도 얼음 위를 시원하게 가르며 쌩-쌩- 잘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썰매에 앉아 타보니 바깥에서 보던 것과 달리 잘 나가지 않았다. 내 마음은 벌써 저만치 쌩-쌩- 나갔지만, 현실의 내 몸은 쓱-쓱-, 조금 가다 멈추고 조금 가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열심히 탔다. 스틱도 빨리빨리 움직였다. 아빠께서 우리보고 몸을 앞으로 숙인 듯 하며 타라고 하셨다. 그래야 뒤로 넘어가지 않고 안전하게 탈 수 있다고 하셨다.

 

아빠의 말씀대로 자세를 고쳐 잡고 타니 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 썰매를 타다가 시합도 했다. 아빠와 나, 예슬이 이렇게 셋이서...

 

 

시합 결과 승리는 나의 것이었다! 예슬이도 잘 탔지만 나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아빠는 일부러 양보한 것 같았는데, 아니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이 진실이길 빌었다.

 

어찌나 열심히 얼음판을 누비고 다녔을까. 서서히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중엔 스틱을 휘젓기에 힘이 부쳤다. 그래서 줄이 달린 썰매를 하나 가지고 와서 예슬이와 서로 끄집어 주기로 했다.

 

예슬이도 좋아했다. 내가 먼저 예슬이를 태웠다. 처음에는 제대로 태워주다가 장난기가 발동해 줄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한 번은 줄을 확 잡아 움직였더니 예슬이가 빙판에 엎어졌다. 그러기를 몇 번...

 

 

예슬이가 화가 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역할을 바꾸자면서 나보고 앉아서 타라고 했다. 키득 키득... 예슬이가 썰매를 끄집으면서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애를 썼다. 갑자기 줄을 당겨 방향을 돌려댔다.

 

하지만 난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예슬이가 방향을 돌리려고 하면, 그 방향의 줄을 잡아당겨 완만히 돌게 했다. 나는 한번도 빙판에 엎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아빠께서 2인용 썰매를 가져와서 예슬이와 나를 한꺼번에 태워 주셨다.

 

 

날씨가 너무 추웠다. 썰매의 특성상 몸은 움직이지 않고 팔만 열심히 젓다 보니 더 추웠다. 컵라면을 사서 뜨거운 국물로 몸을 덥혔다. 장작불 옆에 서서 먹는 컵라면이 정말 맛있었다.

 

아빠께서는 여전히 썰매를 타셨다. 어린 우리보다도 더 재미있게 타셨다. 아마도 30년도 넘어 어린 시절에 타셨던 썰매의 그리움이 있으신 것 같았다. 아빠께서 추억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즐거웠다.

 

아빠께서 꼭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썰매를 타며 웃음 짓는 모습도 순수한 아이의 해맑은 미소 같았다. 나도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서 빙판에서 놀던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 된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이슬비 기자는 광주 동신여자중학교 3학년입니다.


태그:#썰매, #썰매장, #기차마을, #곡성,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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