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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도착한 지 사흘째 우리는 오전 9시에 대학생들과 마을로 나갔다. 여학생들과 나는 선교사님의 배려로 이곳 전통 의상인 '살와르'를 빌려 입었다. 살와르는 엉덩이를 가리는 긴 윗옷과 머리에 스카프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여인들은 반드시 엉덩이를 가리는 헐렁한 옷을 입어야하고 때에 따라서는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기도 하지만 주로 목을 둘러싸고 늘어뜨리고 다니기도 하였다. 보수적이며 남·여 차별이 심한 이곳 산티니게탄에서 여자들은 항상 이런 복장으로 다녀야한다.

우리들은 그림 그릴 종이와 크레파스를 준비해서 마을의 공터에 돗자리를 폈다. 야외 수업할 준비가 되자 우선 노래에 맞추어 아이들과 율동을 했다.  

 

 "모두 다 콩콩콩 뛰어라~!"

 "모두 다 훨훨훨 날아라~!"

 "모두 다 쿵쿵쿵 굴러라~!"

 "모두 다 빙빙빙 돌아라~!"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아이들도 음악소리에 맞춰 몸도 움직이고 친구들과 따라하면서 키득거리기도 했다. '콩콩콩' 뛸 때는 함께 뛰어 오르고 '빙빙빙' 돌 때는 양팔을 벌리고 웃으며 '빙빙빙' 돌기도 했다.

 

얼마나 즐거워하며 빙빙 도는지 지켜보는 우리들도 함께 즐거웠다. 드디어 아침 율동과 기도를 마치고 펼쳐진 돗자리에 앉았다. 어디선가 하나 둘 씩 아이들이 모여들더니 처음에 20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율동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수를 세어보니 어느새 63명이나 되었다. 인구 밀도가 중국 다음으로 높다는 인도는 이렇게 교육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실감나게 해 주는 순간이었다.

 

오늘의 교육은 '그라타쥬!' 이전에는 그림 그리고 색칠하는 것이 전부였는지 새로운 교육에 고학년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범을 바라보았다. 먼저 도화지에 각종 색으로 색을 입힌 뒤에 검은 색으로 덧칠하고 거기에 이쑤시개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 멋진 '그라타쥬'가 완성된다. 고학년의 아이들은 단순한 그림보다는 '그라타쥬'를 무척 재미있어 하였고 어린 아이들은 밑그림을 그려주면 색칠하기를 즐겼다.

 

4세 미만의 영아들은 크레파스를 잡을 힘이 아직 없어서 같이 손을 잡고 그림 그리기를 도와주기도 하였다. 마을에서는 큰 구경거리인 듯 동네 주민들도 하나 둘 씩 모여들고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과 우리들을 지켜보았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가 있는 학교는 유치원 교육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학생들 중에는 결혼 할 나이가 된 듯한 처녀들도 간혹 보였는데 한 번도 교육을 받지 못한 듯했다. 우리가 도화지와 색연필을 주자 신기해하며 그림그리기를 즐기는 모습이 우리를 무척 안타깝게 만들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10분 거리의 학교로 돌아왔다. 새벽에 일어나서 소와 함께 논을 갈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논매기를 마치고 인근의 공터에서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손으로 밥을 먹고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지 않고 물로만 씻으며 자연과 운명에 순응하며 자신의 신을 섬기며 살아가는 그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들은 그 자체가 자연이 되고 순리가 되고 있었다.

 

오후에는 아이들에게 준비한 영상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감상하며 영어를 익히는 시간 ! 오후 2시가 되자 오후 수업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운동장에 몰려들었다. 제 1팀은 준비된 영화영상을 보여주었다. '쿵후팬더'였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아이들도 흥미로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수업 시간 중간에도 인근마을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하나 둘씩 모여들기도 하였다.

 

제 2팀은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을 가졌다. 피구시합이었다. 선수들은 공을 받아 자신의 팀에 패스하기도 하고 공에 맞지 않으려고 요리저리 피해다니며 깔깔깔 웃고 즐거워하였다. 남자아이들이 대부분 이 경기에 참가하였는데 운동 신경이 아주 좋았고 게임을 통해 스포츠를 즐기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제 1팀에서 문제가 생겼다. 교실과 학교 전체가 정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기가 아예 없던 이 마을에 학교를 세우면서 전기를 끌어 왔는데 그 전기가 종종 이렇게 끊어지기도 한단다. 60여명의 아이들이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정전이 되자 교실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울어버리는 아이, 동생과 뒹구는 아이, 여기 저기를 마구 돌아다니는 아이들! 결국 모두 밖으로 나와 교실 뒤 공터에서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도 아이들은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나누어 주자 동물 모양의 그림도 그리고 꽃과 나무도 그릴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명의 봉사자들의  손길이 지나쳐 간 학습의 효과일 것이다.

 

 

정신없던 오후 수업을 마치고 조회를 마치고 아이들은 사탕 하나씩을 받아들고 학교 교문을 나섰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 작은 사탕하나 과자 하나를 이들은 얼마나 감사히 여기고 좋아하는지 모른다.

 

지난 번 공항에서 잃어버린 컴퓨터가 들어 있는 수하물 속에는 인스턴트 커피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흔히들 마시는 인스턴트커피! 우리는 생각 없이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심지어 커피전문점에서는 밥값에 버금가는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그런 커피 한잔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것인지 모른다. 오늘따라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감사하지 않은 것은 없다.

 


태그:#야외수업 , #정전 , #하누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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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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