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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당신 아들이라면, 이렇게 두었겠어요?"에서 이어집니다.

 

이렇게 억울하고 한이 맺힌 재훈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승일이 어머니는 말을 받았다.

 

"아들이 보고 싶고 생각이 나면 고마운 부대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곤 했지요. 우리 아들에게 베풀어준 관심과 병사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이렇게 전화를 주고받다가 어느 날인가 우리 아들이 근무하던 부대를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이런 우리의 부탁을 듣고 행정관은 바로 부대장님의 허락을 받아서 방문할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해 주셨어요. 부대장님이 바뀌셨는데도 이런 사실을 아시고선

'주승일 병장의 부모님을 7중대의 부모님으로 모시겠다. 곧 부대 재배치가 이루어질 예정이니까 재배치되기 전에 와서 보시게 해 드려라'는 명령이 내려 졌다는 것이었어요.

 

2009년 9월 25일 부터 27일까지 2박 3일간의 휴가를 얻은 셈이지요, 군부대로 가는 휴가 말이예요. 우리는 며칠 동안 장사를 쉬기로 하고 다녀올 준비를 하였지요. 2박3일 휴가를 얻은 것이지요. 우리가 장사를 시작한 이래로 처음으로 문을 닫고 쉬는 일이지만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니 조금은 서글펐지만, 이제 가버린 자식보다 더 내 자식 같은 장병들에게 무엇인가 해주고 싶었어요.

 

 

"뭘 가져갈까?"

"우리가 직접 만들어 주기로 하자."

 

이렇게 생각을 한 우리는 요리에 쓸 고기만 200근을 사고 각종 재로들을 사다 놓고 보니 한 차가 가득했지요. 우리가 도착하자 바로 부두에 나온 차량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어요. 내 아들이 근무하던 토치카와 내 아들이 자던 내무반도 가보고, 내 아들과 함께 하던 내무반 친구들도 만나서 이야기도 들었어요.

 

이렇게 아들의 흔적을 돌아본 우리는 바로 장병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할 준비를 하였어요. 우리의 뜻을 말했더니 장병들의 가족이 되시는 분들이 모두 나오시는데, 꼬마 아기의 손목을 잡아끌고 나오기까지 하였어요. 

 

우리가 가져간 것 말고도 더 필요한 것들은 나가서 장을 봐와야 했어요. 이렇게 우리는 장병들이 밖에 나오면 먹고 싶다는 자장면과 탕수육도 푸짐하게 만들었죠. 깐풍기, 유산슬, 양장피도 푸짐하게 만들어서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어요. 

 

음식을 먹는 시간에 정말 잘 먹어주어서 기뻤어요. 부대장님은 병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여서 기념사진을 찍었더니 글쎄 이렇게 만들어서 보내주셨어요. 우리를 자기 부대의 아버지, 어머니로 모시겠답니다.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 모습입니까?

 

 

이렇게 우리나라 최북단 백령도에서 가장 북쪽 두무진 항에서 2박 3일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려는데 이런 세상에 이런 대접도 있답니까?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양쪽에 도열(군인들이 쭉 늘어서서)  우리 부부를 포옹해주는 병사도 있고 거수경례를 하는 병사 모두들 이렇게 듬직하고 멋진 아들들이 있을까 싶었어요.

 

마지막 맨 끝의 병사의 손에는 제법 묵직한 봉투가 들려 있었어요. 전체 부대 장병들이 직접 쓴 감사인사의 편지들을 모은 것이었어요. 이것 좀 보세요. 이렇게 정성껏 쓴 편지들을 받아가지고 오면서 내내 배 안에서 읽느라고 언제 인천에 도착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어요.

 

이렇게 부대를 다녀 온 뒤로 부대장님께서 이 사진을 만들어 보내주셨어요. '한번 해병은 천국에서도 해병'이라는 구호를 써넣은 이 사진은 사실은 우리 승일이가 왼쪽 끝에 있던 사진이래요. 그런데 이렇게 가운데로 옮겨서 만든 사진인데 이 사진만 보면 부대장님의 정성이 생각나고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2009년 어머니날에는 장병들이 와서 깜짝 쇼를 보여서 점심 드시러 오신 손님들이 너무 좋아들 하시고 놀라기도 하였어요. 승일이의 첫 번째 제일이 되자 부대 장병들을 휴가를 보내어서 들르게 해주었어요. 그래서 부대 친구들이 승일이 제사를 함께 지내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갔어요.

 

이렇게 내 자식은 죽었지만, 백령도의 해병대에서 다시 찾은 자식들이 늘 외롭지 않게 해주어서 더 자랑스럽기만 해요. 이렇게 신경을 써주신 전황기 대대장과 행정관  장원진님의 배려가 너무 감사해요. 이 고마운 부대장님들께서 다들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셨다는데 꼭 그분들의 이름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지난 여름에는 장병들을 위해 커피 같은 것이라도 보내드리고, 디지털카메라를 하나 사서 보내드렸어요. 부하장병들을 아끼시는 분들이니까  내 자식의 사진을 만들어 주셨듯이 우리 장병들 멋진 모습 찍어서 올려주어서 부모님들이 보실 수 있게 해 드리라고 말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주승일 군의 아버지 주승모 님께서는 국방일보에 '다시 찾은 내 아들 해병'라는 글로 기고해서 장병문예란에 실리기도 하였고, 11월에는 새로 바뀐 이상훈 장군과도 면담이 이루어지는 등 아들이 근무했던 부대와 부모님의 관계는 끈끈하게 이어져 오고 있단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서울포스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해병대, #고주승일병장, #부모님, #대신얻은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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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아동문학회 상임고문 한글학회 정회원 노년유니온 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한겨레<주주통신원>,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지킴이,꼼꼼한 서울씨 어르신커뮤니티 초대 대표, 전자출판디지털문학 대표, 파워블로거<맨발로 뒷걸음질 쳐온 인생>,문화유산해설사, 서울시인재뱅크 등록강사등으로 활발한 사화 활동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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