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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24 한국민속촌. 장독대 옆에 자리하고 있는 터주가리. 집안은 관장하는 터주신을 모신 신표이다.
▲ 터주가리 2009, 1, 24 한국민속촌. 장독대 옆에 자리하고 있는 터주가리. 집안은 관장하는 터주신을 모신 신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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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각 가정에서는 많은 신들을 모시고 있다. 이렇게 집에서 모시는 신을 통틀어 말할 때에는 '가신(家神)'이라고 이야기 한다. 집안에 이렇게 많은 신들이 있는 이유는 가내의 안과태평과 풍농이나 풍어, 혹은 아이들의 건강과 부귀공명 등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가신이 있다 보니, 세시별로 그 모시는 시기나 방법도 달랐다.

우선 집안에 있는 많은 가신들을 나열해 보면 재미가 있다. 대문에는 '수문장'이 지키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마구간에는 '우마대신'이 있고, 우물에는 '용왕대신'이 있다. 마루대청에는 '성주대신'이 집안을 지키며, 안으로 들어가면 시렁 위에는 '조상'이 버틴다. 안방 벽에는 '삼신할미'가, 부엌으로 들어가면 '조왕대신'이 있다. 집 뒤편으로 돌아가면 장독대에는 '터줏대감'이 있으며, 굴뚝에는 '굴대장군'이 자리한다.

2004, 9, 5 한국민속촌. 터주가리는 짚으로 가리를 만들고 그 안에 터주단지를 넣어둔다
▲ 터주가리 2004, 9, 5 한국민속촌. 터주가리는 짚으로 가리를 만들고 그 안에 터주단지를 넣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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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 직능이 다른 많은 가신들

왜 이렇게 다양한 신들이 집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들이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살아가는 동안 닥칠 수도 있는 우환을 막아내, 탈 없이 편한 세상을 살자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집안에 있는 많은 가신들은 각각 그 직능도 다르다.  

이 중에서 집안 살림을 관장하는 주부들이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신은, 아무래도 부엌에 자리한 '조왕대신'과 집 뒤편 장독대 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터줏대감'일 것이다. 터줏대감은 '터주신' '텃대감' '후토주임' '토주' 등 많은 이름으로 불렀다. 이 터줏대감이 좌정하고 있는 신표가 바로 '터주가리'이다.

2005, 2, 9 한국민속촌. 짚을 위편을 묶고 아래는 치마처럼 펼친다. 그리고 위에 모자를 씌운다.
▲ 터주가리 2005, 2, 9 한국민속촌. 짚을 위편을 묶고 아래는 치마처럼 펼친다. 그리고 위에 모자를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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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줏대감'이란 터를 관장하고 있는 신이라는 이야기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는 '쌀과 베를 오쟁이에 넣어 부엌 뒤편에 달아두며, 비단을 사와서 그 척두를 잘라 볏짚으로 신탁에 주렁주렁 매달아 마치 국수가게의 사지모양과 같이 만든다'라고 소개를 하고 있다.

집안의 주부가 주관하는 '터주고사'

터주신을 모시고 있는 신표인 '터주가리'는 집 뒤편 장독대 옆에 자리한다. 이 터주가리의 형태는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터주가리의 일반적인 형태는 짚을 위편에 묶고, 아래를 치마처럼 넓게 펼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작은 단지를 넣어 둔다. 이 단지 안에는 새로 추수를 한 볍씨나 쌀을 넣어둔다.

터주신을 모시는 방법은 가을에 추수를 마치고 나면, 짚을 새로 갈아준다. 그리고 단지 안에 있는 쌀을 꺼내 빻아서 메를 짓거나 떡을 만든다. 이렇게 떡을 만들거나 메를 지을 때는 집안 식구들이 이것을 다 먹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이유는 복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사고 때문이다.

2004, 1 수원시 지동. 터주단지 안에는 가을에 추수를 한 볍씨나 쌀을 넣어둔다
▲ 터주가리 2004, 1 수원시 지동. 터주단지 안에는 가을에 추수를 한 볍씨나 쌀을 넣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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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주가리에서 꺼낸 볍씨나 쌀을 이용해 시루떡을 만들어 먼저 터주가리 앞에서 간단하게 비손을 한 다음 집집마다 나누어 먹기도 하는데 이렇게 나누는 풍습은 모두 우리의 공동체에서 나온 것이다. 내 집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터주대감의 복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터주가리에서 꺼낸 쌀로 지은 '가을떡'은 공동체의 미학

추수가 끝나는 음력 시월을 상달이라 하여 날을 잡아 제를 올리는데, 터주 앞에 짚을 '십(十)' 자로 놓고 그 위에 정화수 한 그릇을 바친 후 절을 올리고 비손을 한다. 터주고사는 부녀자가 주관자가 되어서 지내는데, 평택시 이충동에 거주하는 주부 변경순에 의하면 음력 10월이 되면 단지 안에 볍씨를 새로 집어넣고 옷을 갈아입힌다(가리를 새로 한다)고 한다.
- 하주성 저 '송탄의 민속과 설화(1990년) 송탄시사편찬위원회

'터주가리'라는 명칭도 '터주를 가렸다' 혹은 '터주의 입을 새로 갈아입혔다'라는 뜻으로 풀이를 할 수가 있다. 짚으로 터주가리 안에 있는 터주단지를 가려놓았다는 뜻이나, 가을에 새 짚단을 이용해 옷을 새로 갈아입혔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터주가리는 집 뒤편이나 옆 장독대 옆에 자리를 한다
▲ 터주가리 터주가리는 집 뒤편이나 옆 장독대 옆에 자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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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든 벼는 가을추수를 마치고나면 꺼내어 새로 찧은 쌀과 함께 떡을 해 먹는데 이 떡을 '가을떡'이라고 한다. 이렇게 집집마다 돌리는 가을떡은 바로 우리 공동체의 아름다운 미학이다. 주로 경기도지방에서 많이 모시고 있는 터주가리. 이제는 집집마다 장독대에 자리 잡았던 터주가리를 많이 볼 수는 없지만, 장독대 뒤편에 자리한 후토주임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집안에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 계신 집에서는 먼 길을 떠난 식솔이 있거나, 아이가 아프면 장독대에 물을 떠놓고 비손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런 풍습은 바로 터주대감에게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집안 식구들의 안녕과 집안의 평안함을 관장하는 터주신이 좌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터주가리, #가신, #터주단지, #후토주임, #터주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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