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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아! 엄마 왔다. 날씨가 이렇게 추워서 얼마나 춥고 외롭니? 이 엄마는 따뜻한 방에서 자고 이렇게 옷을 껴입고도 떨면서 여길 찾아오고 있었구나. 사랑한다. 내 아들아!"

서울에서 분당 메모리얼파크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반 이상을 달려와서 또 택시로 10여분을 달려야만 찾아올 수 있는 먼 거리다. 하지만 매주 한 번은 꼭 찾아와서 봐야만 일손이 잡힌다는 어머니 권미향씨.

그는 오늘도 아들을 찾아와서 이렇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들 사진 앞에서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며 불쌍하게 가버린 아들을 위해 기도한 어머니는 기도를 마치고 한 칸 건너에 있는 군복 청년 주승일 병장의 영정을 찾았다.

입대 10개월만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고 황재원군
▲ 고 황재훈 하사의 군복 사진과 투병생활모습의 사진 입대 10개월만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고 황재원군

"주승일 병장, 너는 어쩌다 그 어린 나이에 떠나서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니? 이렇게 잘 생기고 믿음직한 아들을 보낸 너의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얼마나 힘들겠니? 제발 맑고 아름다운 영혼들아, 하늘나라에서라도 정말 행복하게 보내라. 저 불쌍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좋은 곳에 가서 행복하기를 빈다. 내 아들 황재훈이와도 만나거든 너희 어머니가 내 방에도 들러 가시더라고 전해 주고 둘이 만나거든 형제처럼 지냈으면 좋겠구나. 우리 재훈이도 외로운 사람이니까 말이다."

권미향씨는 오늘도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몇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면서도 이곳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큰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떠나지를 못한다.

분당 메모리얼파크에 안장된 고 주승일 병장
▲ 고 주승일 병장의 영정 분당 메모리얼파크에 안장된 고 주승일 병장

이렇게 두어 달을 오가던 권 여사는 그날도 변함 없이 아들 재훈이를 만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주승일군의 영정을 찾았다. 그런데 승일군의 영정 앞에서 울고 있는 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권 여사는 조용히 다가가서 말을 붙였다.

"저 실례합니다. 혹시 주승일 병장의 어머니 되시는 분인가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승일군의 어머니는 낯선 여인의 물음에 의아해하면서 눈물이 얼룩진 얼굴을 닦았다.

"그러시군요. 얼마나 가슴이 아프십니까? 저는 이 곁방에 있는 아들을 찾아온 엄마랍니다."
"아 그러시군요. 얼마나 가슴이 아프십니까? 그런데 내 아들 이름은 어떻게 아시고 여기를 찾아오시게 되었는지요?"

주승일군의 어머니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두 여인이라는 동지의식이 들어서 자초지종이 궁금해졌다.

"말을 하자면 한이 없지요. 저는 너무 억울하게 아들을 보내서 한이 되어서 이렇게 늘 찾아오게 된답니다. 군대에 가기 전에 합기도 도장에서 부사범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장대 같은 자식이 입대한 지 몇 개월 만에 쓰러져 가버렸으니 누가 믿겠어요. 너무 억울해서 사인을 밝혀서 억울함이 있다면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그러셨군요. 우리 승일이는 해병대를 제대했는데, 복학을 준비하고 있다가 집 앞 건널목에서 과속 택시에 치어 가고 말았답니다. 참으로 효자였고, 사랑스런 아들을 보내고 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날마다 이렇게 찾아오곤 합니다. 하루라도 와보지 못하면 그날은 밤중에라도 와서 보고 가야만 잠을 잘 수 있답니다."

두 어머니가 함께 찾아다니며 슬퍼하기도 하고 작별도 하게 되었다.
▲ 두 어머니의 작별 인사 두 어머니가 함께 찾아다니며 슬퍼하기도 하고 작별도 하게 되었다.
ⓒ 김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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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여기서 가까우신가 봅니다."
"네, 여기 오시면 내리시는 서현역 부근이랍니다. 우리 이러지 말고 우리집에 가서 이야기나 좀 나누고 가시지요. 날씨도 춥고 이렇게 얼으셨는데 몸도 좀 녹여 가시고 집으로 기시죠? 제가 차를 가지고 왔으니 함께 가십시다."

"예, 그러죠. 저 제 아이와 작별 인사나 하고 올게요."
"아참, 그런데 어떻게 우리 아이의 영정을 찾게 되셨어요? 같은 방도 아닌데?"

"제 아이에게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 이 방 저 방을 둘러보았지요. 그런데 군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을 보고 제 아들과 같은 처지인 것 같고 어린 나이에 간 아이가 너무 불쌍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오면 꼭 들러서 가고, 우리 재훈이와 친구가 되어 달라고 빌고 한답니다."
"듣고 보니 저는 정말 무심했는가 보네요.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 당하는 슬픔만 같고 다른 사람을 살펴볼 마음조차 갖지 못했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아들 재훈이라고 했죠? 함께 가보고 사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사죄는 무슨 사죄입니까? 일단 같이 가보시죠. 저도 하직인사를 해야 하니까요."

두 엄마는 나란히 가서 재훈이 앞에 머리 숙여 기도하고 나서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다시 승일이 사진 앞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두 엄마는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위로하면서 나란히 승일이네 가게인 중국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승일이 아빠, 우리 승일이와 같이 있는 친구의 엄마를 만나서 이렇게 함께 왔어요."
"안녕하세요. 얼마나 가슴 아프셔요. 이야기는 대충 들었답니다."
"잘 오셨습니다. 우선 잠시 이야기 나누십시오. 점심이나 잡수시고 가세요. 준비하겠습니다."

이렇게 두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이제는 친자매처럼 만나면 반가운 이웃이 되었다.

이어지는 기사: 효자폰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간 우리 아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개일블로그 및 서울포스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들, #군대, #분당메모리얼파크, #육군통신학교, #영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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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아동문학회 상임고문 한글학회 정회원 노년유니온 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한겨레<주주통신원>,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지킴이,꼼꼼한 서울씨 어르신커뮤니티 초대 대표, 전자출판디지털문학 대표, 파워블로거<맨발로 뒷걸음질 쳐온 인생>,문화유산해설사, 서울시인재뱅크 등록강사등으로 활발한 사화 활동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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