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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에 갑작스레 발열조끼가 등장했다. 지난해 말 예산안 날치기로 군 장병들의 발열조끼 예산이 통과되지 못하자 KBS가 나서 성금모금 방송을 한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주간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김인규 KBS 사장의 아이디어로 추진된 방송이라고 한다. 

 

엄경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은 발열 조끼 성금 방송을 두고 "내부에서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했다"며 "KBS가 70, 80년대 계몽 캠페인 방송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고개를 저었다. "발열 조끼가 필요하면 왜 정부가 못하는지 따지고 촉구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저널리즘인데 KBS가 대신 나서서 성금을 모으고 있으니 어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3년차에 접어든 지금, 엄 본부장이 '방송 잔혹사'의 한 단면으로 뽑은 장면이다. 이러한 엄혹한 현실들이 줄 잇는 상황을 알리기 위한 '방송 잔혹사를 말하다' 보고대회가 2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주최한 이날 보고대회에는 각 방송사 노조 위원장들이 자리해 참혹한 실상을 전했다.

 

KBS 노조위원장 "제작 자율성 침해, 자기 검열로 이어져"

 

엄경철 위원장은 "KBS 내부 구성원 60명이 징계되는 등 징계의 잔혹사가 펼쳐지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프로그램 잔혹사"라며 "<추적 60분>의 천안함 방송, 4대강 보도가 너무도 어렵게 방송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을 털끝만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엄 위원장은 "기자·PD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4%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KBS의 공정성이 약화됐고, 61%가 상시적으로 제작 자율성을 침해받는다고 답했다"며 "제작 자율성이 침해되면 자기 검열로 이어져 결국 침묵의 편파를 낳게 된다, 훨씬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노골적인 편 들어주기'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지만, 논란이 될 만한 것은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 언론이 침묵해 버리면 외부에서는 'KBS 뉴스'가 별 문제가 없는 걸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엄 위원장은 이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MBC의 잔혹사는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저항의 뜻으로 삭발을 감행한 이근행 MBC 노조 위원장은 "단협에는 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국장 책임제, 공정방송협의회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며 "특히 국장 책임제는 정치적으로 선임된 MBC 이사들이 프로그램과 뉴스에 개입하는 걸 차단하기 위해 국장이 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한 MBC만의 제도인데, 연임을 목전에 둔 김재철 사장이 일방 파기라는 예견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단협 이후에 더 큰 잔혹사가 펼쳐질 것"이라며 "지난 1년간 김재철 사장이 내부 저항 때문에 프로그램 개입에 소극적이었다고 하지만 (김 사장이) 연임되면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SBS 노조위원장 "지난해는 노조들이 개무시 당한 해"

 

이윤민 SBS 노조위원장은 "작년 한 해는 노조들이 개무시를 당한 한 해였다"며 "사측에서 노조와 아무런 상의 없이 신입사원과 부장급 이상에 연봉제를 적용했다, 이를 두고 농성을 시작한 지 249일째지만 사측은 대화 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본래 호봉제였던 급여체계가 평가 능력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연봉제로 바뀌면, 회사 의견에 반하는 프로그램 제작이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란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SBS는 SBS미디어홀딩스라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인데, 현재 지주회사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SBS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는 상황이라 SBS 안에는 노조가 대화할 상대가 없다"며 "연봉제 등을 주도하고 있는 지주회사의 회장이 바뀌려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수단인 파업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오는 2월 22일이면 공정방송 투쟁 1000일을 맞는 YTN의 김종욱 노조 위원장은 "2009년 9월 이후로 한 달에 한 번 열려야 할 공정방송위원회 회의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며 "공정방송 시스템 정상화라는 당연한 (과제가) 왜 진전이 안 되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김 위원장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인터뷰 방송 보류로 불거진) YTN판 블랙리스트는 공정방송 훼손 경과를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산물"이라고 꼬집었다.

 

최문순 "언론 구제역, 언론자유 살처분, 방송 독립성 매몰"

 

최문순 의원은 이러한 '잔혹사'를 두고 "언론 구제역, 언론자유 살처분, 방송 독립성 매몰"이라 규정하며 "방송 3사가 완전 굴복해서 나팔수 방송으로 전락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최 의원은 "이것도 부족해서, 단협을 무력화 시키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 방송 독립성을 원천적으로 훼손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노조와의 단협이 없는 상태는 1987년 6월 민주화 이전 상태를 의미하며, 결국 6월 민주화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임을 이명박 정권이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것에 대한 자발적 반성을 기초로 만들어진 언론사 노조가 사측과 맺는 단협에는 언론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담겨있다"며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는 것은 사회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 "방송4사가 연대 투쟁해야 한다는 한 가지 입장 가지고 있다"며 "당장 방송사 전부가 총파업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정교하게, 치밀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중동 방송' 출범에 맞선 강경 투쟁도 예고했다. 최 위원장은 "언론노조가 앞장서서 조중동 방송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조직을 만들어서 행동할 것"이라며 " 조중동 방송의 시청거부는 물론이고 (종편에) 지분으로 참여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펼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미디어행동과 언론노조는 오는 27일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종합편성 방송채널 참여주주에 대한 불매운동 선언을 비롯한 향후 종편 반대 투쟁일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태그:#방송잔혹사, #블랙리스트 , #최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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