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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지만…."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한은 금통위)가 전격적으로 금리를 올렸다는 소식을 접한 한 시중증권사 연구원의 첫 반응이었다. 그는 "이미 작년부터 한은 총재 발언보다 청와대쪽 이야기에 신경써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애써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이날 한은 금통위가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것은, 한 마디로 최근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는 평가다.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가 '물가잡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안정'이 최대 정책목표인 중앙은행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냉소적이다. 한은의 물가잡기를 위한 금리인상이 전형적인 '뒷북'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물가는 크게 올랐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중앙은행이 이를 사실상 방치해 왔다는 것이다.

 

물가와 전쟁 선포한 이 대통령에... 한은, 금리인상으로 화답

 

한은이 1월에 금리를 올린 것은 지난 1999년 5월 정책금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따라서 이날 금통위가 열리기 전까지 대체로 금융시장이나 전문가들은 '금리 동결'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카드를 전격적으로 내밀었다. 시장에선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물가와 전쟁을 선포한 청와대의 기조에 결국 한은도 동참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부의 물가와 전쟁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3일 신년연설에서 구체화됐다. 이 대통령은 당시 "성장이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물가를 3%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었다.

 

대통령의 구체적인 물가관리 수치 선언에, 기획재정부 등 경제관련 부처들은 부랴부랴 물가안정 대책을 쏟아냈다. 심지어 기업의 불공정거래를 관리 감독해야할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물가관리 기관이라고 자임하고 나설 정도였다.

 

이어 이미 1월 금통위가 회의가 예정됐던 13일, 정부는 9개 경제 관련 부처가 물가대책을 집대성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대책을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작년에도 추석을 앞두고 정부가 대책을 내놨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터라, 이번 대책 역시 이미 나왔던 것의 재탕, 삼탕 수준이라는 반응이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위원은 "설을 앞두고, 구제역에다 물가까지 치솟는 마당에 정부차원에서 내놓는 대책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당장 물가안정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모르지만, 정부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통위의 판단은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관리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며 "이번 인상은 적절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1, 2월에 그러한(금리를 올리지 않은) 관례는 경제정책의 분석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통화정책 결정은 중앙은행이 아닌 청와대?

 

하지만 "금리인상이 적절했다"는 김 총재의 평가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마디로 '물가안정'이 최대목표인 중앙은행이 그동안 물가 폭등을 스스로 방치해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미 작년부터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인상 등의 대책을 써야 했다는 지적이다.

 

이미 작년 9월 한은이 당시 기준금리를 동결했을 때, 시장에선 "한은이 실기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당시 외국계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은 별도 보고서를 통해 "한은이 거시 경제 흐름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할 좋은 기회를 놓쳤다"면서 "한은이 더 신뢰를 잃는다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기대심리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최석원 삼성증권 연구원도 당시 '혼자서 하는 의사소통'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은의 신호보다는 금통위 이전에 나오는 청와대나 정부 입장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라고 쓰기도 했다. 

 

한 시중증권사 연구원은 "이미 김중수 총재의 한은이나 금통위 체제에선 그쪽의 발언을 너무 귀담아 들을 이유가 없다"면서 "이번 금리인상 역시 시장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김중수 총재도 이날 회견자리에서 이같은 지적을 의식이라도 한듯,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이견의 여지가 많을 것"이라며 "무엇이 적절했느냐는 것은 시간이 흘러서 평가를 할수 있을 것"이라고 에둘러 해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로서는 최선의 대책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확고히'란 문구 넣는 것 두고, 금통위 위원간 설전

 

물론 이날 금통위의 결정 과정도 그리 순탄치 않았다. 김 총재는 이날 금리 인상 결정을 발표하면서 "이날 결정이 (금통위원들의) 만장일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금통위의 회의 결과는 당초보다 늦은 시각인 오전 10시20분께 언론에 알려졌다. 그동안 금통위는 회의가 열리기 전날에 위원들이 모임을 하고 사전에 의견을 충분히 교환해 왔다. 회의 당일에는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 대체로 오전 10시께 회의를 마치면서 금리가 결정됐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선 금리인상 여부와 함께 통화정책방향 결정문 작성을 두고, 2시간에 걸쳐 격론을 벌였다. 일부 위원은 기준금리 인상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결정문에 물가안정기조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확고히'라는 문구를 넣는 것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 금통위원은 '확고히'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민감하며, 나중에 이 표현이 빠지거나 바꿀 때 시장에 또 다시 큰 혼란을 줄수 있는 점 등을 들어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통위원은 "이번 결정에 대한 자세한 금통위원들의 발언은 6주 후에 공개되는 의사록을 보면 알게 될 것"이라며 "금통위원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언급은 꺼렸다.


태그:#한국은행, #기준금리, #이명박 대통령,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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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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