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민으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국방부가 지정한 23권의 <불온서적> 중 일부
 국방부가 지정한 23권의 <불온서적> 중 일부
ⓒ 김민후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국방부에서 시중 서점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책들을 금서로 정한 다음 군인들에게 읽지 못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뜻있는 군법무관들이 그런 것은 헌법상의 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헌법재판소는 이를 기각하였다. 결국 국방부의 그런 조치가 대한민국 땅에서 허용된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에 동의하는가. 만일 동의한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 글은 독자 여러분을 위한 것이다.

나는 위 사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국민으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만일 당신이 어떤 책을 보고 싶은데 국가가 그 책을 불온도서로 규정하였다 치자. 이때 그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철저한 '국민'이다. 이런 사람은 국가가 읽지 말라는 책을 왜 읽느냐고 오히려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이런 사람도 있다. 내가 책을 읽는데 국가의 승인을 왜 받아야 하느냐고. 도대체 국가가 무엇이건대 내 책 읽는 일까지 참견하느냐고. 이런 사람은 책을 읽는 것은 전적으로 '나' 개인의 일이지 국가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사람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좀 연장하면 우리의 국가보안법의 정당성 여부에 이른다. 국보법은 금서를 인정한다. 어떤 책이 '반국가단체(북한)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금서이며, 그것을 읽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그것을 위반하면 국가의 엄격한 제제(형벌)를 받게 된다. 그러니 이 법률을 당연시한다면 당신은 철저한 '국민'이다. 이 법률을 반대한다면 당신은 '인간'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는 대가가 따라온다. 감옥에 갈지도 모를 무시무시한 대가이다. 이제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국민으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시민의 불복종>이 나오기까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 이레

관련사진보기

이와 같은 문제에 좋은 성찰을 제공하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시민의 불복종>(강승영 옮김, 이레)이다.

소로가 이 책을 쓴 시점은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하던 때(1846~1848)이다. 이 당시 미국은 텍사스의 병합문제로 멕시코와 전쟁을 하였고, 그 결과 단 1500만 달러로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양도받았다. 소로는 이 전쟁을 악한 전쟁으로 보았고 강력히 비판하였다.

한편, 소로는 노예제를 반대하였다. 그는 이와 관련된 글, <자유의 호소, Herald of Freedom>를 콩코드 학파의 기관지격인 <다이얼>에 기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예제를 반대하는 강연을 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소로는 <월든>의 배경이 된 호숫가 통나무집에서 사는 동안 콩코드 시내에 나왔다가 친구인 세금 징수원으로부터 세금 독촉을 받는다. 그러나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의 반대를 몸으로 실천하는 그는 세금 납부를 거부한다. 이러한 배경을 지닌 시민 불복종이 처음 <미학, Aesthetic Papers>에 게재되었을 때는 그 제목이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었으나 그 후에 <시민의 불복종, Civil Disobedience>이라고 고쳐졌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 thoreausociety.org

관련사진보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부와 명성을 좇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일생을 보냈다.

그가 활동한 19세기 중반의 미국은 산업혁명의 여파가 몰아치는 상황이었으므로 어느 때보다 물질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당시 여전히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혀 가는 제국주의 국가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로는 고향 선배인 랠프 월도 에머슨과 함께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주장하는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 철학자로 살아간다.

그는 여러 저작을 남겼지만 두 작품이 특히 주목을 끈다. 하나는 그의 자연주의 철학을 알 수 있는 <월든>(강승영 옮김, 이레)이다. 이는 고향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2년간 생활하면서 그 경험을 쓴 것인데 19세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하나가 여기에서 소개하는 <시민의 불복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국가에 대하여 개인이 할 수 있는 '불복종'의 의미를 성찰하였다. 이 책은 톨스토이나 간디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으로도 꼽힌다. 소로는 1862년 폐결핵으로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개인은 국가에서 어떤 존재인가

소로는 이 책을 통해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성찰한다. 그에게 있어 국가는 불가피한 존재라 할지라도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책은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말로 시작하는 데 바로 이 말은 소로의 국가와 정부에 대한 기본 입장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는 "정부가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때는 곧 피통치자들이 간섭을 가장 적게 받은 때"라고 설명한다.

혹자는 이 말만 듣고서 요즘 유행하는 신자유주의와 연계시킬지도 모르겠다. 소로가 자유주의 경제철학을 이야기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는 완전 오버다. 소로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자유를 누리는 데 국가가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간섭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지 불평등을 조장하는 자유주의 경제 철학을 지지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 소로에게 있어 국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개인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말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13쪽)

이 말은 국가의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일 국가의 법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것에 따를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들은 국가의 도구도 수단도 될 수 없는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로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셰익스피어(<존왕> 3막 2장)의 다음과 같은 말을 소개한다.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16쪽)

국가가 미쳐 돌아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로에게 있어 당시 미국은 미쳐가는 시기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당시 다수는 멕시코 전쟁을 지지하고 노예제도를 지지하였다. 미국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었으며, 사람들은 그 꿈이 실현된다고 믿고 있었다. 미국은 서부로 계속 뻗어 나갔으며 드디어 태평양 연안국이 되었다. 1849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골드러시를 이루며 서부로 달려가는 시대였으니, 참으로 미국은 국운이 날로 성장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소로에게 보이는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은 국민의 6분의 1이 노예이고 미국은 멕시코를 침략한 불의의 나라였다. 이러한 정부에 대해 소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노예의 정부이기도 한 이 정치적 조직을 나의 정부로 단 한 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 (16쪽)

그러니 소로에게 있어 이런 정부에 대하여 대항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방치해서는 안 되며 정의롭지 못한 행위의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타협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정부에 대하여 반대를 표시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불가피한 방식은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강고한 폭압적인 정부를 상대로 어떻게 그 정부를 부정할 수 있을까.

그는 정의롭지 못한 정부와의 관계 단절을 주장한다. 정부에 대한 충성의 거부와 저항을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비록 그 거절의 과정이 다수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비록 소수일지라도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그가 목표하는 그 양심적 결과가 일어나리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확신어린 어투로 이야기한다.

"나는 이것만은 알고 있다. 즉, 이 매사추세츠 주 안에서 천 사람이, 아니 백 사람이, 아니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열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하기를 그만두고 실지로 노예제도의 방조자의 입장에서 물러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31쪽)

그러한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나를 감옥으로 보낸다면 어떻게 할까. 소로는 명예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한다.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다." (32쪽)
"노예의 나라에서 자유인이 명예롭게 기거할 수 있는 유일한 집이 감옥인 것이다." (33쪽)

물론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감옥이라도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역사 이래로 소수이다. 사회적 소수가 다수를 상대로 싸울 때 사람들은 그들이 납득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혼란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로는 이에 대하여 반대한다. 소로에게 있어 사회 혼란을 막을 책무는 국가나 정부에게 있지 소수에게 있는 게 아니다. 소수는 정부에 대하여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코 다수의 힘에 무력해 져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의로운 사람들을 모두 감옥에 잡아 가두든가, 아니면 전쟁과 노예제도를 포기하든가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주 정부는 어떤 길을 택할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33쪽)

소수가 전력을 다해 정부에 대하여 "그게 아니다"라고 하면 정부도 결국 돌아선다는 믿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소수자 전부를 감옥에 보낼 그런 정부는 도저히 민주 정부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런 정부에 대해서는 더 큰 시민의 저항권에 직면하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이 바로 그게 아닌가(프랑스인권선언 제2조를 보라.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보존하는 데 있다. 그 권리는 … 압제에 대한 <저항권>이다.").

시민 불복종의 핵심은 비폭력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 소로가 말하는 '불복종'과 '폭력'과의 관계 말이다. 소로는 폭압적인 정권에 대한 폭력적 저항권을 인정하지만 일반적인 시민정부(민주주의적 원칙에 의해 세워진 정부를 말한다)에 대한 '불복종'은 철저히 '비폭력적'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책 <정의론>(존 롤즈 저/황경식 역) 겉그림.
 책 <정의론>(존 롤즈 저/황경식 역) 겉그림.
ⓒ 이학사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비폭력적 불복종은 많은 이들의 연구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이다.

롤스는 그의 책 <정의론>에서 정부가 정의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경우 시민 불복종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그 불복종은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롤스는 '법에 대한 충실성의 한계 내에서 법에 대한 불복종'이 시민 불복종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볼 때 나는 시민 불복종을 '내가 어떤 특정의 법을 불의라 생각하여 그것을 어기긴 하지만 그 법적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즉, 불복종의 결과가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이라면 가겠다는 것이지, 감옥 가는 것을 물리적으로 거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적 다수에게 나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소로가 보여준 시민 불복종의 참된 모습이라 생각한다.  

소로의 영향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은 기본적으로 비폭력 저항을 의미한다. 사악한 정부에 대해서는 그 관계를 절단하고 그 방법으로 세금납부를 거부한 것이다. 이와 같은 비폭력 저항은 톨스토이와 간디에게 영향을 미쳤고 마틴 루터 킹의 시민권 운동 나아가 오늘날까지 비폭력 시민저항 운동의 사상적 뿌리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톨스토이는 <시민의 불복종>을 1900년경에 우연히 읽고 소로를 찬양하는 한편 미국인은 왜 그런 소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백만장자나 장군 등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느냐고 묻는 글을 썼다.

간디는 런던 유학시절 소로의 전기를 읽었고 특히 <시민의 불복종>에 주목했다. 그는 남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비폭력 저항의 사상인 사탸그라하(satyagraha)를 형성하였다. 그는 1907년 그가 발행하던 <인디언 오피니언>에 <시민의 불복종>을 실었고 나중에는 팸플릿으로도 발행했다. 이후 이 책은 간디에게 있어 성경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는 이 책을 항상 곁에 두었고, 감옥에 갈 때도 가지고 갔다고 한다.

소로가 바라는 세상, 우리가 바라는 세상

소로가 바라던 세상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 세상은 나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사회다. 이런 사회가 뭐 대단한 사회도 아니다. 나의 삶의 방식이 존중되는 사회, 그것이면 족하다. 소로는 이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41쪽)

이런 삶의 방식이 허용되는 사회란 개인을 한 이웃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국민이 될 것을 강요하지 않고 국가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삶을 '최대한' 인정하는 그런 사회를 말한다. 그런 국가는 <시민의 불복종> 맨 끝에서 소로가 염원하는 이런 사회를 말한다.

"그런 국가는,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초연하며 국가에 대해 참견하지도 않고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더라도 이웃과 동포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한 그들이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58쪽)

소로가 바라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불복종 운운의 이야기를 했다고 두들겨 맞는 사회가 아니라 이런 말도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고견이라고 존중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회, 그것이 과연 나만의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언젠가 우리가 반드시 이 땅에서 성취해 내야 할 우리의 본 모습이다. 나는 정령 그런 사회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찬운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이자 변호사이다.



시민의 불복종 - 야생사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2017)


태그:#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의 불복종, #비폭력, #저항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