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영준 차관님, 거두절미하고 혹시 어젯밤에 뭐하셨습니까? 무례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박 차관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이 있기에 꼭 시청하시라고 권유해 드리고 싶어서 말이지요. 아, '왕차관'이자 'MB의 남자'라 불리는 지식경제부 차관님이시니 아무래도 불철주야 나라를 위해 뛰느라 바쁘시다고요?

 

그렇더라도 만약 어젯밤(11일) 방영된 MBC <PD수첩> '공정사회와 낙하산' 편을 놓치셨다면 인터넷 다시보기라도 이용하셔서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간 민간인 불법사찰을 뒤에서 배후 조정한  몸통으로 꼽히며 관련 의혹들도 줄줄이 제기돼 왔으니 이젠 새롭지도 않고 또 무섭지도 않으시다고요?

 

차관님은 지난해 12월 11일자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에서도 "나와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전혀 대응하지 않고 있다"며 사찰 논란의 배후라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셨지요? 하지만 <PD수첩>을 보니, '공정'이란 단어의 뜻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은 이명박 대통령만큼이나 '관계'의 뜻도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더군요.

 

"우리는 이런 패거리주의로 국민을 기만하고 동지들을 능멸한 책임을 물어 박영준 차관이 즉시 퇴진할 것을 선언합니다."

 

지난 5일 한때 선진국민연대에서 한솥밥을 먹던 국민성공정책진흥회 양재헌 회장이 차관님을 비판하며 읽어내려간 성명 중 일부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지금 자리에 있게끔 함께 활동한 옛 동지조차도 "겉으로는 공정사회를 외치고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속으로는 패거리를 짓고 공정치 못한 이들의 밀실 패거리 주의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그 핵심 인물로 차관님을 지목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단지 '한 자리 차지하지 못해 비치는 서운한 감정'으로 치부하실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방송을 직접 보신다면, 차관님이 의혹에 대해 부인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확실합니까? 그게 최선입니까?"라고 묻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네, <PD수첩> '공정사회와 낙하산' 편은 그간 제기되어 왔던 낙하산 인사와 청와대의 공기업 인사 개입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였거든요.

 

포스코 회장직을 좌지우지한 그 권력, 대단하십니다

 

"민간인, 또 젊은 사람이 박태준 명예회장을 만난다? 그 다음 포스코 이구택 회장을 만난다?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던 윤석만 사장을 만난다? (그들이) 만나주겠습니까? 그건 박영준씨를 보고 만난 것이 아니고 그 뒤에 있는 더 큰 권력을 보고 만난 것이죠."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PD수첩>은 정권 초기 차관님과 천신일 현 세중나모 회장이 포스코 회장 교체에 개입,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다시금 제기했습니다. 물론 차관님은 <PD수첩>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며, "허위 사실이거나 질문 내용은 언론을 통해 해명된 사항이므로 추가 답변할 사항이 없다"고 하셨고요. 참,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게 수고한다고 밥 한 끼 얻어 먹었다니, 대단하십니다. 2008년 말 당시 차관님은 대통령실 기획조정비서관에서 물러난 일반인이었는데 말이죠.

 

 

기억이 가물가물하실지 모르니, 간단히 복기시켜 드리지요. 재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던 당시 이구택 포스코 전 회장은 이 정부 들어 참여정부 쪽 사람이라는 시선을 받았다죠. 결국 2008년 12월 검찰이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과 관련, 이구택 회장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다는 보도까지 났습니다. 그 이후 이구택 회장은 사임을 발표했고, 후임자로는 당시 윤석만 포스코 사장과 정준양 포스코 건설 사장이 거론됐지요.

 

그런데 이 회장은 공공연히 후임으로 천거해왔던 윤석만씨 대신 돌연 내부정보를 이용한 자사주 매매 등으로 도덕성 논란을 빚었던 정준양씨를 택합니다. 여기서 전방위로 포스코 인사들을 만났던 차관님과 그 윗선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거지요. 게다가 윤석만 사장에게 "당신이 아니라 정준양 사장으로 결정됐다"는 통보도 직접 하셨다면서요.

 

또 우 의원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 후보 후원회장을 지낸 천신일씨 또한 윤석만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당신이 물러나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다, 정준양이 회장이 되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다"라고 정확히 표현했다고도 하고요. 2년이 지난 지금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다는 윤석만씨는 회장추천위원회 석상에서 차관님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러한 정황을 까발렸지만, 결국 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되는 관행으로 낙마했습니다.

 

"권력의 한 실세가 이렇게 개입해서 기업의 자율성을 깨뜨리려고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만, 전 정부차원에서 대통령이 그것을 결정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호가호위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회장추천위원회 위원이었던 박원순씨의 회고입니다. 이러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차관까지 등용되신 걸 보니, 'MB의 남자'라는 표현이 실감이 나더군요. <PD수첩>이 KB 금융지주 어윤대 회장 선임 외압 의혹까지 재조명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제식구도 외면한 낙하산·회전문 인사가 결국 사찰·외압까지

 

네, 이 모든 일에 차관님께서 만드신 선진국민연대와 더 나아가 영포회가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양 회장 또한 차관님을 '몸체'로 지목하더군요. 민주당은 물론 보수언론 또한 전 총리실 국무차장을 지낸 차관님을 민간인 사찰의 실세로 기정사실화했고요.

 

"끼리끼리 밀실에서 다 해 먹은 거 아니냐. 영포라인 쪽 공무원들 데려다가 민간인들, 정적인 사람 뒷조사나 시키고. 있을 수 없는 이런 과거 권위주의 시대같은 사건이 뻥 터진 거다. 박영준이가 몸체다, 책임을 져야 된다, 국민들 여론은 이런데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보낸 것 아닌가. 공정사회에 대한 배신이자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양 회장은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정책 특보를 지냈다죠? 오죽하면 그와 같은 친여권 인사들이 차관님을 낙하산 인사의 주범이요, 민간인 사찰의 실체라며 비난하겠습니까? 게다가 밥그릇 싸움에서 밀린 MB연대 사람들도 내치셨다면서요. 어쩌면 인사 정책이 대통령과 그렇게 닮아 있습니까. 아니, 진즉부터 차관님의 작품이었던 건가요?

 

민간인 사찰 의혹 이후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안 한 것이 두고두고 한스럽습니다. 차관님이 국무총리실 재직 당시엔 신대신 전 대우조선해양 감사처럼 청와대의 압력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인사들도 수두룩했겠더군요. 그는 "산업은행 고위임원으로부터 청와대에서 사람을 내려 보낼 테니 자리를 비워 달라"고 전해 들었다 증언했습니다. 이승균 청와대 행정관이 민유성 산은금융그룹 회장에게 전화를 했고, 이후는 '안 봐도 비디오'지요. 대우조선해양은 대우 구조조정 당시 공적 자금이 투입돼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상태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겠고요. 

 

이러한 사찰과 인사시스템의 꼭짓점에 영포회가 있었겠지요. 당당히 고향 선배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청탁했다는 포항연합향우회 정하걸 사무총장이 대우조선측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경영 고문에 위촉됐다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겠고요. 영세한 컴퓨터 보수·유지 업체 대표가 1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의 경영 고문으로 발탁된 진짜 이유는 이제 영포회 사람들말고 온 국민이 알게 됐습니다.

 

'공정'(公正) 사회? '공정(公定)'로 바꾸시라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이 쓴 '공정사회'의 '공정'(公正)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관청이나 공공기관에서 정하다'는 뜻을 지닌 '공정'(公定)이라면 기준도, 절차도 무시하는 이 낙하산 부대와 차관님의 인사개입과 비슷하려나요? 그도 아니면 '공물을 바친다'는 의미의 '공물' 공(貢)자로 한자 한 자라도 바꾸기라도 하십시오. 인사를 전리품이나 공물로 생각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더없이 어울리니까요.

 

"MB는 정말 오바마에게서 배워야 한다. 오바마는 정적이었던 힐러리를 끌어안아 국무장관으로 기용,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한편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새로 기용한 백악관비서실장 빌데일리는 원래 모르는 사람을 추천을 통해 받아들였다."

 

한 누리꾼이 <PD수첩>을 보고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오바마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구여권 출신인 김중권씨를 비서실장으로 영입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보를 돌아보라는 말도 제 입만 아플 테지요. 전문성 고려나 지역, 출신 안배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지 오래니까요.

 

낙하산도 이정도면 대형 애드벌룬 수십 개 수준입니다. 이 많은 회전문들을 수용할 수 있는 빌딩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요? 권불십년이라 했습니다. 차관님을 정면으로 겨냥했던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자기 식구들에게도 이유불문하고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이 정권의 말로, 국민들과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단 하나 간청 드립니다. 앞으로 이 정권과 낙하산 인사들이 더 이상 공정사회 운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공정사회 들먹이려면 제발 국어공부, 한자공부부터 다시 하시길 바랍니다.

 

 "KT 전무 자리가 예쁜 아르바이트생이냐"

<PD수첩>은 11일 방송에서 낙하산 인사 사례를 전방위적으로 보도했습니다.

 

185개 기관 306명(36개 직책 복수임명). 이명박 정부가 총 348개 정부 기관들에 낙하산으로 내려 보낸 이사, 감사, 기관장들의 숫자입니다.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고작 3년 동안 참여정부의 185명(5년, 39개 직책 복수임명)을 훌쩍 뛰어넘었으니, 임기 말까지는 3배를 채우실 건가요? 가히 낙하산 부대라 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이는 <PD수첩> 제작진이 2003년 1월 1일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8866개 직책에 임명된 6431명 이력을 분석해 나온 결과랍니다. 기준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항변할 필요는 없습니다. 총선 및 지방선거 관련자, 청와대 출신, 인수위 등 대선관련 인사, 대통령 측근, 당료 등 선정 기준은 2006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낙하산 인사 특위에서 조사한 방법과 동일했다니까요.

 

지난 3년 동안 각종 기관에 임명된 기관장은 89명, 감사가 90명, 이사가 163명이었답니다. 반면 참여정부는 5년 동안 기관장 48명, 감사 70명, 이사 106명이었고요. 특히나 대통령의 '8·15 공정사회' 발언 이후에도 낙하산으로 임명된 공공기관 인사가 23명이나 된다니 말문이 막힙니다. 네, 그 공정엔 처음부터 전문성이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게지요.

 

"KT가 무슨 회전문입니까? 이 사람 저 사람 들락날락거려 가지고 회사가 어떻게 제대로 경쟁할 수가 있겠습니까. 구글과 애플 같은 세계적인 회사하고 국내시장에서도 경쟁해야 되는 마당에 이와 같은 비전문가들이 들어와서 어떻게 경쟁을 하겠습니까?"

 

전 KT 사장이었던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의 비판도 이명박 정부에게는 공염불이겠지요. 더 심각한 것은 지난해 12월 KT 전무로 임명된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의 경우처럼 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 민간기업까지 현정부 인사들이 점령한다는 데 있겠지요.

 

특히나 KT는 2009년 초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자문위원을 역임한 이석채씨가 회장에 부임한 직후부터 무려 8명의 낙하산 인사가 부임하면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더욱이 이석채씨는 LG전자와 SK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었기에, '(경쟁 회사 퇴직 후) 2년 미만인 자는 사장 취임이 불가하다'는 회사 관련 규정을 삭제하면서까지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인물이었고요.

 

직원들에게 "KT 전무 자리가 예쁜 아르바이트생 뽑는 거냐"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김은혜 전무는 "어디 출신이냐보다 회사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참 중요하다"고 인터뷰를 했더군요. 하지만 20년을 경쟁해야 겨우 쟁취할 수 있다는 전무 자리를 30대 낙하산 인사가 꿰차는 꼴을 봐야 하는 KT 직원들의 허탈감은 어떻게 보상할 건가요?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선거대책위원이었던 허준영씨가 사장으로 취임한 한국철도공사(자회사 포함 15명)를 위시해, 각각 6명씩 임명된 토지주택공사, 농어촌공사, 가스공사, 환경공단 직원들도 속내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중 철도공사는 참여정부 때 5명이던 것이 이 정부에선 3년간 벌써 15명입니다. 최승호 PD가 허 사장에게 "능력을 보고 뽑으셨는데 어떻게 하필이면 그렇게 한나라당이 많이 뽑혔냐는 거죠"라고 외칠 때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더군요.

 

청와대의 국기원 이사 선임 개입, 사실입니까?

 

청와대와 문광부가 국기원의 이사 선임에 개입한 과정도 가관이더군요. 지난해 5월, 국기원은 특수법인 전환 후 김주훈 이사장 등 새로운 이사진을 꾸렸습니다. 김주훈 이사장은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이었고, 오현득 상임 감사는 특별경호대장 출신이죠. 특히 김주훈 이사장은 대선 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는데, 그 후 정부 경영 평가에서 2년 연속 낙제점을 받았다죠. 무능력이 입증된 인물을 회전문 인사로 또 기용한 것이지요.

 

"제가 여기 올 때는 경고 안 받고 왔어요"라는 김주훈 이사장이나 "자기 좋아하는 사람 캠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라는 오현득 감사나 당당하긴 매한가지더군요. 김주훈 이사장이 "전 5월 15일 부로 (국기원에) 왔거든요. 평가 결과는 6월인가 7월에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라고 말할 때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진 회전문 인사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실 장아무개 행정관이 국기원 자문위원이었던 바른태권도시민연합 김덕근 대표에게 후보 명단이 적힌 리스트를 보여주며 이사 선임에 관한 자문을 구했다는 사실은 청와대의 무능함과 뻔뻔함을 대번에 보여줍니다. 또 다른 자문 위원이었던 김용채 전 건설교통부 장관도 이 리스트의 존재에 대해 확인해줬고요.

 

심지어 이사 후보 한 명이 고사한 자리를 장 행정관이 직접 섭외에 나섰더군요. 장 행정관은 현재 이사로 재직 중인 한양대 김아무개 교수에게 먼저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했고, 김 교수가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낸 다음날 그는 바로 이사로 결정됐고요. 함영준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은 "날조된 겁니다, 우리 장 행정관이 누구를 이사 시켜주고 할 그것도 전혀 아니고요"라고 부인하지만, 관련 증인들은 여전히 분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증인들이 있는데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태권도 타임즈> 장아무개 편집인은 설립준비위원회 회의를 직접 취재하며 리스트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김덕근 대표 또한 최근까지도 국기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청와대와 문광부의 불법 개입을 규탄하고 있고요. 문제는 이게 청와대 낙하산 인사나 인사 개입의 단적인 예라는 것이겠지요.

 


태그:#박영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