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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998년~2011년까지 햇수로 14년 동안 책을 읽으면서 고민했던 방법을 담은 것 입니다.

1. 왜 "책"이 아니라 "책 읽는 방법"인가?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유명한 말이 있죠? 좋은 책을 추천하기는 참 쉽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좋은 방법으로 좋은 책 읽기"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으니 독서 방법 또한 스타일이 다를 것입니다. 제가 소개한 방법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10년 넘게 나름대로 독서 방법을 계속 고민하면서 제게 이로웠다고 생각하는 것만 골라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받아들이시는 분이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취하시면 되겠습니다.

2. 메모하며 책 읽기

처음에는 노트에 옮겨 적었었는데 부피도 있고 잘 안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무엇보다 "검색"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애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꺼운 독서노트가 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노트에 옮겨 적었었는데 부피도 있고 잘 안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무엇보다 "검색"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애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꺼운 독서노트가 사라졌습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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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메모'를 통한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최초로 메모를 한 책은 스피노자의 <에티카>였습니다. 대학시절, 한창 더운 여름날 '막노동'을 하고 저녁에 대학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는데요. 거기에 메모까지 하면서 읽으니 책 1권 완독하는 데 2개월이 걸렸습니다. 그 때는 메모를 하지 않으면 10권을 읽었을 텐데 하며 '메모'를 하기로 결정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견출지는 너무 번잡하다는 이유로 바로 퇴출되었습니다. 미적으로도 상당히 안 좋죠 ㅎ
 견출지는 너무 번잡하다는 이유로 바로 퇴출되었습니다. 미적으로도 상당히 안 좋죠 ㅎ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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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어떠한 피드백도 없이 한권을 뚝딱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소설이나 가벼운 책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은 책을 덮고 잠시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어려운 부분이나 용어에 대해서는 따로 검색하거나 찾아야 하고, 중요한 부분은 메모를 하는 등 책읽는 과정 속에 수많은 자기 되먹임(피드백)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음식을 잘 먹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메모 방식의 독서는 계속 발전을 거듭합니다. 최초에는 조그마한 노트를 사서 거기에 기록했습니다. 그러다가 밑줄을 긋고 책 앞에 밑줄그은 부분을 써놓았죠. 아니면 책에 견출지 같은 것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군대 다닐 때 행운이 있어서 참모부 행정병으로 근무했었습니다. 이 때 주말마다 '워드 독서'를 했습니다. 형광펜으로 그어놓은 부분을 워드로 치고 인쇄해서 오탈자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3~4회 반복해서 읽게 되었죠. 전역 후에는 이 방법을 절대 쓰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의 원형만은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형광펜을 긋거나 견출지를 붙이는 방법은 사라졌습니다. 책이 많이 아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헌책방에 팔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책은 깨끗하게 읽고 물려주자).

확정된 방법

항상 주머니에 빨간색과 파란색 볼펜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 빨간색 볼펜은 나의 요약력 훈련 도구
 항상 주머니에 빨간색과 파란색 볼펜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 빨간색 볼펜은 나의 요약력 훈련 도구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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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를 접으면 웬만한 책에는 다 들어갈 정도가 됩니다. 지하철을 타거나 밖에 가거나 집에 있을 때 항상 옆에 '검빨파' 3가지 볼펜이 있었습니다. 이 대목이 특히 중요하니까 집중! 파란색 볼펜으로는 "직접인용"을 씁니다. 짧은 인용문의 경우입니다. 그러면 긴 인용문은? 98년도만 해도 노트에 다 썼습니다. 그래서 10쪽을 읽는데 하루가 걸린 적도 있습니다. 긴 인용문은 페이지와 시작 어절, 끝 어절은 표시한 후 옆에 빨간펜으로 그 부분이 뭘 이야기해놓은 건지 적어놓습니다. 나중에 자기가 글을 쓰거나 참고할 때 알아먹을 수 있도록 명확하게 요지문을 써야 합니다.

독서가 끝나면 A4용지는 앞뒤로 4면이 가득 찰 때가 많습니다. 짧은 인용문은 워드로 치는 편이고 긴 인용문은 책 페이지 자체를 스캔해서 OCR 프로그램을 통해서 엑셀에 집어넣습니다. OCR 프로그램의 역사도 아르미6.5→fineReader12→Readiris pro 11 등 사연이 있습니다만, 가장 오류가 적은 프로그램으로 Readiri를 추천합니다.

엑셀표를 인쇄해서 오탈자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리뷰의 개요를 함께 짜고 집어넣을 부분 등에 메모를 남깁니다. 이 과정이 지나가면 리뷰를 쓸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대체로 제가 남기는 리뷰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쓰입니다.

4. 초등학생~일반인까지 적용할 수 있는 독서 방법론



(1) 1권의 책을 1장의 표에 담기


독서노트가 엑셀파일로 옮겨간 가장 큰 이유는 "검색" 때문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의 키워드 하나만 검색하면 그 부분이 내 눈앞에 자세히 나타나니 수십권의 책을 읽어도 정확하게 책을 인용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습니다. 이런 인센티브가 아니라면 굳이 워드나 OCR 프로그램으로 엑셀화하는 작업을 할 이유가 없겠죠.
 독서노트가 엑셀파일로 옮겨간 가장 큰 이유는 "검색" 때문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의 키워드 하나만 검색하면 그 부분이 내 눈앞에 자세히 나타나니 수십권의 책을 읽어도 정확하게 책을 인용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습니다. 이런 인센티브가 아니라면 굳이 워드나 OCR 프로그램으로 엑셀화하는 작업을 할 이유가 없겠죠.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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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 앞의 방법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논술강사 출신입니다.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시문 요약"입니다. 논술뿐만 아니라 내신, 수능 또는 세상 모든 일에서 "요약"만큼 필요한 능력도 없습니다.

A가 나에게 1시간 동안 어떤 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B가 내게 와서 "걔, 뭐래?"하고 물어보면 "응, 직장 그만뒀대" 이런 식으로 짧게 요약해서 대답해줍니다. 요약은 단지 분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판단하고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짧은 키워드를 판별하는 기능입니다.

학생들이 논술에 실패하는 이유는 제시문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거나, 알 것은 같은데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면 쓸 말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천편일률적인 논술문이 탄생합니다.

제가 책을 읽을 때 메모하는 단위는 짧은 제시문, 긴 제시문 두 가지 종류밖에 없습니다. 책 한 권을 몇 개의 짧은 제시문으로 나눠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만들어지는 A4 1장의 메모장은 책의 일람표입니다. 굳이 이것을 엑셀에 옮기지 않아도 되지만 메모장만큼은 권장을 하고 싶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고을을 다스리러 가면 항상 1장의 일람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표에는 마을의 재산, 인구 수, 가축 수, 부역 대상자, 범죄자 등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다산은 표 하나로 마을의 정보를 넣을 수 없다면 절대로 제대로 다스릴 수 없을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A4용지에 메모를 하는 동안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책 한권의 정보를 A4 1장에 담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내게 유용한 정보 선택하기

"읽기→ 서평쓰기"라는 과정이 따로 없습니다. 읽는 과정에서 동시에 서평쓰기 준비가 시작됩니다. 특히 정리하는 과정에서 개요가 확정됩니다. 저는 빨간펜이 좋습니다^^
 "읽기→ 서평쓰기"라는 과정이 따로 없습니다. 읽는 과정에서 동시에 서평쓰기 준비가 시작됩니다. 특히 정리하는 과정에서 개요가 확정됩니다. 저는 빨간펜이 좋습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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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경우는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서평쓰기"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습니다. 머릿속에 글의 개요를 그려넣고 책 읽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개요가 수정됩니다. 제목이나 소제목, 의도된 표현 등도 책읽는 과정 속에서 생겨납니다.

아무 정보나 책에 넣을 수 없습니다. 넣다 보면 A4 한장이 금세 찹니다. <미디어의 이해> 같은 대작이나 고전이 아닌 바에야 A4 한장을 넘어가면 정보가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메모장에 한줄 한줄 넣는 행위는 "단순한 책의 정보를 '나의 정보'로 변환시키는 과정"이 됩니다. 정보 홍수에서 내게 필요한 정보를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서 과정에서 내게 필요한 부분을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책은 비로소 내 것이 됩니다.

인생은 한마디로 선택의 강요입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유일한 것은 태어났을 때뿐일 것입니다. 저마다 선택의 강요를 당하기 싫어 수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해 버립니다. 선택을 주체적으로 할 때 적극적인 인생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데, 책을 읽는 작은 행동에서 "선택의 훈련"을 하면 자신의 생활에 변화가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있어서 더 길게 설명드릴 순 없으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궁금한 것은 댓글에 질문을 달아주시구요.

요약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1. 멍하니 책을 읽는 것은 멍하니 TV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과 같다. 메모 등의 중간 되먹임 장치를 두면서 끊임없이 자극받자. 2. 책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나에게 중요한 부분을 고르고 선택하는 훈련을 하자. 3. 긴 제시문을 한줄로 요약하는 훈련을 통해서 사고의 명료함을 계속 강화시키자. 4. 책을 읽은 후 메모한 부분을 한눈에 바라보며 책의 정보를 가늠해보자.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정보는 당연히 흘러넘쳐 사라져버린다.

독서생활하는 데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태그:#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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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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