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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디서 뭔가 자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빌어먹을 쥐가 또 들어왔나 보다 생각하고 애써 귀를 막으려 하는데 어머니가 옆에서 느닷없이 새 얘기를 하신다. 새가 왔다고, 얼른 일으켜달라고 사뭇 간절한 목소리로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이 애원을 하신다.

"새는 무신 새여, 오줌 나왔어?"

컴퓨터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 건성 질문을 하고 있는 나, 그런 '건성구리' 같은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 새 얘기만 반복하는 어머니. 딱히 무슨 신경전이랄 것도 없는 그런 신경전이 2~3분쯤 흐른 뒤에서야 아들은 겨우 컴퓨터 앞을 물러나서 어머니 쪽으로 무릎걸음을 걸었다.

오줌이나 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줌이나 똥을 방출한 뒤의 살짝 난감한 표정이 아니다. 엉덩이 쪽의 깔개 밑으로 손을 넣어보았지만 아직 보송보송하다. 그렇다면 새 꿈을 꾸다가 깬 것인가? 영문을 몰라 이쪽 저쪽 어지럽게 둘러보는데 목욕탕 쪽에서는 뭔가가 계속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렇다. 그러고 보니 목욕탕 쪽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화장실 겸 목욕탕이다. 그런데 왜? 무엇이?

쥐가 천장이나 부엌 바닥을 돌아다닌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때까지 목욕탕 겸 화장실에서 운동회를 벌인 적은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갑자기 파닥거리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아닌게아니라 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벌떡 일어나서 한 달음에 화장실로 들어서는데 뭔가 머리를 탁 치면서 빠져 나간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라도 하듯 소리까지 짹, 하고 단조롭게 한 마디 낸다.

집 안으로 날아든 새... 손을 내민 어머니

목욕탕으로 날아든 새
 목욕탕으로 날아든 새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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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다. 정말로 새다. 이게 뭔 일이냐. 그제야 허둥지둥 좌우를 살펴보니 마당으로 통하는 부엌문이 한 뼘도 넘게 열려 있다. 자동차 소리에 택배가 왔나 하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 아마 없는 꼬리가 걸렸던 모양이다. 새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들어온 것이다. 겨울이면 까치 같은 천적들을 피해서 좁고 어두운 틈새로 스며들기를 좋아하는 작은 새들의 습성상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했다. 문제는 어머니가 왜 새를 보고 일으켜 달라고 하시는가 하는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온 새는 뱁새보다 크고 참새보다 작은 박새였다. 지난 3~4년 동안 겨울이면 마루 위 선반 위에서 저녁잠을 자고 나가던 녀석이거나 그 후손 가운데 한 녀석일 터이었다. 우편함 속에 따로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치는 바람에 집배원 아저씨와 나를 두 달 가까이 긴장시킨 녀석들이었다. 집수리를 하면서 마루를 없애버린 까닭에 거처를 잃은 새가 방황 중에 열린 문을 발견하고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욕탕에서 은신처를 찾지 못한 녀석은 이제 방에서 이 구석 저 구석 온갖 구석을 온 몸으로 부딪쳐가며 길을 열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새를 향해 어머니는 손을 내밀고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날 듯이 상체를 움직이며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고 계셨다. 그러나 어머니의 몸은 이미 어머니의 몸이 아니었다. 생각은 하늘을 날지만 몸은 바닥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너는 하는 일마다 한 발씩 늦는구나

수풀 속으로 숨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수풀 속으로 숨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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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지난 3~4개월 동안 아무 쓸 데도 없는 일에 전력투구를 해 왔던 셈이었다. 거동이 불편해진 어머니의 화장실 출입을 편하게 한다고, 직통로를 개설한답시고 집을 죄다 뜯어놓고 그것을 다시 꿰맞추느라 야단법석을 떨어댄 날수가 무려 100여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드디어 완성했다고, 마침내 바라던 바를 이루어 냈다고 춤추고 노래하며 축배까지 마셔댄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서 어머니는 당신 혼자 힘으로는 한 걸음도 뗄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일어서려 하면 무릎이 꺾이고, 또 일어서려 하면 다리가 덜덜 떨리다가 도로 주저앉기를 되풀이 할 뿐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황망해 하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일러주는 의사의 소견은 간단명료했다. 여러 가지 설명이 있었지만 한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자연현상이라는 것.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고 놀랄 필요도 없는,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사이클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오히려 모범적인 사례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모범적인 사례, 참 별난 모범도 다 있구나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스물네 시간 옆을 지키면서 변의가 있을 때마다 부축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이동식 변기를 주문했다.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고 아담하고 게다가 수세식으로 청결까지 보장된 이동식 변기를 어머니의 곁에 두고 사흘이나 지났을까.

아담하고 예쁘고 깔끔한 이동식 변기, 그러나 어머니는 이것을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아담하고 예쁘고 깔끔한 이동식 변기, 그러나 어머니는 이것을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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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는 일마다 한 발씩 늦는구나'하고 꾸중이라도 하듯이 어머니가 이번에는 당신 자력으로는 방바닥에서 몸을 떼어놓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팔과 다리와 머리가 본체와의 협력체계를 파기하고 각자 따로따로 움직이는 거였다. 조금 과장되게 비유를 하자면 동서남북 모든 방면에서 중앙정부의 실체를 부인하고 각자 나름의 독립전쟁을 선포한 형국이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이제 당신의 몸에서 똥이 나오려고 하는지 오줌이 나오려고 하는지조차 의식을 못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똥이건 오줌이건 생산되면 일정 기간 동안 내부의 창고에 보관했다가 출고를 하는데 어머니는 만들어지는 즉시즉시 내보내고 있는 거였다. 무슨 일이 이렇게도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인가. 이것도 자연현상인 것인가?

뭔가가 억울하고 슬프고 기막히고 어이없고 황당한 속에서 우왕좌왕, 좌충우돌, 그야말로 정신없이 보낸 날수가 사흘이던가 나흘이던가, 하여튼 눈만 뜨면 밥 먹고 이불 빨래하고 속옷을 갈아입히고 똥을 주물러대며 눈물을 찔끔찔끔 흘려대기를 며칠이나 하다가 비로소 정신이 돌아와서 기저귀를 생각해내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저귀 종류가 왜 그렇게도 많은지 헷갈려서 머리가 터질 지경에 이른 어느 순간 별똥별처럼 요양원이 떠올랐다.

제수씨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알 것 같지도 않고, 설령 안다 해도 쓸데없이 미안스러운 마음만 들게 할 것 같아 포기하고 요양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요양원에서는 대소변 처리를 어떻게 하나 하는, 일종의 지혜를 얻고자 해서 찾아갔는데 관계자가 대뜸 하는 말이 이렇다.

"그만하면 할만큼 하셨습니다. 사서 고생 그만하고 우리한테 넘기세요."

어머니가 치매 상태라는 것을 안 뒤로 얼굴만 마주치면 "우리한테 보내요", "아 우리한테 맡기시라니까"하는 식으로 과분한 관심을 보여주던 사람이기는 했다. 그때마다 "아, 예, 뭐"하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조금 더 친절하게, 조금 더 솔직하게 나를 털어놓고 보여주며 이해를 구하는 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예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엄숙해지고 있었다.

아들이 어머니를 포기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

나는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지침대로만 살아 왔다. 독재는 나쁘다는 교과서의 가르침을 따라 독재반대 운동에도 끼어들었고 '돈이 너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수많은 현자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돈을 가능한 한 멀리 하고자 해 왔다. 치매는 끔찍한 질병이다, 그것은 모든 가족들을 지옥으로 끌어들인다, 고로 피해야 한다, 하는 것 또한 사회통념이라는 이름의 교과서가 내게 주입한 관념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중증치매 선고를 받은 이후 나는 교과서를 더 이상은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만일 석가모니처럼 존재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생노병사라고 하는 이 무시무시한 사이클을 해결하기 위해 발을 벗고 보리수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석가모니가 보는 것의 삼만 분의 일, 아니 삼천만 분의 일도 못 보는 까닭에 어머니를 통해서 그것의 일단이나마 보고자 한다.

실제로 나는 어머니가 중증치매 선고를 받은 이후 참으로 많은 것을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배웠다. 지난 수십여 년 동안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는 어머니의 유년기와 소년기 그리고 결혼을 즈음한 시기의 각종 일화와 종교적인 갈등, 마을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이며 사고에 관한 이야기가 지난 2년여 동안 어머니의 입에서 나왔다. 어떤 때는 밥 먹다가 느닷없이 혼잣말처럼, 어떤 때는 잠결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어머니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교과서나 논문 같은 것을 수십 번 읽어도 얻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는 가슴 벅찬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한 개인의 일생이 결국 인간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내가 가령 논문이나 교과서에서 읽었다면 나는 아마 그것을 눈부신 황금처럼 머릿속에 간직하고 다니며 적절한 시기에 기계적으로 응용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계기로 상상하고 유추해서 얻어낸 지난 세기의 그림들은 내 몸에 유용한 바이러스가 되어 나를 눈물 짓게 하고 웃음 짓게 하며 뭔가 보다 씩씩해야겠다는 결심을 끌어올려 주는 것이다.

그랬다. 증권이나 디지털 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거의 모든 것이 어머니가 부지중에 한 마디씩 내놓는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놓는 한두 문장 정도의 짧은 이야기를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뒤집어도 보고 엎어서도 보며 세상사의 이치를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순간순간에 느껴지는 벅찬 희열이 내 심장을 뛰게 한다. 소설가나 역사학자가 고서에 기재된 단 한 개의 단어로 당대의 사회상을 수십 권의 책으로 재구성해냈을 때 얻어진다고 하는 기쁨과 성취감이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나 자신의 그런 지적 호기심만을 위해 어머니를 붙잡고 있는 것은 또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어머니를 위한답시고 오히려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도 있다고 충고를 하기도 하지만 글쎄, 현재의 요양원 제도가 어머니의 삶을 아들과 함께 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에 이를 수 있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현재의 요양원 제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람의 삶이란 그 어떤 수식어로 포장을 한다 해도, 그 어떤 이론으로 무장을 한다 해도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3박자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소리와 그림들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배제하고는 온전한 설명에 이를 수가 없다. 죽는 줄을 알면서도 사는 존재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온통 죽음의 냄새만 있는 곳에서의 삶은 삶이라기보다 만성화된 공포의 릴레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과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천 길 낭떠러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지난 2년여 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중증치매 상태라 해도 어머니는 가족이 아닌 사람이 내미는 손길은 반가워하면서도 움츠리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아들이나 딸 혹은 손주들이 다가서면 누구여, 누구여 하면서도 그 목소리에 촉촉한 윤기가 돌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나는 어머니가 오늘 당장 죽는다 해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 즉 희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의 요양원 제도에는 이런 미세한 장치들이 배제되어 있다. 옆을 봐도 뒤를 봐도 모두가 그만그만한 얼굴들로 이루어진 현재가 있을 뿐이다. 과거를 불러낼 소재가 봉쇄되었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얼굴 또한 찾아보기가 어렵다. 자원봉사라는 이름의 어린 학생이나 젊은 간병인들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치 최첨단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체온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환상이다.

기저귀 한 장을 갈아주는 데도 경제적으로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의무적인 손길과 아무 계산이 없이 안타까움으로만 가득한 손길이 주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이 건강하고 씩씩할 때는 작은 것이 그저 작은 것일 뿐이지만 병상에 눕게 되면 평소에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작아지고 작다고 생각했던 것은 커다랗게 여겨지는 법이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손길 한 번에 지구 전체를 껴안을 만한 희망이 생기기도 하고 어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절망에 몸을 떨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가족간에는 무심코 나오는 짜증이나 투정조차도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사랑에 기반한 것임을 알기에 금방 정겨운 눈홀김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타인에게서 나오는 그것은 원망과 서러움으로 가슴에 쌓이게 된다. 이 응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의 요양원 시스템에 이 문제의 해법이 마련되어 있는가? 치매를 끔찍한 질병으로 파악하는 한 답을 얻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계량화된 경제나 사회 혹은 복지의 차원이 아니라 인권이 전제된 도덕의 관점에서 치매를 바라볼 수 있다면 혹시 훌륭한 대안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길 수가 없다.

기타 등등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그야말로 장황하게 늘어놓기를 한 시간이나 했던가, 두 시간이나 했던가, 요양원 관계자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을 뿐 선뜻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눈치였다. 반박이나 반론을 펴는 대신 그는 말없이 일어서더니 기저귀 몇 종류를 들고 와서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등등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좀처럼 떠나지 않는 새, 새소리에 민감한 어머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냐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냐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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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80매들이 대용량 '실속형' 패드 한 상자와 40매들이 팬티형 기저귀 한 상자를 주문해놓고 그것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내 마음은 야릇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기억된다. 아침부터 오후 2시 무렵까지 스무 번도 넘게 밖을 내다보는 연방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보다 나은 기저귀가 또 있나 찾아보고 있었다. 그때 어느 순간 새가 방으로 들어왔고, 잠든 줄 알았던 어머니가 어떻게 그 소식을 알았는지 "새네, 새가 왔네"하고 중얼거리며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없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계셨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결코 새를 좋아하는 성품이 아니었다. 밭에서나 논에서나 새만 보면 훠이, 훠어이, 하고 쫓아 버리기만 했을 뿐 그들을 불러들인 적은 없었다. 농사 전문가인 어머니에게 새는 도둑이거나 도둑에 준하는 훼방꾼이었을 뿐 손님은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가 새를 반가워하신다. 너무도 반가워서 말도 잘 안 나온다는 듯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며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하신다.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어쨌든 나로서는 일단 새를 밖으로 내보내고 볼 일이었다. 짹, 하고 단조로운 소리를 내며 날개를 한 번 파닥거릴 때마다 잔 깃털이며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서 콧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새는 좀처럼 밖으로 나가주지를 않았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두 손에 보자기를 들고 마구 휘둘러대며 "나가 인마, 나가라니까" 소리를 질러보지만 녀석은 방에서 목욕탕으로 반복 왕래하며 짹, 짹 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새가 짹 소리를 낼 때마다 아이고, 소리를 내며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다하시는 거였다.

그러는 동안 주문한 기저귀가 도착했다. 받아놓고 보니 그 양이 엄청나서 갑자기 재벌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과도한 포만감 때문인지 한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허둥거렸다. 포장을 뜯어놓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 이런, 이것이 결국은 죄다 쓰레기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닷없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캄캄해지고 있었다. 미련하게도 나는 기저귀만 생각했을 뿐 그 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저귀마저도 아마 관념 속의 기저귀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빨래줄에 널려서 하얗게 펄럭거리는, 빨고 쓰고를 되풀이하는 그런 기저귀 말이다.

밖으로 나간 새는 신기하게도 다른 유리창은 외면하고 오직 여기에서만 안을 들여다보며 짹, 짹 단조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간 새는 신기하게도 다른 유리창은 외면하고 오직 여기에서만 안을 들여다보며 짹, 짹 단조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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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는 동안 새는 어느새 밖으로 나가 있었다. 그런데 멀리 떠나지를 않고 유리창에 붙어 앉아서 방 안을 들여다보며 계속 짹, 짹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1인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화장실 출입을 용이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집을 죄다 뜯어놓은,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새의 잠자리만 없애고 만 형국에 처해버린 나는 아닌게아니라 시위의 대상이 될 만도 하다, 뭐 그런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해석은 달랐다. 어머니는 새가 유리창에 붙어 앉아서 짹 소리를 내면 아이고, 새네, 하고 즉각 반가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루, 이틀, 닷새, 열흘, 보름이 넘도록 새는 떠나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포롱 날아서 마당으로 멀리 가 버리고, 내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면 녀석은 다시 유리창에 붙어 앉아 짹 소리를 내는 거였다. 쌀을 잘게 빻아서 먹이라고 내주었지만 녀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당의 떼죽나무에 관상용으로 걸어두었던 새 집을 떼어다가 처마 밑에 달아놓고 여기가 너희 집이다, 이것을 써라, 하고 당부도 했건만 녀석은 역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밖에서 시위만 하지 말고 이것으로 집을 삼아라 했건만 새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밖에서 시위만 하지 말고 이것으로 집을 삼아라 했건만 새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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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나는 서서히 공포 비슷한 것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니와 새는 여전히 서로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새와 어머니가 나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 은밀한 놀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그저 구경꾼일 뿐이다. 새와 어머니가 주고받는 어떤 암호가 있다는 엉뚱한 생각만 들 뿐이다. 산처럼 쌓아놓은 기저귀도 문득문득 어이없고 맹랑하고 우스꽝스럽게 여겨진다.

내가 지금 기저귀 따위나 차고 있을 군번이냐? 하고, 그렇게 어머니가 새에게 묻는 형식으로 아들을 조롱하는 것 같다. 그러면 새가 이런 답을 한다. '야 인마, 네 손으로 어머니의 똥을 직접 만지면 안 되냐?' 

아무래도 쓰레기로서의 운명이 예정된 기저귀가 아닌 다른 기저귀거나 혹은 기저귀 자체를 대체할 만한 뭔가 방법을 찾아 연구를 해야만 할 것 같다. 


태그:#치매, #기저귀, #새, #어머니, #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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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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