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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일

영어를 공부할수록 이 외국어가 비유의 산물임을 이해한다. 문법, 발음, 토론, 청취 등 모든 영역이 흥미롭지만 최근엔 특히 숙어 익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중엔 한국의 우화나 속담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한 것도 있고, 어떤 말들은 어휘를 따라 상황을 그리면 너무나 공감이 돼 웃음이 난다.   

put one's foot in one's mouth. 직역하면 '입 안에 발을 물었다'이다. 일상에서 종종 처하는 상황으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뜻이다. When Norah called her boyfriend by her previous boyfriend's name, she really put her foot in her mouth!와 같이 활용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현 남친을 전 남친 이름으로 불렀으니 입에 발을 문 듯하지 않겠나. 

다음은 hole one's horses다. 같은 의미로 keep one's shirt on이 있다. 각각 누군가의 말과 셔츠를 붙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엔 뭔가 긴박한 사정이 있는데 시간을 끌고 있는 듯하다. 이 숙어의 공통된 뜻은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다', '인내하다'이다. 활용하면 Hold your horses! I'm not ready to go yet.(기다려! 아직 준비 중이잖아)이다.

우리네 우화를 떠올리게 하는 숙어는 break a leg다. '다리를 부러뜨리다'라고 해석하는 순간 '흥부와 놀부' 이야기가 떠오른다. 동생 흥부가 다리 부러진 제비를 구해줬더니 이듬해 봄에 금은보화가 든 박씨를 물어다줬다는 줄거리. 고약한 놀부 심보에 관한 뒷이야기는 배제하고 이 숙어의 뜻은 '행운을 빈다'이다. 

끝으로 "화장실 가고 싶어요"를 완곡하게 표현한 회화 한마디를 보자. My mother's nature is calling me. 어머니의 본성 혹은 자연이 날 부른다고 한다. 의미를 파악하는 순간 키득 웃음이 났다. 이토록 함축적인 비유가 또 있을까. 화장실을 뜻하는 또다른 단어로 rest room이 있는데 우리네 '해우소'를 생각나게 한다. 

전 룸메이트가 남기고 간 금니
 전 룸메이트가 남기고 간 금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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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일

새 룸메이트가 왔다. 이름은 료코, 일본인 여자다. 지난해 여름 교토의 미미즈카(관련기사: 슬픈 귀무덤에서 만난 일본인 "정말 미안해요")에서 만난 아름다운 교코 아줌마가 기억났다. 어제 아침 "기왕이면 차분한 성격의 외국인이 오면 좋겠다" 했는데 바람이 적중했다. 나보다 한 살 많지만(그래서 더 좋다. 지금껏 어학원 최고령이었다!) 일본인 특유의 귀염성이 있다.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말을 하면 괜스레 정이 간다.

전 룸메이트가 남긴 물건들은 말끔히 정리했다. 세탁만 하고 찾아가지 않은 옷가지와 그녀의 '심볼(symbol)'이었던 킬힐은 기숙사 현지 여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알람시계와 인스턴트 커피, 머그잔은 고마운 맘으로 본인이 챙겼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당황스러웠지만 버릴 수 없었던 그녀의 '금니'.

세면실 휴지통에 버리려다 생각을 바꿨다. 대다수 현지인들의 궁핍한 생활을 생각하니 분명 긴요하게 쓰일 듯 했다. 화장지에 싸서 사물함에 넣어두고 며칠 적당한 임자를 찾았다. 그리고 오늘, 평소 만남이 잦던 또다른 필리피노 여직원에 전달했다. 6개월 된 아이가 있는 젊은 엄마였는데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새해 전야와 당일에도 종일근무를 섰다.   

행여나 기분이 상할까, 괴상하게 여기진 않을까 여러 번 당부를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건'을 건넸더니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다소 엽기스런 상황이었지만 "정말 가져도 되느냐" 누차 묻는 걸 보니 주인을 잘못 찾은 것 같진 않았다. 값어치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도움이 되길 바란다.

어학원에 함께 살던 엄마개 '뷰티'와 장난꾸러기 아들 '윈터'
 어학원에 함께 살던 엄마개 '뷰티'와 장난꾸러기 아들 '윈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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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5일

'윈터'와 '카카이' 남매가 떠났다. 녀석들은 어학원에 사는 어미개 '뷰티'의 새끼들이다. 정확히 언제 어디로 입양됐는지 모르겠다. 온종일 어학원 전역을 누비다 이른 저녁이면 풀밭 어딘가서 세상 모르고 잠을 자던 꼬마들이었다. 요며칠 안 보여서 웬일인가 했는데 물어보니 다른 곳에 살러 갔단다. 워낙에 귀염을 떨었던지라 마음이 허전하다.  

자식들이 원할 때 언제 어디서고 젖을 내주던 뷰티는 자는 모습이 바뀌었다. 해가 드는 곳 아무데나 벌렁 누워있기 일쑤였는데 어제오늘 따르는 직원 곁에 몸을 둥글게 말곤 잠들어 있었다. 새끼 떠나보낸 서운함이 커서일까, 가슴이 짠하다. 잠든 중에 발랑 깐 배를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던 태평했던 꼬마들이 어디 가서 구박이나 받지 않음 좋겠다.

뷰티의 두 아이 윈터와 카카이
 뷰티의 두 아이 윈터와 카카이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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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와 윈터, 카카이 만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정이 든 동물이 또 있다. 도마뱀이다. 깊은 밤이면 목탁 같기도, 개구리 같기도 한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알고보니 도마뱀의 것이었다. 첫 만남은 기숙사 방문 앞이었는데 발치에서 죽은 척을 했다. 색깔도 하얗게 질려 정말 죽었나 했는데 잠시 후 다시 보니 사라졌다.

그제 아침엔 아예 방 안 천장에 붙어 있었다. 좀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제법 귀염성이 있었다. 앙증맞은 손발가락에 얼굴도 꽤 호감형이었다. 룸메이트 료코 역시 도마뱀의 외모에 호감을 나타냈는데 두 마리는 용납할 수 없었던지 오늘 본 새로운 녀석은 집요한 설득(?) 끝에 내보냈다.

도마뱀과 함께 어학원 잔디에 집단서식하는 파충류로 개구리도 있는데 어른 주먹 만한 그것들은 아무리 봐도 친해질 수가 없다. 외모를 이유로 한 차별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비오는 날, 풀밭 사이 콘크리트길 위에 떡 하니 버틴 그들을 보면 분명 우세한 위치임에도 뒷걸음질이 쳐진다.

개구리와 달리 제법 귀염성 있게 생긴 도마뱀
 개구리와 달리 제법 귀염성 있게 생긴 도마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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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twittwr ID : sindart77 홀로 꿈을 좇는 여정에 매력적인 벗들과 멘토들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태그:#금니, #외국어, #미미즈카, #필리핀어학연수, #공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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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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