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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4일 아침부터 며칠간 모 방송국의 한 다큐멘터리 촬영에 동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번째 이런 촬영에 임하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는데요. 방송이란 머쓱한 순간을 많이 겪어야 합니다. 더러 아주 고상한 척 PD나 카메라 감독의 부탁대로 동선도 연출을 해줘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저 '고상'하고는 별로 친해 본 적 없습니다. 성질 참 쥐뿔도 잘 난 거 하나 없으면서 말입니다. 한 마디로 잘라 말해 '개떡' 맞습니다.

이번엔 처음부터 제가 하고 싶은 말 그냥 주절거리기로 하고(물론 예전에도 대본 같은 건 없었지만) 시작했는데 이거 추위가 장난 아니더군요. 한계령에서 먼저 몇 컷 촬영을 하기로 했었는데 정상에서는 강풍에 카메라 고정이 안 됩니다. 결국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와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양희은의 노래로 불려진 한계령은 이 산자락을 고향으로 둔 제가 30년 전 썼던 한계령에서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시인 정덕수로 알려진 저는 이 산 아래 오색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고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한계령에서 바라본 등선대 암릉 양희은의 노래로 불려진 한계령은 이 산자락을 고향으로 둔 제가 30년 전 썼던 한계령에서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시인 정덕수로 알려진 저는 이 산 아래 오색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고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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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겨울 하늘을 비껴 날카롭게 날아든 햇살을 받아 산은 눈부십니다. 늘 보는 산이지만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탄성이 나옵니다. 가끔은 혼자 저 산자락을 휘돌 때도 많지만, 이만큼 떨어져 바라보는 산은 또 다른 경외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만약 이런 산을 고흐가 보았다면 비틀린 듯한 노란색으로 표현을 했을까요? 그의 작품을 보면 노란색만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연의 색을 고르게 사용해 강렬한 이미지를 창조해냈으니, 분명 이 차갑고 강렬한 인상을 역시 나름의 색으로 표현했을 겁니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팀과 동행하기로 한 까닭은, 그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살아 생명이 있는 물 이야기로 4대강사업 반대의 이야기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 한계령과 칠형제봉을 촬영중인 철영팀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팀과 동행하기로 한 까닭은, 그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살아 생명이 있는 물 이야기로 4대강사업 반대의 이야기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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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해가 비쳐드니 태양의 화가 고흐가 연상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가 표현해낸 그만의 색채들이 지닌 온기는 그가 영혼과 생명까지 바쳐 그렸던 그림이기에 느껴지는 감동입니다. 설악의 겨울 칠형제봉은 설악이 빚어낸 또 다른 색의 마술입니다.

'한계령에서'를 쓴 지 올해 만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계령에서가 노래 한계령으로 불린지 만 25년이 넘어섰고요.

지금 이 시점에서 보는 '저 산은' 과연 여전히 30년 전의 그런 감정과 같을까?

오른쪽은 한계령, 왼쪽은 필례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발원한 물이 합치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을 걸어 넘었습니다.
▲ 남대천의 발원지 중 한 곳 ‘한계령’ 오른쪽은 한계령, 왼쪽은 필례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발원한 물이 합치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을 걸어 넘었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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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과 3일 아침에 내린 눈이 골짜기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계령에서 시작된 물줄기 두 개가 만나고, 바로 아래에서는 또 다시 석고덩골에서 흘러온 물과 몸을 섞으며 오색천은 시작됩니다. 점봉산 물도 만나고, 망대암과 온정골에서 흘러 온 물들이 만나 수렁거리며 또 다른 골짜기들을 타고 흘러온 물들과 서로를 의지해 동해로 흐릅니다.

바다로 흐르는 남대천을 이루어주는 물길들을 보면 남한강이나 낙동강의 축소판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남대천이란 큰 줄기를 이루기 위해 몇 개의 내가 있고, 그 냇물들은 작은 골짜기들을 수 없이 합하여 이루어집니다. 불과 20~30km 남짓한 거리에서 바다와 만나는 남대천이 이러하니 700리 낙동강이야 어찌 그 작은 골짜기들을 모두 헤아리겠습니까.

빈틈없이 얼었을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골짜기도 곳곳에 숨구멍을 만들어 호흡합니다.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호흡을 통해 또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숨구멍인 것이지요.

해발 800m가 넘는 이곳의 영하 10도 이하 기온이 바람을 더해 귀가 떨어져나가고, 뺨이 찢길 거 같은 통증을 느끼게 합니다. 그 순간 겨울에도 얼지 않는 골짜기가 생각났습니다.

혹한에도 얼지않는 오색온천 용출구와 그 주변 골짜기에 도착한 촬영팀이 처음 만난 설악의 얼지않는 골짜기에 신비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제가 언 손을 이곳에서 녹이고 온기가 느껴지는 바위에 앉았습니다.
▲ 오색온천의 자연 용출구에서 촬영하는 팀 혹한에도 얼지않는 오색온천 용출구와 그 주변 골짜기에 도착한 촬영팀이 처음 만난 설악의 얼지않는 골짜기에 신비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제가 언 손을 이곳에서 녹이고 온기가 느껴지는 바위에 앉았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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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에 도착해 제가 언 손을 물에 담그고 앉아 있으려니 카메라를 챙겨 촬영팀이 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겨울 설악의 골짜기를 본 이들은 신기한 모양입니다.
제가 샘에 언 손을 담그고 녹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 손을 촬영하더니 묻더군요.
"정 선생님, 이 물은 어떻게 된 거지요?"

"이곳에서 산 위로 200m 지점에 온천수가 나옵니다. 그 골짜기를 비롯해 이곳도 온천수가 샘솟는 겁니다. 1월 중순을 막 넘기면 저 골짜기에서는 개구리가 알을 낳습니다."

온천장이 있는 게 아니라 온천수가 샘솟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그 물이 흐르는 골짜기나 샘은 얼지 않습니다. 유황을 비롯한 다양한 광물질이 포함 된 온천수가 흐르다보니, 미생물 번식이 왕성해 녹조가 낀 것처럼 푸른 물이끼가 많습니다. 바다에서도 뜨거운 온천이 솟는 곳엔 다양한 생물이 번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바위로 이루어진 협곡이라 물은 땅으로 스며들지 않고 졸졸거리며 흐릅니다.

유전적인 습관에 따라 동면에서 깬 개구리들이 온천수로 향하다 눈밭에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 동면에서 깨 웅덩이를 향하다 얼어버린 개구리 사체 유전적인 습관에 따라 동면에서 깬 개구리들이 온천수로 향하다 눈밭에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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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 웅덩이에 가면 낙엽 속에 개구리들이 동면에서 깨어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말을 해주자 앞서 가던 촬영팀이 소리칩니다. 가서 보니 동면에서 깬 개구리들이 웅덩이로 들어가려고 움직이다 그대로 얼어버린 게 보입니다. 개구리들은 이런 상태로 몇 시간 정도는 족히 버텨냅니다. 기온만 금방 올라간다면 얼어서 부서지던 몸도 온기가 돌고 살아나지요.

눈이 내리기 전부터 이 상태로 있었다면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겠다 싶습니다. 얼마나 혹독한 추위였으면 뛰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을까요.

200m 이상을 흘러 온 온천수들이 바위틈에 팬 웅덩이에 고입니다.
이곳에 두껍게 쌓인 낙엽은 개구리들의 보금자리입니다. 이곳에서는 1월 중순이 넘어서면 개구리알에 가득합니다.
▲ 온천수가 흐르는 골짜기의 웅덩이 200m 이상을 흘러 온 온천수들이 바위틈에 팬 웅덩이에 고입니다. 이곳에 두껍게 쌓인 낙엽은 개구리들의 보금자리입니다. 이곳에서는 1월 중순이 넘어서면 개구리알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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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에 도착했습니다. 찬물이 흐르는 방향은 얼음이 얼어있으나, 온천수가 흐르는 곳은 김이 피어오르며 힘차게 흐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 물 속엔 이미 동면에서 깬 개구리들이 알을 품을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촬영팀도 이제야 조금 전 보았던 개구리들의 모습에 대해 이해가 된 모양입니다.

외부는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이지만 이 웅덩이에만 들어오면 걱정없습니다.
우리도 저리 편안한 쉼터를 찾건만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개구리들이 일찍 동면에서 깬 이유도 그들만의 삶의 방법이겠지요.
▲ 온천수 웅덩이의 개구리들 외부는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이지만 이 웅덩이에만 들어오면 걱정없습니다. 우리도 저리 편안한 쉼터를 찾건만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개구리들이 일찍 동면에서 깬 이유도 그들만의 삶의 방법이겠지요.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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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웅덩이엔 낙엽이 두껍게 쌓여있습니다. 한 잎, 한 잎 떨어진 낙엽이 물에 젖어 가라앉기를 거듭한 결과겠지요. 그런데 낙엽을 조금 들추자 개구리들이 보입니다. 어딘가에서 동면에 들었었을 개구리들이 이 웅덩이를 향해 영하의 기온에도 거침없이 뛰어왔나 봅니다. 더러는 미리 도착하고, 더러는 오는 도중 죽음을 맞으며…

1시간 이상 그곳에 있었는데 추운 걸 모르겠더군요. 불과 30여 미터만 나가면 살을 에는 바람이 휘몰아치는데 말입니다. 온기가 느껴지는 바위에 그대로 걸터앉아 아주 작은 골짜기를 바위에 만들며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흐르던 물은 곧잘 저와 같은 웅덩이를 만들어 놓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바람에 쓸려온 낙엽들이 물에 빠지고… 그 낙엽을 받아들인 물이 그대로 소용돌이칩니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온 이들도 겨울 설악에서 만난 이런 자연 환경에 대해 다소 의외란 생각이 든 모양입니다. 이런 골짜기가 이곳뿐만 아니라 경북 울진에 가도 있다는 걸 알려주었지요.

물론 백두산에도 있습니다. 장백폭포 아래 손을 담그기도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온천이 샘솟고 있습니다. 동토의 땅 백두산에 말입니다.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 설악, 한계령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빛에 고흐를 떠 올리게 된 건 고호의 강렬한 색채들이 빚어내는 마술 같은 온기가 그리웠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고흐를 떠 올리며 온기가 그리워지니 이 얼지 않는 골짜기를 생각하게 된 거고요.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1882년 10월 22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아이들이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며, 저와 아이들의 마음(생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은 빈 그릇이다.
늘 비어있기에 채우려고 한다.
같은 마음이라 해도 나와는 다른 형태의 마음이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한 알의 씨앗이다.
어떤 토양을 만나고 조건을 갖추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자라게 된다.'

덧붙이는 글 | 다음뷰에 동시에 개재 돼 있습니다.



태그:#한계령, #시, #양희은, #정덕수, #1월의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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