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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앞의 크리스마스 트리
 서울시청앞의 크리스마스 트리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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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날씨가 풀리면서 싸리눈이 내린 월요일(27일) 저녁, 시청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콘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트리를 잠시 감상하다가 덕수궁 길을 따라 이화여고에서 열리는 <진보집권 플랜> 북콘서트를 보느라 늦은 귀가를 했습니다.

"다한 아빠 내일 생일이네."
"아빠 생일 축해요오용~~"

나는 깜박 잊고 있었는데 아내와 딸이 내일이 생일임을 알려줍니다.

"생일은 무슨 그냥 넘어가자."
"아니 왜?"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씻은 후 홀로 방에 들어가 북콘서트에서 받은 책을 읽었습니다. TV를 없앤 뒤로는 보고싶은 프로그램은 컴퓨터로 다시보기를 하는데 개그프로그램인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방문 틈으로 흘러들어 약간은 독서를 방해합니다.

책을 읽고 있는 내 옆으로 아내가 오더니 안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며 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합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는 거야?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강좌 듣는 것은 다 끝났어?"
"응, 오늘로서 신청한 것들은 다 끝났는데... 1월부터 또 시작하는게 있기는 한데..."

말끝을 흐리며 마침 받아온 강좌관련 전단지를 일부러 아내 앞에 보이며 말했습니다.

"정치철학강좌 이것도 듣고 싶기는 한데 그냥 안들으려고."
"왜? 돈이 없어?"
"....."

아침, 땅바닥을 긁는 소리에 창문을 열어보니 밤새 눈이 제법 쌓였습니다. 더 지체할 수가 없어서 옷을 챙겨입고 나가려다 오늘이 내 생일인데 미역국은 먹어야 할 것 같아 미역을 물에 담그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삽으로 밀고 쓸고 하다보니 구슬같은 땀방울이 눈 위로 떨어집니다. 연세가 많은 이웃 할머니와 아주머니도 나옵니다. 내집 네집 따지지 않고 큰 길로 나가는 골목길과 계단의 눈을 치웠습니다. 지나가는 주민들이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는 맛에 좀 더 힘을 냅니다만 쌓인 눈 치우는 것은 정말 힘드네요.

밤새 많은 눈이 내렸지만 부지런한 이웃들과 함께 싹싹 치웠습니다.
 밤새 많은 눈이 내렸지만 부지런한 이웃들과 함께 싹싹 치웠습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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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치우느라 아침이 늦었습니다. 평소에 가게 때문에 일찍 나가는 아내는 아침을 같이 먹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은탓에 같이 아침을 먹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하면서 저녁에 맛있는 것을 먹자고 합니다.

"맛있는 것은 뭐 그냥 있는 거 먹어. 내가 알아서 맛있는거 해놓을게."
"진짜? 알았어. 생일선물은 뭐 받고 싶은 거 없어?"
"선물은 뭐... 없어 얼른가."

아이들과 미역국에 아침밥을 먹고 난 후, 마감이 며칠 뒤인 정치철학 강좌를 신청할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젯밤에 나의 속뜻을 비쳤는데 눈치 빠른 아내가 몰라준 것이 좀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8월부터 12월까지 각종 강좌를 듣느라 수시로 귀가가 늦었고, 어느 한 달은 주말 내내 밖으로 나가는 일정이라서 가족과 함께 하지 못했던 지라, 염치가 없어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못했지요. 물론 내 통장의 잔고가 여유 없다는 것 때문에 더 소심해졌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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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인문고전 강연을 들으면서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번 철학강좌를 못 들으면 너무 아쉽고 후회할 것 같아서 염치 불구하고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물론 결과는 제 예상대로 입니다만,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입니다.

3월까지는 고정수입이 없다는 탓만 하기에는 제 자신이 무능력해 보여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해서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가는 것도 삶을 한발짝 더 진보시키는 것이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하는 강신주 교수의 진보적 정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 특강비용을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받았습니다.



태그:#생일선문, #아내, #인문학,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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