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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09년 2월 10일 오전 서울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철거민 참사'와 관련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 내정자와 서울지방청장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09년 2월 10일 오전 서울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철거민 참사'와 관련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 내정자와 서울지방청장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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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경찰청장에 임명됐다가 용산참사 발생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자신이 낙마할 당시 "야당이 국회 문을 닫겠다고 협박했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20일 김 전 청장은 <경주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경찰총수 지명 이틀 뒤에 용산참사가 났고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한 것"이라며 "당시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야당에서 내가 사퇴하지 않으면 국회 문을 닫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경찰청장을 사퇴한 것은 당시 경제위기와 정치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

그는 사퇴를 표명할 당시에도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비롯한 국가적 현안이 산적한 시점에서 개인의 진퇴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확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야당의 협박'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김 전 청장은 또 "용산 참사의 분명한 본질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경찰관이 무고한 시민을 죽게 한 것이 아니라, 전국철거민연합이란 단체가 불법폭력으로 자기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웃건물에 불을 지르고 달리던 버스와 승용차를 향하여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무고한 시민이 언제 참변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촛불집회, 나라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

2008년 7월 서울경찰청장에 취임했던 김 전 청장은 그해 5월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전 청장은 "그때 나는 이러다가 나라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며 "수많은 시위대가 밤새도록 도로를 점거하고 청와대로 진격하면서 '대통령 물러가라'며 시위를 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수도 서울의 치안 책임자로서 이러한 불법과 무질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결국 취임 한 달여 만에 완전히 질서를 잡았다"고 말했다.

또 "만약 수많은 시위대가 청와대로 난입했다면, 과격한 불법폭력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큰불상사라도 났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라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자부심을 가진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김 청장은 촛불집회 진압 당시 색소를 이용해 시위자들을 검거하는 등 과도한 진압과 '유모차 부대' 등에 대한 과잉수사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 전 청장은 경찰청장 낙마 후 자신의 고향인 경북 경주로 내려가 생활하고 있으며 6·2지방선거에서 경주시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지만 출마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울경찰청장에서 사퇴한 직후인 2009년 7월,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에 오르는 등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는 <경주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도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30년 경찰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다. 이제 새로운 인생의 길을 가야한다"며 "경찰관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 했듯이 만일 기회가 된다면 나라와 고향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청장은 1954년 경북 영일 출생으로 경주 계림초등학교와 경주중학교를 거쳐 대륜고등학교와 영남대를 나온 전형적인 영남 인사로 이명박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된다.


태그:#김석기, #경찰청장, #용산참사,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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