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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에서 찍은 우리 동네. 이웃사촌들이 많이 사는 평화스러운 곳이다.
 집앞에서 찍은 우리 동네. 이웃사촌들이 많이 사는 평화스러운 곳이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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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이 생각하던 미국이 아니어서 별로 남고 싶지 않은가 봐요."

방문학자인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와 있는 부인이 아이들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두 아이들은 이제 얼마 후면 제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곳에서 인간답게(?) 학교생활을 했던 아이들인지라 혹시 미국에 남아 공부하기를 원하는가 해서 그 부인이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대뜸 이런 대답이 나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생각했던 미국이 아니어서 남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물론 이런 이유가 전부는 아닐 테지만 그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웃음이 나왔다. 자기들이 생각하던 미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미국? 아니면 우리나라 TV 뉴스에서 보았던 미국 특파원들이 서 있던 마천루 숲의 워싱턴 DC나 뉴욕?    

하긴 우리 아이들도 이곳이 너무 조용하고 심심해서 재미없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왜냐하면 미국으로 오기 전,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곳이 이곳과는 비교가 안 되게 '시끄럽고 재미있는' 대도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심심해하고 재미 없어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이곳이 좋았다. 사람들로 북적대거나 교통이 번잡하지도 않고, 날씨 또한 너무 춥거나 덥지도 않으며, 사람들이 걱정하는 여름철 불청객인 허리케인도 비켜가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치안도 그런대로 만족스럽고 국립공원도 가까이 있어 아름다운 사계절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내 만족에 한몫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사람'이었다. 안치환도 노래했듯이 누가 뭐래도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우니까.

낯선 이방인으로 살면서 이번 겨울에 받았던 이웃사촌들의 훈훈한 사랑을 나눠보려고 한다.

# '감동 수프' 가져온 앞집 아가씨

이웃에게 줄 선물로 쿠키를 굽고 포장을 했다.
 이웃에게 줄 선물로 쿠키를 굽고 포장을 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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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크리스마스 장식 전구만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던 칠흑같이 어두운 밤, 누군가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이 밤중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잠시 주저하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어두운 불빛 속에 아가씨 두 명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아가씨는 이따금 눈인사를 했던 길 건너편에 사는 이였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사실 이름도 몰랐다. 

그 아가씨는 자신의 이름을 말한 뒤 옆에 선 아가씨를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두 아가씨는 내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친 뒤 예쁜 바구니를 건넸다.

바구니 안에는 따끈따끈한 수프가 들어 있었다. 갖은 야채와 햄, 토마토로 만든 수프였다. 수프 옆에는 함께 먹으면 좋을 비스킷도 들어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저녁식사를 마친 뒤였지만 다정한 이웃이 만들어 온 따끈한 수프를 맛보기 위해 다시 수저를 들었다. 꿀맛이었다. 그런데 맛있는 수프에 정신이 팔려 그만 '감동 수프'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앗, 나의 실수!

나도 우리집 건너편에 사는 아가씨에게 선물을 갖다 줬다. 직접 구운 쿠키와 너트 세트를. 선물을 주고 돌아서는데 4살 먹은 그 집 고양이가 졸졸 따라왔다. 따라오면서 연신 내 바지 끝을 훑는데... 좀 무서웠다. ^^
 나도 우리집 건너편에 사는 아가씨에게 선물을 갖다 줬다. 직접 구운 쿠키와 너트 세트를. 선물을 주고 돌아서는데 4살 먹은 그 집 고양이가 졸졸 따라왔다. 따라오면서 연신 내 바지 끝을 훑는데... 좀 무서웠다. ^^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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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선물을 준비해서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나도 선물을 준비해서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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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클로스 선물보따리 준 마가렛 할머니

마가렛은 우리 옆집에 사는 독거노인이다. 변호사였던 딸이 있지만 그 딸은 지병 때문에 일을 못하고 사회복지연금에 의지해 혼자 살고 있다. 여든 셋의 아일랜드 할머니인 마가렛 역시 해군으로 복무했던 남편이 죽은 뒤 연금에 의지해 혼자 살고 있다.

혼자 사는 마가렛을 볼 때면 나는 늘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이따금 마가렛 집에 가서 말동무를 해주고 마가렛 얘기에 귀를 기울여줬다.  

거동이 불편한 마가렛을 대신해 길가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갖다 주는 것도, 쓰레기 수거차가 오는 월요일에 마가렛 쓰레기통을 내놓는 것도 내 일이었다. 사실 그 일은 내 우편물을 가지러 갈 때, 내 쓰레기를 내놓을 때 몇 발짝만 보태면 되는 쉬운 일이어서 솔직히 힘든 건 없었다. 

하지만 마가렛은 내 도움을 대단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크리스마스 전전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마가렛 우편물을 들고 들어갔을 때 마가렛은 기다렸다는 듯 내게 쇼핑백을 내밀며 포옹을 했다.

"나영, 늘 도와줘서 고맙다. 내가 너한테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오, 천만에. 무슨 돈을. 내 어머니 생각하면서 기쁘게 하는 일이니 부담 가질 것 없어요."
"그래도 너무 고맙지."

집에 돌아와 마가렛이 준 선물 보따리를 풀어보니 이것저것 많았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두고 간 선물보따리처럼. 스웨터와 앨범, 손전구와 라벤더향 비누.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고 한다. 비록 물 설고 낯선 이역땅이지만 이곳에도 따뜻한 이웃사촌은 있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먼저 이방인에게 손을 내밀고 따뜻한 정을 부어준 사람들, 참 고맙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우리나라에 와 있는 많은 이방인들도 내가 받은 '이웃사촌'들의 진한 사랑과 정을 한국인들로부터 받았을까.

마가렛 할머니의 선물 쇼핑백에 붙은 카드
 마가렛 할머니의 선물 쇼핑백에 붙은 카드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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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선물.
 마가렛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선물.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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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웃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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