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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판 <정지용전집>에 오류가 있어 지적하고자 한다. 이 오류는 1988년 1월 초판에서 발생했는데 2003년 개정판에도 남아 있고, 2010년 현재에도 수정되지 않은 채 서점에서 일반 독서대중들을 만나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정지용은 1930년대 우리나라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1902년 5월 15일 충북 옥천에서 출생, 서울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동지사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를 지냈으며, 8·15광복 후 이화여전 교수와 경향신문사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33년 <가톨릭靑年>의 편집고문을 거쳐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박두진·박목월 등 청록파를 시인으로 추천했다. 그는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해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에 가입하였으며, 6·25 때 북한군에 끌려간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월·납북 시인으로 분류되어 1988년 이전까지 그의 실체와 그가 남긴 작품들은 금기시되었다.

정지용전집2(초판)
 정지용전집2(초판)
정지용전집(개정판)
 정지용전집(개정판)

지난 1988년 월·납북 예술인들의 작품에 대한 해금조치와 함께 그들의 전집 혹은 선집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정지용도 마찬가지다. 1988년 1월 민음사에서 출판한 <정지용전집>은 당시 서강대 김학동 교수를 편집자로 내세워 1권 시, 2권 산문의 두 권으로 선보였다. 이후 같은 해 7월에 2쇄를 펴내면서 전집류로는 보기 드물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정지용 연구자들에게 자료로 제공됐다. 이에 2003년 4월 민음사는 개정판을 출간했는데 초판이 활자 식자편집인 반면 개정판은 전산사식을 통해 한층 멋스러운 편집으로 가히 정지용문학의 집대성이란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중 2권의 첫머리에 실린 <소묘(素描) 2>와 <소묘(素描) 3>이 편집상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소묘(素描)>라는 작품, 그리고 전집의 오류

정지용의 <소묘>는 1933년 6월 <가톨릭靑年>이 창간되면서, 편집고문으로 있던 그가 창간호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한 산문이다.

1은 프랑스 신부에 대한 인상, 2는 성당 여학생과의 교우, 3은 출판사와 성당에서의 일상, '밤'이란 부제가 붙은 4는 서재에서의 사색 그리고 '람프'란 부제가 붙은 5는 람프에 대한 단상을 적고 있다. 문예미학적 가치보다는 그저 가톨릭 종교를 바탕으로 한 정지용의 일상사를 유머와 위트를 섞어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산문들이다.

그런데 이들 작품 중 <소묘 2>와 <소묘 3>이 민음사 판 전집에 수록되면서 편집상 커다란 오류로 말미암아 작품의 내용 자체가 첨가되고 삭제되어 버렸다.

<가톨릭靑年> 2호(1933년)의 54, 55 두 쪽에 걸려 발표된 <소묘 2>는 아래와 같다.

<가톨릭청년>에 발표된 정지용의 산문 <소묘 2>의 원문
 <가톨릭청년>에 발표된 정지용의 산문 <소묘 2>의 원문


그런데 이 작품이 민음사 판 전집 초판(13∼15쪽) 그리고 개정판(20∼23쪽)에 실리면서는 마지막 부분에 몇 개의 단락이 추가된다.

민음사 간, 정지용전집2(초판) 15쪽, <소묘 2>의 마지막 부분
▲ 정지용전집2(초판) 민음사 간, 정지용전집2(초판) 15쪽, <소묘 2>의 마지막 부분
민음사 간 정지용전집2(개정판), <소묘 2> 마지막 부분
 민음사 간 정지용전집2(개정판), <소묘 2> 마지막 부분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素描 2

  <전략>
   작자는 더 적고 시퍼 시퍼하는 버릇이 잇다.
   성당안 祭臺 압헤는 성체등이 걸녀잇다.
   켠 불이―고요히 기도하는 중에 보이는 것이니―한나제도 신비롭게 커젓다 적어젓다 할 때 거리에는 무수한 희랍적 쾌활이 이러섯다 수그러젓다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적이 아님으로 커젓다 적어젓다 보아도 조코 그러케 안보아도 무방하다. 이는 성체등도 철저한 책임은 사양 할 것이니, 다만 至聖한 옥좌를 비추는 영원한 붉은 별임으로.
   붉은 벽돌 빌딩들이 후르륵 떨고 이러스고 이러스고 한다.
  『남대문통을 지나는 市民제씨 脫帽!』
   청제비 한쌍이 커―브를 도라 슬치고 간다.
   유리쪽에 날ㅅ벌네처럼 모하드는 비ㅅ낫치 다시 방울을 매저 밋그러진다.
   우리들의 쉐뽈레는 아조 눈물겹게 일심으로 달닌다.
   C인쇄공장 정문에 드러스면서 박쥐우산 날개를 채곡 접어들고 교정실 문을 열 때는 모자를 벗고테―블에 돌아안저선 유리잔에 찬물을 마섯다. 이리하야 우리들의 다만 십분간의 사치는 滑走하여 버리고 결국 남대문 큰거리를 지나온 한 시민이엿다.
   얼마 안잇서 교정ㅅ거리가 드러왓다.
   활자 냄새가 이상스런 흥분을 이르키도록 향기롭다. 우리들의 詩가 까만 눈을 깜박이며 소근거리고 잇다. 시는 활자화한 뒤에 훨석 효과적이다. 시의 명예는 활자직공의게 반분하라. 우리들의 시는 별보다 알뜰한 활ㅅ자를 운율보다 존중한다. 윤전기를 지나기 전 시는 생각하기에도 촌스럽다. 이리하야 시는 기차로 항로로 항공우편으로 신호와 함께 흐터저나르는 軍用鳩처럼 날너간다.
  『詩의 라디오 放送은 엇덜가?』
  『저속한 성악과 혼동되기 쉽다.』
  『詩의 전신발송은 엇덜가?』
  『電報詩!』
  『유쾌한 시학이나 전보시!』
   도라올 때는 B町네거리에서 회색뻐스를 탓다.

즉, '……다만 至聖한 옥좌를 비추는 영원한 붉은 별임으로.'에서 끝나야 할 내용이이 전집 초판에는 위에서 보듯이(진한 활자 부분) 몇 개의 단락이 추가되어 있다. 전혀 연결되지 않는 내용이다. 이는 초판과 개정판 모두 마찬가지이다(위 사진 박스 친 부분).

<가톨릭靑年>3호(1933년)의 61∼63 세 쪽에 걸려 발표된 <소묘 3>은 아래와 같다.
<가톨릭청년>에 발표된 정지용의 산문 <소묘 3>의 첫부분
 <가톨릭청년>에 발표된 정지용의 산문 <소묘 3>의 첫부분

그런데 이 작품이 민음사 판 전집(16∼18쪽)에 실리면서는, <소묘 2>와는 달리 62쪽 내용이 통째로 빠졌다.

   素描 3

   ……圓락을 줏는다……산뜻하고도 쾌활한 류행어를 고대로 直譯하드시 우리는 올나탓다.
   이중에는 말타기 노새타기를 욕심하는 이는 하나도 업다.
   붉은 우체통 엽헤서 비맛고 전차 기달니기란 무슨 초라한 꼴이랴!
   서울태생은 모름지기 圓락을 타라.
   손쉽게 드러온 쉐뽈레 한대로 우리는 王子然하게 그날 오후의 행복을 꼿다발 묵거들듯 하엿다.
  『타는 맛이 다르지?』
  『포드는 더 낫지!』
  『무슨? 쉐뽈레가 제일이야!』
  저즌 애스팔트우로 달니는 機體는 가볍기가 흰고무뽈 한개엿다.
  『순사만 세워두고 십지?』
  『다른 사람은 모두 빗겨나게 하구!』
  『하하……』
   ........(빠진 부분).........
   얼마나 허울한 내부인지 확실히 벼룩이 하나 크게 뛰엇다. 사나운 말갈기를 흠켜잡드시 하고 심한 동요에 걸되엿다.
   우리는 약속한 듯이 침묵하엿다. 표정 업는 눈은 아모곳도 아닌 곳 한가온대로 모히여 지난 엿새 동안에 제각기 마튼 <영혼의 얼골>을 살펴보는 것이다.
   <후략>

이는 개정판(24∼26쪽)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를 사진으로 보면 이렇다.

정지용전집(초판) 16쪽의 <소묘 3>
 정지용전집(초판) 16쪽의 <소묘 3>
정지용전집(개정판) 24쪽의 <소묘 3>
 정지용전집(개정판) 24쪽의 <소묘 3>

즉, 표시된 부분에 내용의 삭제가 보인다. 이는 바로 <소묘 2>에 추가된 내용이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가톨릭靑年> 3호에 발표된 <소묘 3>의 원문 중 62쪽을 보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가톨릭청년 3호에 발표된 정지용의 <소묘 3>  원문 중 62쪽
 가톨릭청년 3호에 발표된 정지용의 <소묘 3> 원문 중 62쪽

즉, 민음사판 전집은 <가톨릭靑年>에 발표된 <소묘 3>의 한 쪽 분량(<가톨릭靑年> 3호, 62쪽)을 <소묘 2>의 마지막에 그대로 붙여 편집하였고, <소묘 3>은 <가톨릭靑年> 3호의 발표 원문 61쪽 뒤에 곧바로 63쪽 내용을 이어 붙여 편집해 놓았다.

식자공의 오류인가 편집부의 착오인가

먼저, <소묘> 2와 3의 내용이 추가되거나 삭제된 것은 1차적으로 편집부의 단순한 착오로 추정할 수 있다. 민음사판 정지용 전집이 출간된 것이 1988년 1월이니 당시는 식자조판을 할 때이다. 이때 아주 사소한 실수가 위에서 보듯이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즉, <가톨릭靑年>에 발표된 원문을 낱장으로 복사하여 인쇄소로 넘겼을 것이고(혹은 일일이 원고지에 청서하였을 수도 있다) 복사 혹은 청서하는 과정에서 <소묘 3>의 두 번째 장이 <소묘 2>에 곧바로 붙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위 사진에서 보듯이 <소묘 2>는 2단 편집되었고 <소묘 3>은 한단이다. 2단 편집된 내용 바로 뒤에 한단으로 편집된 내용이 붙어 한 편이 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이상했을 것이다. 해금에 맞춰 빨리 출판해야 한다는 편집자의 조금증이 이런 착오를 불러일으켰고 문학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식자공의 무지가 이어지며 굳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정지용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정지용이 누구인가. 1930년대 한국 현대시단의 커다란 산맥이요 지금까지도 애송되는 <향수>의 작자로 매년 '지용문학제'를 거행하며 그의 이름을 붙인 문학상을 시상하고 문학관까지 건립하여 기리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시인이다.

그러한 정지용의 문학사적 위상을 생각할 때에 전집이 출판된 지 15년이 지나는 동안 정지용 관련 박사학위 논문 혹은 단편적인 연구논문이 수없이 쏟아졌지만, 어느 연구자 하나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더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민음사에서는 초판 출간시 원문을 제대로 대조하지 않는 커다란 오류를 범했고 이러한 잘못을 2003년 4월 개정판에 그대로 되풀이했다는 사실이다. 즉, 2003년이면 전산사식을 할 때이니 편집자(혹은 교열부)는 컴퓨터 화면을 통해 초판의 내용을 그대로 입력하였고 그 교정 역시 초판과 내용만 대조했을 것이다. 그러니 초판이 출간된 지 20년이 훌쩍 지난 2009년판에는 물론이요, 2010년 12월 현재에도 일반 독서 대중은 편집상의 오류를 그대로 안고 있는 정지용 전집을 대하고 있다.

단어 하나 어휘표현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문학작품 출판에서 이같은 오류는 매우 큰 잘못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를 통해 고전문학뿐만 아니라 근현대 작품 출간시에도 반드시 원문 혹은 믿을 만한 텍스트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부천대 민충환 교수의 자료 제공으로 씌어졌음을 밝힌다.

이기사는 http://lby56.blog.me/150099511340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지용 전집 2 - 산문

정지용 지음, 민음사(2003)


태그:#정지용, #정지용전집, #민음사, #가톨릭청년, #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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