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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기르는 처가

퇴근하기 전, 장인어른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이 서방입니다. 건강하시죠? 산청은 괜찮은가요?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지고 있던데."
"말도 말게. 다행히 구제역이 경남까지는 내려오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소 값이 너무 많이 떨어졌네 그려. 오늘도 소를 6마리 팔았는데 3500만 원밖에 못 받았어. 4000만 원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에구. 그래서 어쩐대요."
"모르겠네. 이것도 그냥 운명이려니 받아들여야지."

나의 장인어른은 산청에서 소를 약 50마리 정도 키우신다. 5년간 잡고 계시던 교편을 내려놓으시고 농사에 매진하신 지 어언 30년. 그동안 밭농사부터 시작해서 양봉, 과수원, 축산업 등 벼농사를 제외하곤 안 해본 농사가 없다던 아버님은 환갑을 눈앞에 둔 지금 소와 버섯을 기르는데 마지막 열정을 쏟고 계시는 중이다.

이녀석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소가 남아 있을까요?
▲ 까꿍이와 소 이녀석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소가 남아 있을까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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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내의 남자친구 자격으로 처가에 갔을 때 아버님은 그 많은 소를 내게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 정도 규모면 결코 적지 않은 편이고, 이만큼을 키우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아버님은 소를 키우는데 지극정성을 다하셨다. 소는 아버님에게 또 다른 자식이나 진배없었고, 소를 키우는 행위 자체는 아버님의 존재 이유 중 하나였다.

요즘에는 30년 넘게 초등학생을 가르치신 장모님도 장인어른을 도와 농사일을 하시는 중이다. 어머님은 편찮으신 아버님을 본격적으로 돌보실 겸, 정년퇴직을 몇 해 남겨두고 명예퇴직을 택하셨고, 그 시간에 편찮으신 아버님을 대신하여 소에게 사료를 주신다. 무조건 소를 키우시려는 아버님과 달리 체계적으로 소를 관리하며 그 채산성을 계산해보시는 어머니.

어머님의 결론은 점차 소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까지는 두 분만의 힘으로 소를 키워 인건비를 줄이면서 그 채산성을 맞추어 왔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른들의 체력도 그전만 못 한 바, 이제는 소를 줄여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쇠고기 수입 이후 소 값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니던가. 한창때는 8~9백만 원까지 찍었지만 이젠 6~7백만 원 받기도 어려운 소 값.

처가의 아침
▲ 사료주는 사위 처가의 아침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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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인어른은 소를 줄이는 데 반대하셨지만, 차마 장모님을 말리시지는 못하셨다. 직접 소와 관련된 대차대조표를 내놓으시는 어머님 앞에서, 편찮은 아버님을 대신해서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무거운 소 사료 포대를 매시는 어머님 앞에서 아버님께서 소를 늘리자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최근의 구제역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구제역 때문에 각 농가들에게 설날 때 출하시킬 소들을 서둘러 팔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안 그래도 떨어지던 소 값이 이번 구제역 파동을 맞아 더욱더 급락하게 된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소를 팔아야 하는 수많은 농민들.

구제역에 대한 정부의 대응

현재 안동 발 구제역은 경기와 경기 북부, 강원지역 등으로 확산되었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소, 돼지, 염소, 사슴 등 27만8530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였고, 25일부터는 구제역 백신을 접종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어제(23일) 뉴스에서는 마트에서 절반 가격으로 팔리는 한우에 대해서 보도했다. 물론 많은 소비자들은 이번이 좋은 기회라며 줄을 서서 한우를 시식하고 있었지만 농민들에게는 그와 같은 풍경이 마냥 좋을 수는 없다. 그렇게라도 소비심리가 살아나 소 값을 더 받는다면 다행이지만, 어쨌든 구제역 때문에 멀쩡한 소들도 죽여야 했던 농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구제역과 관련되어 농부들에게 어떤 보상을 하고 있을까?

우선 정부는 살처분 보상금으로 당시 현지 가축 시세의 100%를 원칙으로 하고, 살처분 직후 보상금의 50%를 선지급한다. 그러나 구제역 의심 증상을 신고하지 않거나 지연신고로 해당 가축의 질병을 방역관이 확인했을 경우는 시세의 40%, 의심 증세가 나타난 지 5일이 지난 지연 신고 시에는 60%, 4일 이내 신고는 80% 등으로 차등 지급된다.

이와 함께 살처분 농가에는 생계안정자금도 지급되는데, 금액은 농가의 사육 규모에 따라 최대 1400만 원까지 차등 지원되며, 중·고생 자녀 학자금 1년 치 면제, 1년 내에 상환해야 하는 정책자금 상환기간 연장(2년) 등의 혜택을 준다.

이밖에 정부는 피해 농가가 새로 가축을 들여와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가축입식자금(융자금)을 연리 3%, 2년 거치 3년 상환을 조건으로 지원하며, 젖소 농가의 경우 우윳값을 최대 6개월간 보상해주고, 원유를 폐기하는 비용은 국비로 지원한다.

이렇게 팔려도 슬픈데, 하물며 살처분이라..
▲ 함양 우시장 이렇게 팔려도 슬픈데, 하물며 살처분이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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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농민들은 이와 같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구제역 확산에 대한 방역의 책임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액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살처분한 가축에 대한 보상금을 보자. 비록 정부는 살처분한 가축 시세의 100%를 보상해주겠다고 나섰지만, 그 금액이 현장에서의 시세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토지보상 산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부는 최소한의 금액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같이 재정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부가 넉넉하게 보상금을 줄 수 있을까.

농민들의 걱정은 무엇보다 구제역 파동이 끝난 뒤 최소 6개월~1년 동안 입식이 제한되면서 겪는 재정적 부담인데, 이를 해결하기에 정부의 보상금은 태부족이다. 정부가 생계안정자금을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그동안의 생활비로 들어갈 뿐, 공백 기간 중 발생하는 방역과 축사 관리, 재입식에 따른 추가 투자금 등은 고스란히 농민들이 떠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구제역으로 인해 가축들을 살처분한 농민들은 또다시 빚더미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부채 더미를 안고 있는 농민들이 생존하기 위해 또 다시 빚을 지고 이를 갚아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농가부채 등의 농촌문제는 단순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와 긴밀하게 관련된 문제이며, 공동체를 구성원들의 중지가 모여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계속해서 농민들의 한숨 소리가 떠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도 날치기로 통과된 정부 예산이 너무도 쓸데없는 곳에 쓰이는 것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추운 겨울 자식같이 기르던 가축들을 산 채로 묻고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농민들을 정부는 따뜻하게 안아줄 수는 없는가?

정부는 4대강 삽질 할 돈으로 방역청을 신설하든가, 아니면 구제역으로 실의에 빠진 농민들에게 좀 더 많은 보상을 해주길 바란다. 그대들이 좋아하는 자연산 쇠고기를 먹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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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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