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필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 간혹 흡연자들 때문에 불쾌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흡연율을 낮춘다며 아무런 정책이나 무분별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부에 동의해 줄 수는 없다. 모든 정책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따라서 금연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순기능이 크고 역기능이 작은 정책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순리다.

 

지금 우리나라 금연정책을 보면 걸음마도 제대로 못 떼고 있는 단계에 있다. 선진국들처럼 담뱃갑에 경고성 사진 한 장 못 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무기력한 정부가 최근 갑자기 2500원 수준인 담뱃값을 8000원대로 3배 이상 올리겠다는 선언하고 나섰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6일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선진국의 경우 흡연율과 담뱃값 사이에 밀접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지적하자 파격적으로 가격을 올려서 금연효과를 보자는 거다.

 

 

이 글에서는 이와 관련해 세 가지 쟁점을 다룬다. 첫째, 담뱃값을 8000원대로 인상할 경우 그 수준이 선진국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에 이를 것인가 하는 점. 둘째, 담뱃값을 8000원대로 인상할 경우 세수는 어느 정도 확보되고, 계층간 조세형평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 셋째, 바람직한 증세정책과 금연정책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 점.

 

8000원대 담뱃값,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인가

 

담뱃값을 8000원대로 인상할 경우 그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에 이르게 될까. 담뱃값을 8000원대로 인상하자는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선진국과 단순비교하며 우리나라 담뱃값이 턱없이 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간 담뱃값을 비교할 때는 1인당 GDP를 고려해 비교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토대로 1일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을 비교해 보면 2008년 우리나라의 1일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은 3.8%로 OECD 평균 5.0%의 76% 수준이다. 그러나 조세부담률(26.5%) 또한 OECD 평균(35.8%)의 74% 수준이기 때문에 담뱃값이 과도하게 낮다고 볼 수는 없다.

 

정부가 담뱃값을 8000원대로 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일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은 12.2%로 치솟아 OECD 평균의 2.44배에 달하게 된다. 단연 OECD 최고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그 비율이 한 자리 수를 넘어선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일본, 미국과 비교해 보아도 터무니없이 높다. 2008년 일본의 1일 1인당 GDP 대비 담뱃값 비율은 3.2%, 미국은 3.5%에 불과했다.

 

 

담뱃값 인상으로 무려 20~25조원 조세 증가   

 

두 번째 쟁점은 담뱃값을 8000원대로 인상할 경우 세수는 어느 정도 확보되고, 계층간 조세형평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2500원에 팔리는 담배 한 갑에는 3종류의 세금(담배소비세 641원, 교육세 320.5원, 부가가치세 227.27원)과 2종류의 부담금(폐기물부담금 7원, 국민건강증진기금 부담금 354원)을 합해 총 1549.77원의 담배세가 부과되고 있다.

 

정부가 2500원인 담뱃값을 8000원대로 올리면 담배 한 갑에 붙는 조세액은 현재의 1550원에서 7000원대로 4.52배 증가하게 되고 그로 인한 담배세 추가징수액은 무려 25조 원에 달하게 된다.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지방세정연감>에 따르면 2009년 담배소비세 총징수액은 3조107억 원이었고, 담배소비세의 50% 만큼 징수되는 교육세 총액은 1조5053억 원이었다. 또 담배소비세의 35.46%만큼 징수된 부가가치세 총액은 1조675억 원이었으며, 그것의 56.31%만큼 징수되는 부담금 총액은 1조6953억 원에 달했다. 이 모두를 합하면 담배에 붙는 조세총액(부담금 포함)은 7조2788억 원이 된다.  

 

담뱃값을 8000원대로 인상해 담배에 붙는 각종 세목들이 모두 일률적으로 4.52배 만큼 늘어나면 조세총액은 얼마나 될까. 담배에 붙는 조세총액은 현재의 7조2788억 원에서 그것의 4.52배인 32조9002억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무려 25조6214억 원이 추가징수되는 셈이다.

 

계산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자료들을 여러 번 검토해 봐도 계산에 별 문제는 없다. 담배소비세만 다시 한번 살펴보면 2008년 우리나라 담배소비량은 946억 개비(약 47억 갑)였고 담배소비세는 대략 3조 원이었다. 1갑당 담배소비세 641원을 47억 갑과 곱하면 대략 3조 원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흡연자 1인당 연간 담배세, 무려 255만 원

 

담배세가 연간 20조~25조 원 추가 징수되면(흡연율 감소로 추가세수액이 25조 원이 아니라 20조~25조원 정도가 된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흡연자 개개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평범한 직장인 A씨가 매일 담배를 한 갑씩 핀다고 가정하면 현재 가격에서 그가 1년간 납부해야 하는 담배세는 모두 56만5750원이다. 그러나 담뱃값이 8000원대로 오르면 그것은 255만 5000원으로 치솟게 된다.

 

* 현행 가격에서 부담해야 하는 조세액 : 1550원 x 365일 = 56만5750원

* 가격 인상시 부담해야 하는 조세액 : 7000원 x 365일 = 255만5000원 

 

놀랍게도 A씨가 1년간 납부해야 하는 담배세 255만5000원은 소득상위 10%와 하위 90% 경계선에 있는 근로자의 연간 근로소득세 총액과 맞먹는 액수다.

 

<국세통계연보 2009>에 따르면 2008년 소득상위 5~10% 계층의 근로소득세는 평균 305만 원이었고, 10~15% 계층의 평균은 157만 원이었다. 따라서 소득상위 10%와 하위 90% 경계선에 있는 근로자의 연간 근로소득세 총액은 250만 원 선이라 볼 수 있다.

 

물론 2009년 이후 근로자 소득이 증가했을 것이므로 계층별 근로소득세 결정세액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기준 통계는 대규모 부자 감세가 시행되기 직전 해의 통계라는 점도 고려해서 보아야 한다.     

 

담배세는 최악의 역진세

 

혹자는 건강에 좋지 않은 담배에 붙는 세금을 인상해서 그것을 재원으로 20조 원의 세수를 확보한다면 이 또한 나쁠 것이 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담배세는 그 어떤 세금보다도 '역진성'이 크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여기에서 역진성이 크다는 말은 저소득층의 소득 대비 조세부담액 비율이 고소득층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한국조세연구원의 성명재·박기백 연구위원은 <조세·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효과>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통계청의 통계 원자료를 활용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세, 교통세(유류세), 부가가치세, 담배소비세, 건강보험료라는 5대 세목 중에서 담배소비세의 역진성이 가장 크다.

 

 

[그림-3]을 보면 5대 세목 중 소득세의 누진성이 가장 크고, 유류세와 부가가치세는 대체적으로 소득과 비례하며, 담배소비세와 건강보험료는 상대적으로 역진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명재·박기백 연구위원의 이 실증 보고서는 기존 교과서의 설명과는 사뭇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기존 교과서들이 각국의 구체적인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소비세의 일종인 유류세의 누진성이 오히려 비례세로 알려진 건강보험료보다 더 크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계층별 자동차 유류 소비의 양극화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부가가치세의 경우에도 통념과 달리 소득과 비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이 세목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서민배려장치가 마련되어 왔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이 세목의 적용을 받는 자영업자들에 대한 세원포착률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 그것이다.

 

또 [그림-3]을 보면 사회보장세의 일종인 건강보험료의 역진성이 의외로 크게 나타나는데, 그 원인은 이 세목이 가구 전체소득이 아니라 가구주의 근로소득(자영업자는 업주의 사업소득)에 비례하여 부과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가구소득에는 가구주 근로소득(혹은 사업소득) 이외에도 전 가족의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이전소득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역진성이 가장 큰 세목은 담배소비세다. 계층별 소득 대비 담배소비세 비율을 보면 소득상위 10% 계층의 소득 대비 부담률은 0.08%에 불과한 반면, 소득하위 10% 계층의 부담률은 0.38%에 달한다.

 

바람직한 증세정책과 금연정책

 

현 정부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대규모 부자감세를 감행하여 재정건전성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필자 또한 선진국 수준의 '성장·복지 선순환'을 이루어 내려면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지나친 조세감면제도를 큰 폭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본다. 또 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증세(增稅)가 시급하다 하더라도 최악의 역진세인 담배세를 가장 먼저 올리자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담배소비의 가격탄력성이 작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담배소비의 가격탄력성이 작은 상황에서 담배세를 올리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흡연자 가족의 몫이 된다. 특히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더욱이 정부가 비가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은 채 손쉽게, 행정편의주의적으로 가격부터 우선 올리고 보자는 주장은 지나치게 구태의연한 것이다.

 

또 고소득층들이 주로 부담하는 소득세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담뱃값부터 OECD 평균의 2.4배로 끌어올리자고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항상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금연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국민들 중 금연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모든 정책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으므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큰 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더욱이 비가격정책을 소홀히 하고 있는 정부가 막무가내식 가격인상정책을 추진할 경우, 그 명분을 찾기도 어렵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다.


태그:#담배값, #역진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