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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중인 황호인, 이준삼씨
 고공농성 중인 황호인, 이준삼씨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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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를 '갑'(사용자)과 '을'(노동자)의 관계라고 한다. 언젠가부터 갑과 을의 관계에 '병'(하청 및 도급업체)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을은 갑의 공장에서 갑의 제품을 생산한다. 하지만 을은 병의 소속이었고 임금도 병이 주었다. 병이 또 다른 병으로 바뀔 때마다 을은 해고됐다. 을은 갑에게 복직을 요구했다. 갑은 을의 법적고용주가 아니기 때문에 을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다고 했다.


GM대우 해고노동자들의 네 번째 겨울

지난 16일, 24시간 잠들지 않는 GM대우 자동차 공장의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녁부터 싸라기눈이 흩날렸다. 공장 밖을 비추는 가로등과 싸라기눈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공장의 정문 아치형 구조물 위에는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황호인(41), 이준삼(34)씨. 그들은 해고자 복직과 비정규직 철폐를 내걸고 16일째 GM대우 정문 앞 아치 조형물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성 중인 황호인씨가 말했다.

"말레이 곰이 잡혔다고, 온 나라와 언론이 떠들썩합니다. 비정규직노동자가 영하 10도의 날씨에 몸상해 가면서 싸우는데, 사측도 언론도 무관심합니다. 안타깝습니다."

황호인씨는 2006년 GM대우 부평공장에 입사했다. 차체2공장 조립 2부에서 지게차로 차체부품을 날랐다. 2007년 9월 사내에 비정규직노동자 중심으로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있었다.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설립을 적극적으로 제지했다. 점심시간에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할 때면 용역업체 직원과 노무팀 직원들이 막아섰다. 조합원들이 가입한 1, 2차 도급업체 중 일부는 폐업했고. 비조합원들만 고용승계됐다. 황호인, 이준삼씨는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2007년 12월에 해고됐다.

8미터 아치에서 보낸 16일... 겨울용 양말만 신은 발은 얼었다

현재 고공농성중인 이준삼 조합원의 발 사진. 현재 동상 2기다.
 현재 고공농성중인 이준삼 조합원의 발 사진. 현재 동상 2기다.
ⓒ GM대우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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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일 황호인·이준삼씨는 공장 정문 앞 8미터 높이의 아치형 구조물에 올랐다. GM대우 생산직 노동자들이 입는 동복을 입은 채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올랐다. 동복 유니폼은 혹한의 추위를 막아내기에는 부족했다. 농성한 지 이틀이 지나자 신발이 젖었고 동상에 걸렸다. 발이 부었다. 신발을 신을 수도 없었다. 겨울용 양말 한 짝을 신은 채 16일을 버텼다.

폭이 1m 정도인 구조물에서는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부동 자세를 취하니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았다. 동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김명일 평화의료생협 원장은 "황호인씨의 기관지염은 폐렴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준삼씨는 현재 동상 2기 중반인데 3기가 되면 발을 절단할 수도 있다. 방한용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저녁을 올리는 과정에서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저녁을 올리는 과정에서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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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국, 물.' 황호인·이준삼씨에게 지급되는 유일한 물품이다. 그들에게는 하루 2끼가 올려진다. '밥, 국, 물'을 제외한 물품은 시위용품으로 간주돼 지급되지 않는다. 오후 7시 퇴근집회를 마친 후 황호인·이준삼씨에게 밥을 올리는 과정에서 경찰과 실랑이가 있었다.

"위에 있는 사람들의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는데, 경찰은 방한용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 경찰의 편협한 사고가 농성 중인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있다."

박한상 조합원의 말이다. 밥이 올라갈 때마다 경찰은 꼼꼼히 검사한다. 밥에 젓가락을 꽂아서 뒤적거리기도 한다. 물도 냄새를 맡아 확인한다. 경찰은 "신나와 같은 발화물질이 있으면 혹시라도 분신할까 봐 막기 위해 검사를 한다"고 말했다. 한 번은 황씨와 이씨가 기분이 나빠 밥을 안 먹겠다고 던지기도 했다. '핫팩, 이불, 신발, 신문, 유담포, 과일'은 경찰이 거부한 물건들이다.

이 날은 금속노조 한 조합원의 아내가 집에서 손수 만든 음식이 올라갔다.

"어제부터 무얼해 줄지 고민을 했다. 영양가가 높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으로 골랐다. 매일 준비할 수는 없지만, 매주 목요일에 도시락을 싸는 걸로 농성 중인 조합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을을 달래겠다."

황씨와 이씨는 "농성 시작하고 밥다운 밥을 처음 먹는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함박눈이 내린 이 날 아침 GM대우 부평공장 앞에서 출근길집회가 열리고 있다
 함박눈이 내린 이 날 아침 GM대우 부평공장 앞에서 출근길집회가 열리고 있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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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집회가 끝나자 연대투쟁을 하고 있는 인천시민들, 진보신당 당원,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GM대우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 때문에 오래간만에 인천 지역에 (활동가들과 진보정당 당원)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날 치킨을 사들고 온 덤프트럭 운전기사인 지태연씨.

"매일 새벽 4시 출근길에 공장 앞을 지나간다. 추운 날씨에도 고생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 위해 방문했다. 똑같은 공장에서 일하는데 하청업체 노동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현실이 화가 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해야 한다."

GM대우에서 정규직 노동자로 22년을 일한 이춘장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이 없었으면 GM대우는 1조 원이 넘는 돈을 산업은행에 갚을 수 없었다. 회사가 좀 살 만해지니 비정규직을 나몰라라 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고 했다.

새벽 4시가 지나자 눈발이 굵어졌다. 싸라기눈은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불침번인 이영수 편집부장은 "(고공농성 중인 조합원들의 건강이 나빠져)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야간조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하나둘씩 퇴근을 하고 있었다. 퇴근을 하는 야간조 노동자들은 무관심하게 농성장을 지나쳐갔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탄 퇴근버스가 공장 밖으로 빠져 나가고, 외주업체에서 제작한 부품들을 실은 대형트럭이 쉴새없이 공장으로 들어갔다. 정문 앞에는 경찰 6명이 서있었고, 경찰 2명은 정문 앞을 걸으며 경계를 섰다. 잠들지 않는 자동차 공장의 새벽녘 풍경이다.

끼니 때마다 완장찬 형사가 검사... 대소변과 맞교환

지난 17일 7시 GM대우 부평공장 앞에서 퇴근길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 7시 GM대우 부평공장 앞에서 퇴근길 집회가 열리고 있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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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출근 집회를 하는 동안, 이애향 진보신당 인천시당 조직국장은 누룽지를 끓이며 "새벽 동안 언 조합원들의 몸을 녹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집회가 끝나고, 황씨와 이씨에게 누룽지가 올려졌다. 물품검사관 완장을 찬 형사는 "우리도 하고 싶어 하는 일 아니야"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끼니를 올려줄 때마다 완장 찬 형사 3명과 캠코더 촬영하는 경찰이 온다. 밥이 올려질 때 황씨와 이씨의 대변을 담은 검은색 비닐봉지와 소변을 담은 페트병이 내려졌다. 영하의 날씨에 소변을 담은 페트병은 얼어 있었다.

황씨와 이씨가 누룽지로 몸을 녹인 후에야 통화할 수 있었다. 이영수 편집부장은 "건강상태가 안 좋으니 꼭 필요한 것만 물어보고 빨리 끊어달라"고 말했다. 황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잠을 잘 잤다면 거짓말이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준상이의 동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방한용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3년 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사측과 싸워왔다. 이번만큼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쟁취하기 전까지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GM대우 부평공장이 하얗게 변했다. 출근길 노동자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황씨와 이씨는 양말만 신은 채로 폭 1m, 높이 1m의 구조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GM대우, 결국 공권력에 기대나
GM대우 아카몬 사장은 송영길 인천시장이 사건 해결을 위해 중재에 나섰지만 "농성 당사자들은 GM대우와 무관한 외부 인원이며, 적법한 도급을 운영한 만큼 불법 파견 등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GM대우 측은 법원에 "고공농성 농성자는 내려올 것,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말 것, 정문 아치에 부착된 현수막을 제거할 것"을 골자로 한 가처분 신청을 냈다.

21일 인천지방법원은 강제집행에 나섰고 이에 노동자들이 격렬히 저항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했다. 다행이 강제집행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농성장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정치권과 지역사회에서는 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공권력을 동원한 사태 정리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노동 강도 2배, 임금 차이도 2배"
[인터뷰] GM대우 이영수 비정규직노조 편집부장
이영수 GM대우 편집부장
 이영수 GM대우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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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 결성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으셨지요?

"공장 안에는 형식적으로라도 민주주의가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하지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노무팀 관계자들이 달려와서 플래카드를 다 찢어버리곤 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걸 막는 방법 중 하나가 관리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괜히 비정규직 노조 들었다가 나중에 정규직 되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말라"고 합니다. 조합원들이 많은 업체는 그냥 폐업이나 외주화 시켜버립니다. 그리고 조합원들만 빼놓고 고용승계 합니다."

- 몇 개 정도의 하청업체가 있습니까?
"2009년까지는 16개의 1차 하청업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6~7개 정도 남았습니다."

- 하청업체가 독자적인 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어용도 있어요. GM대우 관리자 출신들이 노후에 먹고 살라고 만든 업체들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독자적인 경영능력이 없어요. 사무실에서 관리하는 경리 하나 두고 있는데, 몇 배나 많은 직원들이 있는 거죠. 독자적인 경영능력도 없고, 기술력을 연구하는 곳도 없습니다. GM대우가 제공하는 것처럼 안 보이기 위해서 기술력도 빌려 준다 해서 계약을 합니다. 실제로 몇몇 업체는 GM대우 말고도 다른 곳에 사람을 파견하기도 합니다. 아웃소싱과도 같습니다."

- 라인에서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가 같은 일을 하면서 근무를 합니까?
"GM대우에서는 불법파견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혼재작업을 잘 안 시킵니다. 서브라인 쪽에서 작업을 주로 시킵니다. 아니면 라인을 아예 떼버려서 비정규직끼리 시키기도 합니다. 창원 공장과 군산 공장은 혼재작업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노동강도는 어떤 편입니까?
"정규직노동자들이 편안하게 일하는 게 아닙니다. 조금만 노동강도 올려도 작업 중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끔씩 정규직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강도 개선하라!'고 집회를 합니다. 그럼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그걸 보며 웃습니다. 제가 일했던 라인은 정규직 노동강도의 2배입니다. 택-타임(Tag Time)이라고 있는데 몇 초 만에 한 공정을 하느냐로 분류합니다.

90초 안에 볼트 박고, 조이고, 카바치고, 내려보내고 하면 엄청 바쁘죠. 정규직 노동자가 택-타임이 90초라면 저희는 45초 동안 한 공정을 해야 했습니다. 다른 곳도 아마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강도에 비해 2배 가량 힘들 겁니다. 동희오토보다는 우리가 나은데, 현대자동차보다는 우리가 심한 편입니다.

대공장이나 중소기업 공장은 노동자들이 쉬는 꼴을 못 봅니다. 노동자들이 좀 편해 보이면 계속 노동강도를 올립니다. 노조가 있으면, 그걸 막아내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곳은 한계선까지 올라갑니다. 지게차 운전을 하든, 포장을 한다고 해도 쉬우면 쉬운 대로 힘들어집니다. 특히 컨베이어 따라서 일하는 곳은 더 그렇습니다. 라인에는 쉬는 시간도 없습니다. 라인이 끝나야 쉴 수 있습니다."

 - 임금은 얼마나 받으셨나요?
"임금은 노동강도가 아까 2배라고 했잖아요. 임금도 2배 정도 차이납니다. 지금은 해고된 지 오래 돼서 얼마나 올랐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해고됐을 때만 해도 2400, 2500 정도 됐습니다. 잔업 2시간은 기본이고, 일주일에 3번 특근은 기본이고, 상여금 다 포함해서 2400 정도 받습니다. 지금은 좀 더 올랐겠죠. 자동차 공장의 사내하청과 비정규직은 최저임금보다는 높습니다. 남동, 부안의 비정규직노동자는 인천보다 임금이 낮습니다. 아마 2000만원도 못 받을 겁니다. 제가 쭉 인천에서 금속노조 활동을 해서 알아 본 결과 낮습니다."

- 정규직과의 연대는 잘 돼고 있습니까?
"답변하기도 곤란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그렇게 잘 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2009년도에 전환배치(정리해고) 할 때. 자기들 고용보장 한다고 비정규직 다 잘라냈잖습니까. 노조가 그리하면 안 되죠. 같은 금속노조인데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정규직이 잘 연대가 가능하겠습니까. 비정규직노동자는 정규직노동자를 싫어하고, 정규직노동자는 비정규직노동자를 고용방패막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회사에서 집회 나오면 별로 안 좋아합니다. CCTV로 감시합니다. 근데 지금은 그런 불이익 감수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식적인 집회는 나오기라도 합니다."


태그:#GM대우,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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