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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꼭대기에서 기받기 얍~
 마니산 꼭대기에서 기받기 얍~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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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 자~ 정신을 가다듬고, 으라차~"

일행들이 한 손을 치켜들며 어설픈 기압을 외쳤다. 강화도 마니산 바위봉우리엔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래도 산에는 우리 일행들 외에도 추위를 뚫고 산을 오른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 중 몇 사람이 우리 일행들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르신들 지금 '기' 받으시는 거에요?"

40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묻는다.

"이 산이 전국에서 기가 가장 센 산이잖아요? 오늘 마음먹고 기 받으러 올라온 겁니다. 허허허"

일행 역시 허허 웃으며 말을 받는다. 다른 몇 사람이 우리들도 기 한 번 받아가자며 엉거주춤 자세를 잡는다. 쏴아~ 몰아치는 매서운 찬바람 속에서 어설픈 '기' 받기 자세가 또 나왔다.

"그럼 어르신들은 이 추위에 기 받으러 산에 오르신 거네요? 호호호"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여성 등산객 몇 사람이 호들갑스럽게 웃는다. 해발 469미터, 참성단이 있는 정상에는 울타리가 세워져 있어 오를 수 없었고 그 옆에 있는 제법 널찍한 바위봉우리가 등산객들의 전망대와 쉼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산봉우리 칼바람 속에서 '기' 받기 폼을 잡다

1004계단, 안내판
 1004계단,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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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계단을 오르는 일행들
 1004계단을 오르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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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보면 한심하기만 하고 힘만 빠지는데, 우리 이번 화요산행은 기 받으러 강화도 마니산 어때?"

지난 14일, 일행 중 한 사람이 엉뚱한 제안을 했다. 모두들 좋다고 선뜻 나선 산행이 강화도 마니산이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맹추위가 시작된 첫 날이었다.

강화로 가는 김포평야는 옛 모습이 아니었다. 드넓던 곡창지대 들녘은 몇 년 사이 삭막한 아파트 단지로 변모되어 있었다. 대명포구와 초지대교를 건너 마니산으로 가는 길은 추위에 잔뜩 움츠린 풍경이었다. 마니산 주차장도 텅텅 비어 있었다. 산행을 하기엔 아무래도 너무 추운 날씨였다.

달랑 한 대 세워져 있는 승용차 옆에 우리 차를 세워놓고 산행에 나섰다. 입구를 지나 조금 올라가자 왼편 계단길과 오른편 단군길로 갈린다. 무릎에 받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계단길로 올라 단군길로 내려오기로 했다. 계단길로 들어서 조금 올라가자 '1004' 계단이란 푯말이 눈길을 붙잡는다.

1004계단이라, 그래 생각난다, 지난 2005년 9월 어느 날이었다. 친구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는 마니산을 올랐었다. 그날따라 폭우뿐만 아니라 천둥번개가 요란했다. 그 빗속을 뚫고 오르며 한 계단 두 계단, 계단 수를 헤아렸다. 정상까지 오르며 헤아린 계단 수는 1012 계단인가 그랬다. 물론 정확한 숫자는 아니었다. 계단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계단까지 모두 헤아린 숫자였으니까.

"어차피 정확한 숫자도 아닌데 기왕이면 1004 계단이라고 하는 게 어때. 이름도 좋고, 부르기도 좋고"

그렇게 해서 다음 날 우리 오마이뉴스에 "마니산 돌층계는 몇 계단일까요?"란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물론 돌층계 계단 수는 1004개라 했다. 결국 그 기사가 마니산 돌계단 이름을 '1004 계단'이라 지어준 셈이 되었나 보다.

"어~ 이거 우리가 5년 전 그때 1004계단이라 헤아린 숫자가 그대로 이름이 되었네, 허허허"

2005년에도 함께 올랐고, 이번에도 추운 겨울에 기 받겠다고 함께 산에 오른 친구가 첫 눈에 알아보고 반색을 한다. 그때 폭우 속을 뚫고 오르며 계단수를 헤아렸던 기억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리라.

마니산 '1004 계단', 2005년 폭우 뚫고 올랐던 우리의 작품

마니산 전국 제1의 생기처 안내판
 마니산 전국 제1의 생기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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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시가 쓰여 있는 안내판
 참성단, 시가 쓰여 있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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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여름, 우연히 폭우 속의 산행을 하며 헤아렸던 돌층계 숫자가 마니산의 명물 '1004 계단'의 이름으로 자리 잡은 것이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다. 날씨는 여전히 싸늘했지만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돌계단을 오르느라 추위는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돌층계를 밟고 잠깐 오르자 작은 정자 하나가 나타난다. 오르막 능선길의 쉼터였다. 정자 앞에는 '강화 마니산 전국 제1의 생기처'란 안내판에 '기와 풍수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좋은 기가 나오는 곳이 십여 군데 있는데, 그 중에서도 민족의 성지 강화도 마니산을 한국의 대표적인 제1의 생기처로 꼽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입간판에는 '참성단' (태종어제)란 시 한 수가 쓰여 있었다.

인기척 드문 오지에서
맑은 마음으로 밤낮 재계하였네
황국 우물가에 드리웠고
층계 이끼 적시는구나
헌수를 간절히 빌어야지
샛별은 점점히 기우러져가네
봄가을 때를 잃지 말고 찾아야지
성스러운 단군님의 덕 품어나 볼까

글씨, 월파 이흥국

기 받는 160계단
 기 받는 160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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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부는 정상, 뒤쪽이 참성단
 칼바람 부는 정상, 뒤쪽이 참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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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층계는 5년 전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보수공사를 하였고 계절이 겨울철이어서 조금은 낯설게 보이는 것 같았다. 평탄한 능선길을 조금 더 걷자 가파른 오르막 계단 밑에 있는 투박한 안내판이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

"1년간 당신의 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심장은 3천6백 74만 2천 번을 "콩닥"
눈은 7백 88만 4천 번을 "깜박"
폐는 3백 81만 9천 리터의 공기가 "들락"
머리카락은 12,7cm를 "쑥쑥"
걷는 길이는 2천 5백 10km를 "종종"
자는 시간은 2천 5백 55시간을 "쎄근 쎄근" 이라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돌층계 계단길 중간에는 강화군시설관리공단에서 만들어 세워 놓은 '기(氣) 받는 160계단' 또는 '기(氣) 받는 82계단'등 안내판이 서 있어서 이 산이 정말 좋은 기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등산로에서 만난 재미있는 시와 글들

그럼 기(氣)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가지는 사전적인 의미는 "이 산세는 기가 세다"라고 할 때와 같은 형세, 기운, 조짐, 이나 양생과 관련하여 신체상의 생명력, 힘,  정기 및 생체에너지 등의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마니산에 있는 안내판에는 "기(氣)란 무엇인가?"의 '기는 바람처럼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우주만물을 움직이는 그 어떤 근원적인 힘을 말한다. 이 기는 지구의 자기작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생과 사에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뭉치면 물질이 되고, 흩어지면 자연이 된다'고 쓰여 있었다.

"오늘같이 추운 날 기왕에 마니산에 왔으니 기를 듬뿍 받아가야 되지 않겠어? 자~ 기를 모아 받아보자고~ 얍~~!"

일행들은 산을 오르는 도중 곳곳에 세워져 있는 기에 대한 안내판을 볼 때마다 어설픈 '기폼(?)"을 잡아 오가는 사람들을 웃겨 주었다. "마니산 기 받으시네요?" "기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일행들의 재미있는 자세를 보며 오가는 등산객들이 덩달아 즐거운 표정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도 마니산이 기가 센 산이라고 인정하는 듯 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산 아래 마을과 바다풍경
 정상에서 바라본 산 아래 마을과 바다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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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 능선의 멋진 바위들
 하산길 능선의 멋진 바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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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추워 얼어 죽겠네. 기고 뭐고 빨리 내려가자, 기 받으려다 동태되겠다"

그런데 그렇게 희희낙락 산위에 올랐는데 꼭대기에 오르자 매서운 칼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금방 귀가 얼얼하고 장갑 낀 손가락도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그만이다.

산 아래 고즈넉한 마을풍경이며 검푸른 바다 빛깔, 그리고 그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 서쪽방향으로 날카롭게 뻗어 내려간 뾰족한 바위능선은 함허동천으로 가는 길이다. '함허동천'은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가 마니산 정수사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한 곳으로 그의 당호인 함허를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골짜기의 너럭바위에는 그가 썼다는 함허동천(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 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 함허동천으로 내려갈까?"

일행 중 한 사람이 제안을 했지만 모두들 고개를 가로 젓는다.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칼바람 부는 날카로운 바위능선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승용차를 주차장에 세워놓았으니 어쩔 수 없이 원점회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올라올 때 계획했던 것처럼 단군로를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얼어붙은 골짜기
 얼어붙은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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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에서 참성단 아래를 지나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는 '1004 계단' 돌층계와는 전혀 다른 목재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걷기에 매우 편했다. 능선길에서 골짜기로 내려서는 곳에는 멋진 바위들이 매섭게 추운 날 마니산을 찾은 우리들을 전송이라도 해주는 듯 정다운 표정이다. 골짜기는 휘몰아친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어~ 좋다, 갈 때와는 달리 지금은 왠지 힘이 펄펄 솟는 것 같은데"
"왜긴? 마니산 기를 듬뿍 받고 내려와서 그렇지, 오늘 10년은 젊어졌을 걸 허허허"

서울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일행들은 정말 마니산 기를 받아 젊어지기라도 한 듯 움츠렸던 어깨를 한껏 펴며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태그:#마니산, #참성단, #1004 계단, #기,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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