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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시작에서 <무한도전>처럼 열심히 살 것이라 다짐했었다
 2010년의 시작에서 <무한도전>처럼 열심히 살 것이라 다짐했었다
ⓒ MBC 무한도전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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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새 달력에 올해의 계획을 적어가며, 희망 가득 미래지향적인 기분을 만끽하던 유년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휴…. 졸업, 입사, 당장 오늘, 내일이 급급한 나의 위치를 고민하는 28살이 됐다. 씁쓸히 턱끝만 긁적이게 만드는 불편한 2010년의 시작은 열정으로 가득차 있어야 할 젊은이의 가슴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고민은 한 살 위 누나에게도 있었다. 누나는 2010년을 맞아 '솔로 생활의 자유'를 엄마에게 쟁취해 내기 위해 고심을 거듭 중이었던 것이다. 누가 들으면 경제적 독립쯤으로 생각하겠지만, '솔로 생활의 자유'란, 결혼 안 하고 솔로 생활을 즐길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28, 29살, 젊음을 걷고 있는 남매의 고민거리는 이렇듯 정반대였지만 단 한 가지만은 닮아 있었다. 바로 부모님께 크나큰 걱정을 끼친다는 것. "우리 아들이 시험 잘 봐서 꿈을 이뤄야 할 텐데"라는 엄마의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두근두근, 한없이 미안해지곤 했다. 가끔은, 부모님의 걱정에 '얼른 어디라도 취업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걱정에 굴하지 않고, 지구인들에게 '화려한 솔로 생활'의 복음(?)을 전파하는 누나를 보며 그래 '원하는 데 가야 후회 안 해!'라는 확신이 생겼다. 까짓것, 알 수 없는 미래면 어떠랴, 1년만 열심히 하면, 올해 분명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눈엔 그런 우리가 걱정됐던 모양이다. 시기를 놓치면, 취업이고 연애고, 결혼이고 꽝된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었다. 그래서일까, 하루는 엄마가 누나 보고 '어디 갈 데가 있으니 따라와'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누나는 괜히 가만히 있던 나까지 볼모로 데려가려고 했다. 결국 난 암묵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이상한 장소로 끌려가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올해의 달콤한 운세를 들었던 나, 정말 그 말대로 되길 바랬다
 올해의 달콤한 운세를 들었던 나, 정말 그 말대로 되길 바랬다
ⓒ (주)전망좋은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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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상에, 도착한 곳은 '2012년 지구가 멸망'한다거나 '2017년 대통령은 OO씨'라는 소문을 내는 진원지, 사주를 보는 곳이었다. 그나마 이상한 아줌마가 한복 입고 부채를 흔드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하나, 정신이 아찔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는 한문 전문가라는 선생님(?)이 호젓하게 앉아 누나 이름의 한자 뜻을 묻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쁜 핑계 있다며 그냥 나가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 자리에 꾹 앉아 있었다.

하지만 연예인 김구라를 닮은 선생님이 누나의 2010년 운세에 대해 독설을 내뿜는 걸 보니 왠지 불안하다. 누나에게 '돈을 모으는 족족 친구들한테 쓴다'라거나, 주변의 남자가 '대시를 많이 하지만 눈에 안 차서 30대 초반까지 솔로로 산다'는 대목에선, 괜히 내가 다 식은땀이 났다. '누나, 이제 엄마한테 한소리 듣겠군'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폭풍 같던 누나의 2010년 운세 나열이 끝나자, 엄마는 이번엔 나를 가리키며 이 아이 것도 한번 봐달라고 하셨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걱정했다. 내겐 얼마나 끔찍한 독설이 들려올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올해 결혼하고, 원하던 곳 취업도 한다 굽쇼?

"어이구, 동생은 사주가 좋네, 올해 결혼할 것 같네…. 돈도 꾸준히 모을 것 같고, 음…. 어디 건강보자. 몸도 건강하네."

독설을 받을 거란 예상과 달리, 결혼과 원하던 곳 입사를 한다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사주란 게 믿을 게 못된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들려준 장밋빛 미래에 '사주도 다 고유의 철학과 신빙성이 있는게 아니겠어?'라는 변심을 하고 말았다. 이런 내 마음을 간파한 것마냥, 그 분은 좀 더 구체적인 나열까지 한다.

"아마…. 4살쯤 연하나, 1, 2살 연상이 인연으로 찾아올 걸세, 만나는 사람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냐는 말에 내가 잠시 흠칫했다. 그건 가족들한테도 말 안한 일급 보안사항이기 때문이었다.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긴급 견제를 시작할 정도였다.

"엥? 너 누구 만나? 그리고 선생님. 애 나이가 몇인데 결혼을 해요? 이제 28살인데."
"왜? 예전에는 28살이면 결혼할 나이지…."

정말 영화처럼, 사주가 딱딱 들어맞을지 궁금했다
 정말 영화처럼, 사주가 딱딱 들어맞을지 궁금했다
ⓒ (주)전망좋은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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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이 황당 상황을 보며, 옆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겉으론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내 운명의 사람을 예상해 봤다. 설마 지금 만나는 그 사람? 이라는 앞선 추측도 해봤다.

그런데, '곽진성 결혼설'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 이번엔 취업 운세 결과가 나왔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사주보는 사람이 '취업 못한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백이면 백. 그래서 별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올해, 내가 원하는 곳에 입사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당당한 그 분의 말에 난 그저, 진짜요?라고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사실 난, 1월 초에 한 언론사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던 적이 있다. 물론 그때는 사정이 있어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할 순 없지만, 하여튼 낙방은 낙방이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제가 올 1월에 시험이 떨어졌었거든요. 그렇게 운세가 좋다면. 왜 떨어졌죠?"

그런데 그 분의 대답이 우문현답이었다. "음력으로 치면, 2010년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2010년은 다를 거야, 기다려봐"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을 보며, 슬슬 콩깍지가 씌었다. '당신은 노스트라다무스?'라고 추앙하며 삼보일배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잘 되면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에 제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지역, 예언가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말이다. 아무튼 긍정적인 운세는 친구들하고 대화를 할때 양념으로 많이 이용됐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야, 내가 글쎄, 결혼을 한다더라. 하하, 게다가 원하던 곳 입사도 한대!"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다. 그 말에 친구들은 "오오, 뭔가 잘되려나 보네?"라고 같이 웃었다. 달콤한 예언처럼 왠지 미래가 긍정적일 것 같았다.

올해 결혼하는 사주? 굿바이만 외쳤다

그런데 행복으로 꽃단장했던, 내 사주에 뭔가 안 좋은 게 끼었나 보다. 한 해의 끝에서 돌아보니 즐거움은커녕 온갖 황당한 일들이 다 일어났다. 사건1, 중요한 시기인 가을 입사철에 꽃게탕을 먹고 장염으로 일주일 넘게 병원에 입원했다. 그것도 모자라, 퇴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져 깁스까지 하고 말았다.

연달아 터진 입원과 깁스 사건은, 올해 건강할 것이라고 장담한 그분에 대한 믿음을 살짝 깨고 있었다. 그래도 뭐, 운세가 전부 다 들어맞을 순 없겠지, 라며 조금의 희망을 가졌다. 건강한 운세는 틀려도 좋으니, '원하는 곳 입사'와 '결혼'운은 그 말대로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사건 3개가 더 일어났다.

원하는 곳에 입사하기 위해, 다른 곳은 신경을 안 쓰고 한 곳에 집중해 준비했다. 드디어 간절히 원하던 언론사의 필기시험 날, '좋은 결과'가 있을 거란 그 말을 믿으며 아침 일찍부터 근처 커피숍에 앉아 열공을 했다. 시험을 치기 직전에는 컨디션 좋으라고 비타민이 함유된 음료까지 먹었다.

그런데, 이게 역효과였다. 시험 때 탈이나고 만 것이다. 속이 뒤집어져서 시험 도중,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핑계겠지만, 제대로 시험도 못 쳤다. 그래도 합격자 발표날, 올해 무진장 좋다는 그 사주처럼 뭔가 기적이 일어날 줄 알았다. 운세 좋은 사람은 시험 결과도 뒤바뀌고 하지 않나, 그런데 결과는 나를 멍때리게 만든 '탈락'이었다.

그리고 입사 실패의 충격만큼 쇼킹했던 사건4. 다른 것이야 내가 잘못했다고 치고, 올해 결혼할 운세라던 난. 결혼은 고사하고 만나던 사람에게 굿바이만 외치고 말았다. 아마 장밋빛이라는 내 운세는, 내가 싫었는지 운명을 피해 어디론가 탈출했나 보다. 그렇게 입사, 연애, 건강 실패를 두루 경험한 올해의 끝에서 난 '역시 사주는 별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화성소년이라 불리는 '보리스카' 동영상, 2013년 지구 대재앙이 온다는 그의 예언은 정말 일까?
 화성소년이라 불리는 '보리스카' 동영상, 2013년 지구 대재앙이 온다는 그의 예언은 정말 일까?
ⓒ 유투브 동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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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보니, 올해 근거 없는 예언들이 판을 친다. 최근 유행하는 화성 소년의 '2013년 지구 대재앙', 유행처럼 번지는 '2012년 지구 위기' 예언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런 예언들은 내가 겪었던 황당 운세 사건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이기에 신비하고 궁금하지만, 결국 그 미래는 예언된 것이 아닌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난 올해의 뜨끔한 사건을 교훈삼아, 새롭게 다가올 내년에는 '운세'라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은근히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허당 예언가 선생(?)님의 한마디 때문이다.

"내년 운세…? 어디보자…. 음, 내년은 2010년보다 더 좋다네…. 기대해보게!"


태그:#나만의 특종, #올해의 운세,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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