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나라당이 8일 내년도 정부예산안과 UAE 파병동의안, '4대강 사업법'인 친수구역특별법 등을 강행 처리했다. 종일 비명과 고성이 끊이지 않았던 이날의 상황을 대변하는 '결정적 장면'을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눈물] "국회 파행은 한나라당의 치밀한 시나리오"

 

전현희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8일 오후 현안브리핑을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그는 잠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운을 뗐다가 멈추고 자신의 감정부터 추슬렀다. 한나라당이 국회 본청 제3회의실에서 단독으로 예산결산위원회를 열어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단 4분 만에 통과시킨 후였다. 

 

전 원내대변인은 "국회 파행은 사전에 치밀히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며 "민주당이 7일 오후 한나라당의 날치기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 올라갔을 때 이미 다수의 한나라당 의원들과 보좌진이 국회 본관 3층 부의장실 통로를 점거한 채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이 지난 7일 국토해양위에서 친수구역특별법을 기습 처리되면서 발생한 여·야 의원 간의 충돌이 구체적 배경 설명 없이 '폭력성'만 부각되면서 예산국회 여·야 대치 상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 것을 염두에 둔 설명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지난 주말까지는 양당 원내대표단 간에 임시국회 개최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고, 그런 분위기도 감지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지난 6일 이재오 특임장관의 국회 방문과 당·정·청 9인 회동이 있은 후 한나라당의 태도가 변했다고 강조했다.

 

예산안 강행처리 배경으로 '청와대 하명'을 강조하던 그는 끝내 격해진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울먹거리며 "국회 파행은 4대강 대운하 예산을 마치 성역처럼 치부하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독선의 결과다, 민주당은 사즉생의 각오로 끝까지 4대강 예산을 막아낼 것"이라고 브리핑을 마무리지었다.

 

그는 브리핑 이후 기자들과 만나 "(예산안 단독통과를) 당해서 분한 게 아니라 한 해 예산을 처리하려는 정부·여당의 태도에 대한 분노와 야당의 무력감 그리고 국민에 대한 죄송함이 컸다"며 "감정을 잘 추스려야 했는데 부끄럽다"고 말했다.

 

다만, 전 원내대변인은 "우리가 지금 본회의를 물리적으로라도 막으려 하는 게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며 "대변인으로서 언론이 너무 야당을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만 모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격분]'실세' 이재오에게 분통 터뜨린 '사령탑' 박지원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한나라당의 내년도 예산안 강행처리에 대해 이재오 특임장관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격렬한 몸싸움 끝에 국회의장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이 내년도 예산안 등을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있던 중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뒤편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이 장관에게 다가가 "부끄럽지 않냐"며 호통을 쳤다. 박 원내대표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는 등 분통을 터뜨리며 "말이 다르지 않냐, 15일에도 가능한데"라고 이 장관을 질책했다.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려는 배경은 이명박 대통령이란 판단 아래 '실세'에게 야당의 분통을 터뜨린 것. 민주당 측에선 이 장관이 지난 이틀 간 '대통령의 회기 내 예산안 처리 지시'를 받고 의원회관을 순회하며 한나라당 의원들을 독려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가 이 장관에게 삿대질을 하며 성토를 멈추지 않자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나서 그를 만류했다. 이 장관도 엄지손가락을 들어 뒤를 가리키며 박 원내대표에게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마이뉴스> 통화에서 "이 장관과 친한 사이인 만큼 '며칠 봐줘서 해도 되는 것을 왜 이렇게 처리하느냐'고 항의했다"며 "이 장관은 '야당이 약속을 안 지켜서 그렇다'고 변명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변명] "평소 지론과 달리 회의 진행하는 이유는..."

 

박희태 국회의장을 대신해 의사봉을 잡은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8일 내년도 예산안 등 총 41개의 안건을 전광석화처럼 처리했다.

 

워낙 많은 안건을 한꺼번에 처리하다 보니 말이 엉키기도 했다. 33번째 안건인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표결 결과의 찬반 수를 바꾸어 말했던 정 부의장은 "어제 잠을 두 시간밖에 못 잤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철수한 뒤에야 처음으로 저지른 '실수'였다.

 

앞서 그는 야당 의원들의 성토에 적극 반박하며 의사를 진행했다.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정 부의장이 나서지 말고 박희태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서 하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는 "천정배 의원님, 그러면 의장님이 편하게 오시게 도와주시겠나"고 맞받아쳤고 국회의장석에서 밀려난 야당 의원들이 "날치기", "내려와"를 외칠 땐 "의원 여러분들의 표현은 이미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됐다"고 타이르기도 했다.

 

정 부의장은 이에 멈추지 않았다. 문제가 됐던 안건들이 모두 처리되자 그는 "국민 여러분께 의장으로서 한 말씀 드리겠다"며 입을 열었다.

 

정 부의장은 "대한민국 국회법으로는 12월 2일 밤 12시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게 돼 있는데 지난 수년 간 단 한 번도 지켜본 적이 없다"며 "국회의원이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법치국가가 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 강행처리에, 저의 평소 지론과 달리 회의를 진행하는 주된 이유는 이 고리를 끊고 대한민국 국회가 앞으로 법을 지키도록 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지 않는 국회가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지금 제 입장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석에 올라 강행처리를 진행한 자신에 대한 '자기합리화'이자 '변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당 의원들의 항의를 받고 '강행처리'란 표현을 '적법처리'로 정정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정 부의장은 또 "국회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변화해야 한다, 서로가 모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대한민국 국회가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우리 한나라당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앞장서 주시기 바란다"고 말을 끝맺었다.


태그:#국회 날치기, #예산안 강행처리, #한나라당, #전현희 , #박지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