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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1900~1956) 선생이 남긴 유일한 피붙이 원경 스님이 펴낸 첫 번째 시집 <못다 부른 노래>와 지금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환 의원(안산 상록구)이 펴낸 아홉 번째 시집 <눈부신 외로움>, 그리고 백담사 무주선원 한주를 맡고 있는 지웅 스님이 펴낸 두 번째 시집 <산색>이 그것이다.
▲ 원경, 김영환, 지웅 스님이 펴낸 시집들 박헌영(1900~1956) 선생이 남긴 유일한 피붙이 원경 스님이 펴낸 첫 번째 시집 <못다 부른 노래>와 지금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환 의원(안산 상록구)이 펴낸 아홉 번째 시집 <눈부신 외로움>, 그리고 백담사 무주선원 한주를 맡고 있는 지웅 스님이 펴낸 두 번째 시집 <산색>이 그것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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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면서 마음까지 얼어붙는 게 두려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립다. 그 사람들과 마주 앉아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직하게 나누며 살붙이처럼 마주치는 술이 몹시 그립다. 저무는 초겨울 저녁, 마른 나뭇가지에 안쓰럽게 매달려 찬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는 낙엽을 바라보면 저만치 오래 묵은 추억이 흐르고, 지금 다시 되짚어도 '아서라! 아서라!' 안타까운 우리 역사가 흐른다.

그 그리움과 그 살붙이처럼 마주치는 술잔과 그 오래 묵은 추억과 그 안타까운 우리 역사가 담긴 시를 써서 이 세상에 툭툭 내던지는 시인들이 있다. 두 분은 스님이요, 한 분은 국회의원이다. 이들 세 시인들은 이번에 펴낸 새로운 시집에서 저마다 독특한 목소리로 가난한 사람들에겐 언제나 희망이 되지 못하는 이 세상에 귀싸대기를 때리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노동운동가, 혁명가, 정치가였던 이정 박헌영(1900~1956) 선생이 남긴 유일한 피붙이 원경 스님이 펴낸 첫 번째 시집 <못다 부른 노래>와 지금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환 의원(안산 상록구)이 펴낸 아홉 번째 시집 <눈부신 외로움>, 그리고 백담사 무주선원 한주를 맡고 있는 지웅 스님이 펴낸 두 번째 시집 <산색>이 그것이다.

아버지 땜에 절로 들어갔던 원경 스님은 이번 시집에 그동안 절에서 쓴 '수행이자 염불'인 500여 편에 이르는 시 가운데 230편을 엮었다. 김영환 의원은 이번 시집에서 "제 삶을 담아내고 무수한 이들의 눈물을 덮어" 주기 위해 시를 찾아 떠난다. 지웅 스님은 "산(山)도 색(色)도 알지 못한다. 그저 취할 뿐"이라며 산색에 하늘빛으로 스르르 스며든다.

아버지 박헌영과 허리 잘린 조국을 향해 못다 부른 노래  

 원경스님이 첫 번째 시집 <못다 부른 노래>(시인)를 펴냈다
▲ 지웅 스님 원경스님이 첫 번째 시집 <못다 부른 노래>(시인)를 펴냈다
ⓒ 지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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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세월이 많이 변했습니다
언제나 낯설은 산등성 위에서
당신을 기다렸던 어린 것이 벌써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대로 심심찮게 외로움을 달래주던
정겨웠던 사람들은 모두 다 돌아올 수 없는
저 세상으로 떠나가버린 지금은 텅 빈 외로운 곳
오늘도 쓸쓸하고 외로운 적막한 산등성 위에 홀로 서서
무리를 잃어버린 외기러기마냥 그리움에 쌓여
저녁노을 넘어가는 아랫마을만 바라봅니다 - '그리움' 몇 토막  

지난 2004년 아버지 박헌영 선생 행적을 정리한 <이정 박헌영 전집>(전9권)을 펴냈던 원경스님이 첫 번째 시집 <못다 부른 노래>(시인)를 펴냈다. 1970년대부터 남몰래 써왔던 시들을 묶은 이번 시집 곳곳에는 아버지를 향한 못 다한 그리움과 '그 놈'(?) 이데올로기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져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우리 민족이 지닌 오랜 슬픔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이 경전처럼 새겨져 있다.

박헌영(1900~1956) 선생이 꼭 한 점 남긴 피붙이인 원경 스님은 이번 시집에 대해 "어릴 때부터 백석 시집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세상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한산 스님의 말씀을 따르느라 그동안 감춰놓았던 낙서들"을 꺼낸 것이라고 말한다. 한산 스님은 원경 스님에게 승려가 되라고 이끈 분이자 "네가 성장하며 낙서한 글을 보면 저항적 언구가 많으므로 지금부터 글 쓰는 것을 삼가야 할 것이다"라고 충고하신 분이다.

원경 스님은 이번 시집에서 자신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서글픈 운명에 대해 회억하면서도 우리 민족과 대자연에 대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아픔이 발효된 깊은 슬픔과 깊은 사랑을 나눈다. 아버지와 서글픈 운명을 지닌 우리 민족에 대한 미움과 분노, 좌절과 절망이 조금은 남아있을 것도 같지만 이 시집 어느 곳에서도 그런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아버지는 광복에 대한 꿈을 안고 상해로 망명을 떠났다네 / 아들은 비운의 아버지를 그리며 청운을 빈손에 담으려 했었네"(청운)라거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더니 / 조국이여 그대는 아시는가 / 이 산천 어느 한 암자에서도 / 그대로 하여 피가 끓고 있는 이들을"(피), "사람들은 까마귀만 오면 재수 없다 느낀다 / 그런데 그 까마귀가 /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왜 그리 많은가"(까마귀) 등 거의 모든 시들이 '득도', 그 곳에 머물고 있다.

스님과 동갑내기 친구인 김지하 시인은 "우리 원경 스님이 시집을 내놨다. 도대체 언제 이런 시들을 다 썼나? 전혀 상상밖"이라며 "그것도 참으로 예쁘고 참으로 서럽고 또 참으로 웅장한, 그야말로 가장 스님다운 선시(禪詩)다. 대개들 선시는 추상적인 고급차원으로만 생각하는 버릇들이 있는데 진짜 선시는 이렇게 고른 것"이라고 못 박았다.

올해 고희를 맞은 원경 스님은 박헌영 선생 두 번째 부인(2004년 작고)이 1941년에 낳은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가 사라진 뒤 어머니와도 헤어져 열 살 때 한산 스님을 만나 절에서 자랐다. 그는 좌우 이념 대결 속에서 병삼, 유동, 세원, 현준, 일우, 명초, 성진, 혁, 원경 등 무려 가진 이름만 해도 14개다. 1960년에 송담 스님 제자가 되었으며, 지금 평택 만기사 주지를 맡고 있다.

스스로 허물어야 '눈부신 외로움' 한 자락 느낀다

시인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장(3선, 경기 안산 상록을)이 곧바로 아홉 번째 시집 <눈부신 외로움>(생각의 나무)을 펴냈다
▲ 시인 김영환 시인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장(3선, 경기 안산 상록을)이 곧바로 아홉 번째 시집 <눈부신 외로움>(생각의 나무)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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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한 마리
혼신의 힘 다해 온몸 흔들며
땅에
온몸 붙인 채
흙 속에 스스로를 허무는 일

한 오라기 남기지 않고
흙이 되는 일 - '사랑' 모두

지난 5월, 4대강을 답사한 뒤 4대강을 살리기 위해 펴낸 <돌관자여, 흐르는 강물에 갈퀴손을 씻으라>를 펴낸 시인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장(3선, 경기 안산 상록을)이 곧바로 아홉 번째 시집 <눈부신 외로움>(생각의 나무)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낙선 때 겪은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야말로 '눈부신 외로움'이 둥지를 틀고 있다.

최연소 과학기술부 장관, 3선 의원, 치과의사 등 다양한 경험을 지니고 있는 김영환 시인은 "장관도 해보았고, 세 번씩이나 국회의원도 하고, 상임위원장도 하고, 병원도 여럿 만든 치과의사이기도 하니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며 "하지만 솔직히 이 모든 것보다 제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한 편의 좋은 시, 해맑은 시인의 마음 한 자락"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래서일까. 시인 김영환은 지금 눈부신 자리에 있지만 그 속내는 참으로 외롭다. 이번 시집 곳곳에 지독한 외로움을 "마지못해 웃고 피어난 채송화 한 송이"(채송화)처럼 피워내고 있는 것이나 "명패 없는 바람 소리, '이름 없는 계곡물 소리 모여서 / 교향곡이 만들어" 지는 것도, 그야말로 눈부신 외로움 때문이다.

"익지 마라 / 가을 하늘 햇살 받고 / 더는 영글지 마라"(너도밤나무 아래서)에서는 다 영글고 나면 남는 것은 이별, 그것도 '영영 이별'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익지도 말고 영글지도 마라고 하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누군가의 무엇이 된다는 것은 / 자신을 허무는 일"(만년설)도 눈부신 외로움을 지닌 시인이 아니면 스스로 허물 수 없지 않겠는가.

시인 고은은 '추천의 말'에서 "이런 줄 몰랐구나. 끝내 힘이란 강자의 것이 아니라면 서정의 힘 그것일 터. 여기 바로 그것이 있구나"라며 "김영환의 시들을 읽고 나서 빈 가슴이 가뜩하고, 가뜩한 가슴이 썰물져 비어버린다. 다음은 울음 차례다. 시인 김영환! 그대에게 한 잔 부어드리마!"라고 감탄사를 몇 번이나 썼다.

1955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치과의사이기도 한 김영환은 민주화운동으로 20개월 동안 투옥되었으며, 감옥에서 나온 뒤 5년 동안 6개에 이르는 자격증을 가진 전기기술자로 일했다. 그가 지난 5월 펴낸 시집 <돌관자여, 흐르는 강물에 갈퀴손을 씻으라'>는 교보문고와 예스24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다.

'빛나는 시인 일등병'이 염주 한 알 한 알로 빚은 시

누군가에게 염장 질러본
지웅 스님은 사진이 없어 작은 불상으로 대신한다(글쓴이)
▲ 지웅 스님 지웅 스님은 사진이 없어 작은 불상으로 대신한다(글쓴이)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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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염산에 가보자
소금산에 놀려대던 세치 혀 담그고,
함초처럼 퍼런 말도 부지중에
붉게 절여 멍든다는 걸

누군가에게 염장을 당해본
사람도 염산 가보자
물밑바닥에 얼굴 부딪쳐
소금을 긁어내는 빛난 햇살에
상한 장을 널어놓고 - '염산' 몇 토막 

1979년 하동 쌍계사로 출가해 1990년 <현대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첫 시집 <출출가>를 펴낸 지웅 스님. 지금 백담사 무금선원 한주를  맡고 있는 지웅 스님은 이 세상을  '산'과 '색'으로 바라보고 있다. '산'은 곧 '불도'이며, '색'이 곧 이 세상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웅 스님이 말하는 '산색'은 곧 불도와 이 세상살이가 한몸이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지웅 스님은  "산도 / 색도 알지 못한다 / 그저 취할 뿐이다"라며 "내 한 생을 온통 흔들고 서 있는 / 저 산색에 / 눈 푸르게 / 스미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시인 지웅 스님이 산과 색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산과 색은 늘 그렇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앎과 모름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자 스스로 산색에 스며들어 그 또한 산과 색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지웅 스님이 이번에 펴낸 두 번째 시집 <산색>은 제1부 '숲을 나는 흰 구름', 제2부 '은근한 눈길', 제3부 '창밖에 복사꽃잎만', 제4부 '산을 털 듯 나를 턴다' 등 모두 4부 78편으로 짜여 있다.  이 시집은 산이 색에게, 색이 산에게 말 없음으로 말을 건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산색'이란 이 세상에 있는 삼라만상 모두가 '그러하다'라는 깨달음이다.

아무렇게나 뽑은 "절간에서 누런 빤스 빨고 있는 / 물갈퀴로 물오른 손샅에 묻어 있다"(봄빛)에서도 산색은 어김없이 우러난다. 이 시에서 "누런 빤스 빨고 있는"은 "누런 겨울을 털어내는 봄빛"이다. 그 봄빛은 곧 스님이 빤스를 빨고 있는 "물갈퀴 물오른 손샅"이자 "아릿한 두견화 뒤척이며 번지는 산허리"를 휘어감는 그 봄빛이다.  

이러한 산색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시는 이 시집 곳곳에 봄빛처럼 스며 있다. "눈에 비친 / 비친 눈에... 비친 눈에 / 눈에 비친"(비치다)이라거나 "길은 비 때문에 / 늙고 / 중은 길 때문에 / 늙어"(한들대다), "장대로 밤나무 털 듯 산을 털면 / 우르르 뛰쳐나오는 뭇 중생들"(털다) 등이 그러하다. 여기서 "눈" "길" "뭇 중생들"은 색이자 산이요, "비친" "중" "밤나무" 또한 산이자 색이다. 

이 시집 해설을 쓴 이소리 시인은  "지웅 스님은 아직까지 좀 낯선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작품활동을 시작한지 10년 남짓하니, 우리 시단에서 딱히 군대처럼 계급장을 붙이자면 이제 겨우 이등병 딱지를 마악 뗀 일등병이라 할 수 있다"며 "그렇다고 시까지 일등병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가 쓴 시는 말 그대로 '빛나는 시인 일등병'이 염주알로 꿰듯 알알이 빚은 시"라고 평했다.

한 해가 또 저물고 있다.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착잡하고 허허롭다. 마치 터질 듯 부풀어 올라 하늘 높이 날던 고무풍선에서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면서 저만치 툭 떨어지는 쪼그라진 고무쪼가리처럼 그렇게. 시는 이럴 때 읽는 것이 가슴에 팍팍 와 닿는다. 특히 두 스님과 한 국회의원이 이 세상을 향해 아무런 미련 없이 툭 내던지는 듯한 시가 더욱 좋지 않겠는가.


못다 부른 노래

손순자 지음, 목언예원(2015)


태그:#원경 스님, #김영환 국회의원, #지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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