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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양이, 고양이가 우리 집에 살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키지 않지만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나와 아내는 여태껏 한 번도 고양이를 키우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고 살아왔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체질적으로 고양이와는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에드가 알렌포우의 소설에서 묘사된 고양이의 이미지가 강해서였을까? 아니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고양이에 얽힌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그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고양이란 놈은 길들일 수 없는 놈이거든. 나중에 사람한테 해코지를 많이 해" 

 

그래서 내가 물었었다.

 

"그래요? 어떤 식으로요?"

"시집오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가. 밀양읍내에 살 때 이야긴데, 옆집에 이모가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웠거든. 근데 이 고양이가 생선을 자꾸 건드리니까 이모가 부지깽이로 한번 혼을 낸 적이 있다 아이가. 그란데 이놈이 나중에 앙문을 하는기라." 

('앙문'이란 해코지를 뜻하는 갱상도 말인 듯했다.)

 

"어떻게 앙문을 했는데요?"

"어떻게 앙문을 하는가 하면 말이다. 우리 집 이모가 억수로 깔끔한 사람이거든, 집안을 억수로 씻고 닦고 하는 사람이라 집은 헌집이라도 윤이 났었다 아니가."

 

"아- 니, 고양이가 어떻게 앙문을 했냐니 깐요."

"어, 그래 이모가 깔끔하기도 했지만 그중에서도 이불하고 요는 억수로 더 깨끗하게 챙기는 사람이었데이. 일일이 풀 믹이가지고 빨래하는 거는 기본이고, 하여튼 남들보다 한 열 배쯤은 이불하고 요를 더 귀하게 챙겼었데이. 그란데 이 고양이를 부지깽이로 혼낸 그 다음 날 아침에 이모가 농을 열어 보고 놀래 자빠졌다 아이가."

 

바짝 궁금해진 나는 엄마께 바로 캐물었었다. 

 

"아니 왜요?"

"아, 이노무 고양이가 쥐를 잡아가지고 농안에서 회를 쳐놓은 기라. 이모가 제일 아끼고 아끼는 그 이불하고 요에다가 쥐피를 온통 칠해놓고 쥐 살점들을 발라놓았는기라…. 고양이 보고 영물이라는기 그래서 하는 말인기라. 이모가 뭐를 제일 아끼는 줄 딱 알고 거기다가 앙문을 퍼부은 거라. 쯧쯧. 그때 이모가 얼마나 기가 차고 놀랬었는지…. 그 뒤로 차마 그 고양이를 뭐라하지 못하겠더라 안하나 무서버서 말이다."

 

이 이야기는 어린 나의 머릿속에 뇌리 깊이 새겨졌다.

 

아내는 나와는 또 다른 고양이에 대한 좋지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내가 내게 전해준 이야기는 대강 이랬다.

 

아내의 친구 '소영'이란 사람이 있다. 어릴 적, 초등학교 때 이야기라 한다. 집에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웠는데 아주 오래되어 늙고 뚱뚱했다고 한다.

 

이 소영이란 친구에겐 배 타는 삼촌이 가끔 집에 들렀는데, 이 삼촌이 고양이를 그렇게 싫어했다 한다. 그래서 이 늙은 고양이를 내다 버리라고 성화를 했다 한다. 거기다가 눈에 띄면 발로 차기도 하고 빨랫줄에 거꾸로 걸어놓는 장난도 치고 했다 한다.

 

그 뒤 한동안 삼촌이 집에 들르지 않다가 어느날 하루 이 집에 들렀다 한다. 삼촌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방안에 들었다. 방에 들어온 삼촌은 장롱 앞에 쓱- 하고 앉는 순간 장롱 위에서 아래도 뭔가가 떨어지더라 한다.

 

가위, 그러니까 옛날의 그 재봉용 큰 가위(무쇠가위)가 삼촌 귀밑을 스쳐 방바닥에 떨어져 꽂히더란다. 놀래서 삼촌과 식구들이 장롱 위를 쳐다보니 그 고양이가 싸- 악 지나가더라는 거다. 이 늙은 고양이가 삼촌을 겨냥해서 재봉가위를 떨어뜨린 거였다.

 

이 이야기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아내는 나보다 더 고양이를 싫어했다. 시골에 와서도 고양이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고양이는 말이지, 잘 키워야 본전인 기라."

"개는 열 번 못해주다가도 한 번 잘해주면 고마워 죽지. 그런데 고양이는 말이야. 열번 잘해주다가도 한번 못해주면 등돌리는 놈인기라 ."

 

쥐만 잘 잡아준다면야...

 

체질적으로도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많이 듣다 보니 우리와 고양이는 전혀 무관한 관계였었다. 그러던 고양이를 이번에 눈 딱 감고 집에 들였다. 그 이유는 전에 한번 글 올렸던 것처럼 '쥐' 때문이다.

 

농촌에 귀농해 살게 되면서 쥐로 인한 피해와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쥐 때문에 농작물 피해도 생기고 집안에 냄새도 나고 차 안에까지 침입을 해 들어오니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그동안 쥐끈끈이, 쥐약 등 여러 방법을 시도했었다. 그때 잠시 효과가 있었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쥐들이 극성을 부리는 거였다. 그래서 이러한 고충을 글(관련 기사 : <설마...내차 안에 쥐들이 살고 있다니!>)로 블로그와 <오마이뉴스> 등에 올린 결과 선배들의 해법 제시가 있었다.

 

"고- 양- 이를 키우시오!"

 

우리는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고양이 고양이가 정답이다. 어쩌면 진작부터 고양이가 해법인 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더 고민을 하다가 우리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결론은 명쾌했다.  

 

"그래도 쥐보다는 고양이가 덜 미워."

 

최악보다는 차악? 비판적 지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우리는 그렇게 결정했고, 이웃에서 고양이를 한 마리 들였다. 아주 어린 것도 아니고 다 큰 것도 아닌 청소년쯤 되는 중치의 고양이를 얻었다.

 

이 녀석은 우리 집 식구가 될 인연이었나 보다. 고양이를 얻으러 이웃집에 갔을 때 희안 하게도 내게 친근감을 표시하며 안겨들었다. 내가 원래 주인과 이야기하며 걷는 동안에도  내내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 쫓아와 안기려 했다.

 

이놈은 그동안의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에도 큰 거부감 없이 살갑게 굴었고, 그 바람에 더 망설임 없이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우리 집으로 온 고양이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둘째 딸이 이 녀석 이름을 '야금이'라 지었고 우리 집에서는 이제 야금이로 불린다.

 

자신의 임무를 잘 알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읽었는지 오자마자 다음날 보란 듯이 커다란 쥐를 사냥해왔다.

 

축사에서 사냥 당한 쥐의 모습을 보고 우리 가족은 환호했다. 고민 끝에 스카우트한 보람이 있었다. 우리는 고양이 '야금이'를 많이 칭찬해줬다.

 

"잘했어 야금이,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너의 존재 이유야!"

 

새로운 식구가 된 고양이 '야금이' 우리 집에 잘 적응하고 잘 살아주길 바란다. 이 고양이를 키우며 그동안 내가, 그리고 아내가 가졌던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아니, 바뀌었으면 좋겠다. 좀 더 긍정적으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양이, #쥐,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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