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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무개씨는 장애인 아들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만들기 위해 지난 10월 6일 스스로 목을 맸다.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의 자살로 11살 장애인 아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정부에게 매월 55만 원을 받는다. 부양가족이 죽어야만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지난 11월 22일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 비장애인 30여 명은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에서 '활동보조 본인부담금 인상반대' '장애등급제 철폐'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나는 1일부터 2일까지 이들과 함께 지내며 이야기를 들어봤다.

 

"내 장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는데, 정부가 바뀌었다고 1등급이었던 장애가 3등급이 되는 사회가 어디 있습니까?"

 

뇌병변 1급 장애인 최흥조(44)씨는 올해부터 시행하는 장애등급심사제 때문에 걱정이 많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장애인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장애등급심사를 받아 1, 2급 대상자가 돼야 한다.

 

장애인 아들 위해 아버지가 목을 매 자살하는 사회

 

하지만 최씨는 얼마 전 장애등급모의심사에서 3등급 판정을 받았다. 3등급 판정을 받게 되면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된다. 그래서 최씨는 연금을 받기 위한 장애등급심사를 볼 수가 없다.

 

최씨는 13년 전 뇌병변 2급 장애인 최수현씨와 결혼했다. 최한성(12), 최한솔(10)을 낳았다. 아내 최수현씨는 남편 최씨보다 덜하지만, 밥을 짓는 거 외에는 집안일을 할 수가 없다. 일주일에 다섯 번 활동보조사가 방문해 집안일을 대신 해준다.

 

최흥조씨는 어머니가 부양 의무자로 지정되어 있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가 없다. 한 달에 어머니가 주는 생활비 20만 원과 최씨가 장애인자립센터에서 벌어오는 30만 원이 4인 식구 한 달 생활비다. 

 

"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님이 무슨 죄입니까? 제 나이 마흔 넷인데 아직까지 생활비를 받아쓸 수밖에 없어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내년부터 정부에서 활동보조서비스의 본인 부담금을 15% 인상한다고 하니 최씨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

 

뇌병변 1급 장애인 이은경(31)씨는 14살부터 29살까지 15년 동안 요양원 시설에 있었다. 이씨는 시설에서 죽을 때까지 있을 수 없어 작년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는 이씨는 3년 만에 검정고시를 통과해 고교 졸업자격증을 얻었다.

 

이씨와 같은 중증 장애인들은 노동을 하는 게 어렵다. 이씨는 대구장애인자립센터에서 동료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자립을 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들을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는 일이다. 

 

"제가 맡았던 일이 장애인 자립생활가정을 지원해주는 일이었어요. 비장애인들이 사는 동네에 장애인 자립생활가정을 만들려고 하니 지역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가 심했어요."

 

이씨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분류돼 한달에 50만 원을 지원받고, 자립센터에서 20만 원을 번다. 월 70만 원으로 월세 20만 원과 5만 원 정도 관리비를 내면 한 달에 그녀가 쓸 수 있는 돈은 45만 원 정도다. 

 

이씨는 장애등급 모의심사결과 4급 판정을 받았다. 내년에 장애등급제 심사가 의무적으로 시행되면, 그녀는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요양원에서 15년,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나왔지만..."

 

최흥조씨와 이은경씨와 같은 중증 장애인들은 활동보조서비스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용변을 보는 것부터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까지 비장애인들에게는 일상적인 일들이 최씨와 이씨에겐 불가능한 일들이다.

 

활동보조사가 오지 않는 날에는 최씨와 이씨는 물을 마시지 않고, 밥을 조금만 먹는다고 한다. 화장실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씨는 "마음씨 좋은 이웃들이 열 명 정도 있지 않는 한 1급 장애인들은 활동보조사 없이 살아갈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아침은 분주하다. 농성장에는 장애인의 비율이 더 많았기 때문에 활동가들의 손이 바쁘다. 비장애인들이 이불을 개고 난 후에 장애인들을 전동휠체어까지 업어주고, 중증장애인들이 소변보는 것부터 씻는 것까지 도와줘야 한다.

 

나는 병수발을 해본 경험이 없다. 때문인지 장애인화장실까지 데려가 허리띠를 풀고, 소변통을 대주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서툴렀다. 뇌병변 1급 장애인인 정승배(31)씨와 담배를 나눠 피고 아침을 먹었다.

 

정씨는 5살 때 요양원에 들어가 29살까지 24년을 요양원에서 보냈다. 정씨가 머물던 요양원은 자금 횡령, 국가보조금 전용, 사기 등으로 2008년 유죄판결을 받은 석암재단의 석암베데스다 요양원이었다.

 

원장은 정씨 아버지에게 700만 원만 내면 평생 맡아주겠다고 하였다. 원장은 이후에도 꾸준히 정씨 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했다. 정씨 아버지가 더 이상 돈을 내지 않자 정씨는 2008년에 요양원에서 쫓겨났다.

 

이후 아버지가 정씨를 장성에 있는 한 병원에 맡겼으나,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병원 측은 병원 사람들과 마찰이 생긴 정씨를 임의로 정신병원에 보냈다. 이후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정씨는 결국, 노들야학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 소식을 들은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에서 정씨를 병원에서 데려왔다고 이 단체 소속 임소연씨는 말했다.

 

그런 정씨는 월 12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받는다. 정씨는 연락도 되질 않는 아버지가 부양의무자로 지정되어있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비도 받지 못한다.

 

현재 정씨는 종로구 이화동 원룸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정씨는 활동보조사가 없을 때에는 용변을 보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담배를 피우는 것도 하지 못한다.

 

구교현 장애인부모연대의 조직국장은 "장애인 등급판정 심사 제도 실시 이후 장애인 46%가 등급이 떨어졌으며, 50% 넘게 재판정을 받았다"며 "뇌병변의 등급심사를 하는 의사들 사이에서 기준이 예전보다 악의적으로 높아졌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장애등급심사를 매기는 의사들은 장애인들이 처한 환경, 욕구, 노동무능력인 상태 등을 감안해 포괄적으로 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2일 오전 10시 10분경 국가인권위원회를 나온 8명의 장애인들과 3명의 활동가들은 오전 11시에 있을 기자회견을 위해 청와대 청운동사무소로 앞으로 향했다. 전동휠체어를 탄 8명의 장애인들은 가는 길에 10cm 높이의 방지턱이라도 있으면 돌아가야 했다.

 

정부종합청사를 거쳐 중국대사관 앞을 지나자 경찰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정승배씨와 뇌병변 장애인 김문주씨는 청와대 앞을 이날 처음 가봤다. 오전 10시 35분 청운동사무소 앞에는 경찰병력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부모연대,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등 20개의 시민사회 단체 주도로 이루어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는 부양의무제로 인한 피해 당사자의 증언발언과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었다.

 

당사자 증언발언에 나선 김현수씨는 "장애인들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부모의 짐이 되어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은 그 자체로 죄인인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초생활보장법을 해결한 후에야 친서민, 공정사회를 얘기할 수 있다"며 "이번 국회에서 장애인 복지 예산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부양의무제로 인한 피해당사자 37명의 민원'을 제출하러 갔던 김현수씨는 "지금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인한) 준전시 상태이니 민원을 받을 수가 없다"라는 대답을 듣고 내려와야만 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장애인, 비장애인 등 약 40명이 보건복지부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장애인들 9명이 정문을 지나자 보안요원들이 정문을 쇠사슬로 잠궜다.  

 

"왜 장애인들이 못 들어오게 쇠사슬로 문을 잠그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보안요원은 "눈이 있으면 봐라, 이 사람들 여기 뭐 하러 오는지, (당신이) 알아서 기사 쓰라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보건복지부에 도착한지 20여 분이 지나자 경찰병력이 보건복지부의 정문을 에워쌌다.

 

이날 정문 밖에 있던 모경훈씨는 "장애인을 위해서 일해야 될 보건복지부 직원들이 장애인들은 오지 말라고 문을 잠갔다"며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기분 나쁘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숨쉬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한 활동가는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저주다"라며 "이런 순간들을 겪을 때마다 장애를 갖고 있는 내 현실이 비참하다"고 말했다.    

 

12월 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우리나라의 장애인의 날은 4월 20일이다). 세계장애인의 날은 UN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 인권보장을 실현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이들이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이 죄인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죄인지, 잘 구분이 안 간다. 

 


태그:#장애인차별철폐, #기초생활법, #부양의무자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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