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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빨리 죽어야 되는데···."

 

집 앞에서 어머니 휠체어를 밀고 오르락내리락 할 때였습니다. 어제 어머니가 콩 심으러 가야 한다고 심하게 떼를 써서 호미랑 콩자루를 들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때, 어머니와 동갑이신 아랫집 할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내 손에 난 핏자국과 상처를 보신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시면서 내 한쪽 팔을 쓰다듬으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다시 말씀 하셨습니다.

 

"죽어야 돼야. 빨리 죽는기 좋아. 이래가지고 살아서 뭐 해? 자식 고생만 시키고."

 

내가 씩 웃고 서 있자 할머니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셨나 봅니다. 늙음에 대한 죄책감이 이렇게 표현되는가 싶습니다. 늙음은 곧 자식에 대한 죄책으로 인식되는 현실. 그래서 영하를 오르내리는 차가운 겨울날에 콩 심었냐고 묻는 우리 어머니한테는 대꾸를 않으시고 자꾸 나를 보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트럭을 타고서 논개 생가랑 육십령 고갯길로 바람을 쐬고 돌아 오는 길에 윗 집에 사시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근 1키로미터나 되는 산길로 걸어 올라 가시다가 우리 트럭을 만난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어머니 귀가 어둡다지만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예 개의치 않고 말씀 하셨습니다.

 

"빨리 죽어야 되는데···.  할머니도 그게 편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살아."

 

저에 대한 간곡한 위로의 말씀이라 여깁니다. 한 생명에 대한 사멸을 전제하는 위로입니다. 한 생명을 죽임으로써 다른 한 생명을 위로한다는 것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젊음과 늙음에 대한 생명 값어치를 구별하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우리는 자식을 키우며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 옷에 똥오줌 묻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똥걸레 빨아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랫집 할머니가 보신 손은 이것입니다. 상당히 양호합니다. 엊그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오면서 119 응급차 안에서, 병원에서, 그리고 CT촬영 하면서 긁혔다기 보다 쥐어 뜯겼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그런 상처입니다. 피가 낭자했었는데 잘 씻고 내 여동생이 약방에 가서 연고를 사다 발라 줘 많이 아물은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래도 제법 고운 편입니다. 상처가 생기고 아무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지만 위에 보는 것처럼 많이 곱습니다. 어머니는 옷 갈아 입힐 때와 기저귀 채울 때 주로 내 손을 쥐어 뜯기 때문에 장갑을 끼어 봤습니다. 하지만 한 번 이용하고 벗었습니다. 손이 어줍기도 하지만 장갑을 끼고 어머니 몸을 만진다는 게 어머니와 나의 공간적, 심리적 거리를 엄청 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은 서울에서 어느 어머니의 극성스런 책 읽어주기 모습입니다. 참 아릅답습니다. 저도 아이 키우면서 스포크 박사의 엄청 두꺼운 육아책을 곁에 두고 읽었으니까요. 웅진에서 나온 '어린이마을' 책과 테이프를 늘 아이곁에서 읽어 줬으니까요. 아이가 잠 들때도 '어린이마을' 테이프를 틀어 줬습니다.

 

아마도 이 어머니는 버스 타기 전부터 정류장에서 책을 읽어주고 있었나 봅니다. 읽고 있던 부분을 표시하듯 손가락을 책 사이에 넣은 채 버스를 탔고,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놀랍고 충격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자식사랑과 부모방기의 극단이지요. 그래서 급히 손전화로 몰래 찍었습니다. 죽으라는 말로 위로 안 했으면 합니다. 유아기나 청·장년기, 그리고 노년기는 다 같이 삶을 구성하는 아름다운 부분입니다.


태그:#내리사랑, #어머니, #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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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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