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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는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의 얼이 오롯이 새겨있는 금오산이 이름나있답니다. 산 아래에 있는 채미정은 그분을 기리며 세워진 정자랍니다.
▲ 채미정(명승 제52호) 구미시는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의 얼이 오롯이 새겨있는 금오산이 이름나있답니다. 산 아래에 있는 채미정은 그분을 기리며 세워진 정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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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冶隱) 길재(吉再)-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만나 참으로 즐겨 읊었던 시조입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묻혀 지내다가 옛 도읍지를 돌아보며 슬픈 마음으로 쓴 이 시조의 주인공인 길재 선생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는 곳이 바로 경북 구미시랍니다.

워낙 가까운 곳에 있고, 또 틈나면 자주 다니던 곳이라 어쩌면 너무나 쉽게 지나쳤는지도 모르겠어요. 한 해에 못해도 한두 번씩은 가보곤 하던 곳인데, 사실 '구미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공단도시'라는 것과 널리 이름난 '금오산'을 떠올릴 수 있답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이름난 곳인데도 소개 한 번 제대로 못했네요. 오늘은 내가 사는 구미시 금오산을 맘껏 자랑해볼까 합니다.

금오산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랍니다. 꼭대기 '현월봉'이 977m이니까요. 꼭대기는 평평하지만 거기까지 오르는 길은 바위산이 많고 꽤나 험하답니다. 구미에 살면서도 '할딱고개(오르는 길이 험해서 이 고개를 오를 때 숨이 할딱거린다는 뜻에서 나온 고개 이름)'까지는 가봤어도 금오산 꼭대기까지 아직 올라가보지 못한 이들도 꽤 많은 걸 보면 잘 알 수 있답니다. 저 또한 딱 한 번 올라가 본 기억이 다랍니다. 그리고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지요.

가까이에 있어 오히려 자주 가지 못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멋진 길을 만들어놨네요. 금오산저수지 위에 올레길을 만들었어요.
▲ 금오산 올레길 가까이에 있어 오히려 자주 가지 못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멋진 길을 만들어놨네요. 금오산저수지 위에 올레길을 만들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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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충신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의 얼이 담긴 '채미정'

고려가 망하고 벼슬을 떠나 고향 선산으로 내려와 늙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지낸 길재 선생한테 함께 공부했던 동창생이기도 했던 조선의 이방원(태종)이 '태상박사'라는 벼슬을 내려 그를 설득했지요. 하지만 선생은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고 거절했습니다. 고향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보냈답니다. 길재 선생은 성리학을 연구하며 고려 때에 성균관 박사도 지낸 분이랍니다.

고려삼은이라 하여 고려의 세 충신을 말하는데,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 목은(牧隱) 이색 세 사람을 두고 일컫는 말이랍니다. 모두 나라에 충성을 다한 분들이시지요. 이렇듯 충절을 지키며 세상에 때 묻지 않은 훌륭한 분의 얼을 새기며 기리는 곳이 바로 내가 사는 구미시에 있다는 것이 퍽 자랑스럽습니다.

금오산으로 오르는 길 곁에는 '채미정'(명승 제52호)이란 정자가 있답니다. 이곳이 바로 길재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정자입니다. 흥기문(경북 기념물 제55호)을 지나 들어가면, 왼쪽에 구인재와 오른쪽엔 채미정이, 또 앞에는 경모각이 있지요. 경모각에는 길재 선생의 초상화와 숙종임금이 친히 쓴 '오언시'도 있답니다.

야은 길재 선생의 초상화를 모셨어요. 요즘은 문화재마다 꼭꼭 문을 걸어두어 안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는 곳이 많은데, 이곳은 이렇게 활짝 열어놓았답니다.
▲ 경모각 야은 길재 선생의 초상화를 모셨어요. 요즘은 문화재마다 꼭꼭 문을 걸어두어 안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는 곳이 많은데, 이곳은 이렇게 활짝 열어놓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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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선산읍 원리, 야은 길재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금오서원이랍니다. 지난해에 갔을 땐, 문도 굳게 잠겨있고 잡풀이 자라서 몹시 안타까웠는데, 올해 2월에 다시 찾아가니 이렇게 새롭게 거듭나고 있더군요. 구미 곳곳에는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의 얼을 되새기며 기리는 곳이 많답니다. 사진은 2010년 2월에 찍은 것입니다.
▲ 금오서원(경북기념물 제60호) 구미시 선산읍 원리, 야은 길재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금오서원이랍니다. 지난해에 갔을 땐, 문도 굳게 잠겨있고 잡풀이 자라서 몹시 안타까웠는데, 올해 2월에 다시 찾아가니 이렇게 새롭게 거듭나고 있더군요. 구미 곳곳에는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의 얼을 되새기며 기리는 곳이 많답니다. 사진은 2010년 2월에 찍은 것입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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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에는 풍경이 철따라 아름다운 너른 잔디마당이 있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공연도 펼치지요. 참 아름다운 곳 가까이에 산다는 게 무척 기쁘네요.
▲ 금오산 잔디마당 금오산에는 풍경이 철따라 아름다운 너른 잔디마당이 있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공연도 펼치지요. 참 아름다운 곳 가까이에 산다는 게 무척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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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마당 안에 자리 잡은 채미정에는 한가운데에 온돌방을 하나 두었답니다. 온돌방 사방으로 문짝이 달려있는데, 우리가 갔을 땐 이 문짝을 들어 위로 달아놨더군요. 날이 더울 땐 이렇게 문을 활짝 열어 매달 수 있으니 그것도 참 남다르더군요. 지난해 가봤던 김천 구성면에 있는 방초정과 비슷한 구조이더군요.

구인재 마루에는 젊은 남녀 둘이서 마주보고 앉아 가을볕을 쬐고 있더군요. 아마도 퍽 사랑하는 사이로 보였어요. 예스러운 건물에 정겹게 앉아있는 젊은 남녀의 모습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군요.

경모각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가는 이들을 반깁니다. 지금까지 여러 문화재를 봐 왔지만, 이렇게 문을 열어놓고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곳이 거의 없었는데 무척이나 반가웠답니다. 길재 선생의 초상화와 이런저런 글씨들이 많았는데, 하나하나 제대로 알아볼 수 없어 그게 조금 흠이었답니다. 조금은 친절하게 설명도 곁들여놓았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신라때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해운사 절집 풍경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 해운사 신라때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해운사 절집 풍경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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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바위산이 병풍처럼...해운사
금오산에 오르는 길은 걸어서도 가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도 있답니다. 산꼭대기까지 가는 건 아니고 바로 '해운사' 절집까지만 오갈 수 있지요.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곧바로 '해운사'로 들어섭니다. 지난날에도 와본 곳인데, 이번에는 더욱 더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그땐 지금처럼 문화재를 보는 눈길이 달랐고, 이렇게 여행하며 다니는 '참맛'을 몰랐기 때문일 겁니다.

이곳은 김천 직지사의 말사이기도 한데, 그 옛날 신라 때 도선국사가 세운 곳이랍니다. 깎아지른 듯 바위가 마치 절집을 보호라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절 뒤쪽에는 '도선굴'이 있는데 길재 선생이 이곳에서도 학문을 공부하기도 했답니다. 도선굴에는 지난날 가본 적이 있는데, 발아래는 허공이어서 바위 곁에 간신히 붙어서 아슬아슬 가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해운사는 임진왜란 때 무너졌다가 지난 1925년에 다시 고쳐 세웠다고 하네요.

제대로 마음 쓰고 살피며 알고 보니, 금오산엔 이처럼 곳곳에 길재 선생의 얼이 깃든 곳이 있더군요. 지금까지 구미에 살면서 길재 선생이 어떤 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금오산을 다시 돌아보면서 더욱 자세하게 알게 됩니다. 몇 해 앞서 거창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곳 문화재들을 둘러보면서 무척 놀라웠던 게 있답니다.

'일원정(경남문화재자료 제78호)'에서 길재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김숙자 선생의 발자취도 볼 수 있었는데요. 그 뒤를 이어 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분들이 바로 선생의 영향을 받은 분들이라는 걸 알고 무척이나 가슴 뿌듯하게 여겼던 일이 있었지요.

구미 지역을 벗어나서까지도 길재 선생의 올곧은 가르침이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다는 건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의 얼이 담긴 금오산자락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더군요. 또 이 지역에 사는 다른 이들도 이런 마음을 간직하고 내가 사는 고장의 남다른 문화와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면 참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산길로 걸어서 가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오늘은 케이블카를 타고도 가봅니다. 해운사까지만 오간답니다.
▲ 금오산 케이블카 산길로 걸어서 가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오늘은 케이블카를 타고도 가봅니다. 해운사까지만 오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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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찾는 이들도 이곳을 꼭 들러간답니다. 풍경이 아름답지요. 해운사 뒤에는 '도선굴'이 있어요. 가는 길이 가파르긴 해도 이곳에서도 야은 길재 선생의 얼을 찾을 수 있답니다.
▲ 해운사 산을 찾는 이들도 이곳을 꼭 들러간답니다. 풍경이 아름답지요. 해운사 뒤에는 '도선굴'이 있어요. 가는 길이 가파르긴 해도 이곳에서도 야은 길재 선생의 얼을 찾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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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사 대웅전 기와에 용머리가 솟았네요. 기왓장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 끝에 용머리를 달았어요.
▲ 대웅전 기와 해운사 대웅전 기와에 용머리가 솟았네요. 기왓장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 끝에 용머리를 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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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이 확! 바뀌었어요

너무나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한동안 와보지 못한 사이에 금오산 아래가 무척 많이 바뀌었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다른 어느 때보다 많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금오산 올레길'이 새로 생겨났네요. 그것도 금오산에 오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금오산저수지를 빙 둘러 아름다운 산책길을 만들었어요.

다른 한쪽은 아예 저수지 위에다가 구름다리를 길게 놓아 만들었어요. 지금까지는 그저 확 트인 넓은 호수를 보는 것이 다였는데,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꼭 걸어서 가 보고 싶게끔 했네요. 아니나 다를까, 천천히 걸어서 저수지를 한 바퀴 둘러보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넓은 저수지를 빙 둘러 올레길을 만들었어요. 한쪽으로는 저수지 위를 걸어갈 수도 있답니다. 요즘 이 올레길 때문에 금오산을 찾는 이들이 무척 많아졌답니다.
▲ 금오산 올레길 넓은 저수지를 빙 둘러 올레길을 만들었어요. 한쪽으로는 저수지 위를 걸어갈 수도 있답니다. 요즘 이 올레길 때문에 금오산을 찾는 이들이 무척 많아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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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둑으로 올라서는 길이에요. 이 길이 생기고나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답니다. 무척 잘한 일이네요.
▲ 금오산 올레길 저수지 둑으로 올라서는 길이에요. 이 길이 생기고나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답니다. 무척 잘한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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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한 일이다 싶었어요. 사실 금오산이 꽤 이름난 곳이긴 했어도 언제나 와보면 늘 똑같은 모습이라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뀐 게 없었는데···. 우리끼리도 뭔가 조금 남다르게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멋지게 바뀌었네요.

'구미' 하면 가장 먼저 자랑하고 싶고 알리고 싶은 곳이 금오산이었는데 딱히 볼거리가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지요. 그런데 이렇게 멋진 올레길이 생긴 걸 보니 참으로 좋더군요. 그 바람에 다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네요.

또 금오산 너른 잔디밭이나 주차장에서는 주말마다 여러 가지 공연도 펼칩니다. 얼마 앞서 기사로 올린 '무을풍물잔치' 같은 공연도 바로 거기에서 했지요. 지금까지는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서 즐겨 찾아보지 못하고 쉽게 지나치고 말았던 금오산에 이렇듯 볼거리가 있고 걷기에 좋은 올레길을 만든 건 참으로 잘한 일이라 구미시에도 칭찬하고 싶네요.

고려의 충신이자 성리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야은 길재 선생의 얼이 곳곳에 담겨 있는 금오산. 산을 찾는 이들만 즐겨 찾는 곳이 아닌 누구나 아무 때고 가도 즐겁게 머물다 올 수 있는 이곳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가슴 뿌듯하네요. 또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맘껏 자랑하고 싶은 곳이 되었다는 것도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태그:#금오산, #야은 길재, #금오산올레길, #채미정,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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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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