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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시에서 방송 쪽 일을 하는 싱글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딸이 셋이다. 

"어. 나야~"

특유의 거침없는 목소리.

"네. 잘 지내시죠?"

예의 인사말들이 몇 번 오간 후 본론으로 들어간다.

"한 가지 자문을 구할까 하고 전화했어."

얘기인즉슨, 미술에 소질이 많아 작년에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딸에 관한 것이다. 학교 잘 다니는 줄 알았는데 입학식 날 그만두었단다.

"왜요?"

"입학식 날 학교에 갔는데 학교에서 하는 말이 공부 열심히 가르쳐서 좋은 대학 보내겠다는 거야. 아니 무슨 인문계 고등학교도 아니고 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할 소리가 아니잖아. 앞길이 뻔 한데 어떻게 그냥 다니겠어. 그 길로 그만뒀지."

"그런 일이 있었군요."

"우리 사는 동네에 공립 대안학교가 있어요. 일 년 잘 쉰 딸아이를 그 곳에 넣어 보라는 주위 분들 권유도 있고 해서 입학신청을 하는데 입학전형에 학부모 면접 25%가 공식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거야."

학부모 전형에 대한 배점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 입학전형 안내문 학부모 전형에 대한 배점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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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면접의 내용과 배점기준을 설명하는 홈페이지 화면
▲ 입학전형 세부내용 학부모 면접의 내용과 배점기준을 설명하는 홈페이지 화면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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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는 대개 그렇지 않나요?"
"그래. 일반 사립 쪽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라면 그럴 수 있다 해도 명색이 공립학교인데 학부모 전형이라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사실 사립이라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공식적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는 거고."

"어떤 점에서 그렇죠? 뭐 통상적으로 다른 대안학교에서 그렇게들 하니까 그냥 그렇게 하는 수준 아닌가요?"
"이게 말이야. 나라에서 운영하는 학교인데 왜 학부모 면접 25%라는 전형이 들어있냐는 거지. 아니 학생의 자질이나 가능성이 전적인 평가대상이 돼야지 학부모의 교육철학이나 자식에 대한 지지가 무슨 관계야? 이거 연좌제 아니야? 부모 빽 없는 아이들은 25% 그냥 까먹고 가는 거잖아? 나쁜 부모를 둔 가능성 있는 학생들은 부모 잘못 만난 죄로 떨어지는 거 아니냔 말이지."

"연좌제요? ......흠. 말씀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요. 저는 그저 대안학교들의 일반적인 관행만 생각했지 그렇게까지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네요."
"그러니까 내 말이 타당성 있는 거야? 내가 혹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나 해서 조언을 듣기 위해 전화한 거야."

"아뇨. 그 부분은 전적으로 맞는 말씀이네요. 왜 저는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허를 찔린 기분인데요."

대화의 결말은 싱겁게 끝났다. 딱히 조언해 줄 말은 고사하고 오히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를 짚어준 셈이다. 학교를 이해하고 학생을 신뢰하는 학부모를 두고 싶은 대안학교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건 입학에서부터 아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모의 교양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연좌제가 심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마땅한 다른 단어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몇 해 전 시골에 내려온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들의 대안학교 때문이었다. 무차별한 경쟁교육을 피하고 싶었고, 학교의 권위적인 문화라든지 경쟁에서 파생되는 각종 불합리한 학교문화들, 사교육, 명문대 입시용 공부 등 공교육의 폐해를 피하고 싶었다.

내 아들은 세속적 출세를 지향하는 어른보다는 자존심과 공익심을 갖춘 착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적극적으로 고려했었고 실제 그렇게 하고자 시골로 내려온 것이었다. 아들은 당시 나이가 어려 대안학교에 입학하진 않았지만 대안학교가 있는 마을에서 일찍이 그런 공동체적이고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익히게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한 2년 가까이 옆에서 지켜본 대안학교의 실체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 아내와 상의 끝에 그 마을을 떠났다. 그 뒤로 대안학교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고, 그저 몹쓸 곳으로만 터부시했던 공교육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세대로 분류되는 486들이 나라의 주류가 되어가는 지금 시대가, 이상과 현실의 혼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시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 현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을 비판해 마지않는 486들이 실상은 사교육 시장의 부흥을 일으켰던 장본인들이고 여전히 그 시장 안에서 패권을 잡고 있는 세대들이다.

대안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이만큼의 성과를 불러낸 것도 486들이다. 대안학교를 어렵게 만들고 가꾸어 온 이들도 대개는 486들이고, 제 자식을 대안학교로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도 486들이다.

그러니까 심하게는 이런 조합이 가능하다. 자신은 강남에서 학원으로 돈을 벌고 자식은 시골 대안학교로 보내 사교육을 피하게 하는. 이른바 머리는 진보요 생활은 보수인 셈이다. 대안학교의 문화를 만드는데 이들이 담당하는 역할은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다.

김규항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진보 인텔리 부모들의 관심은 대안학교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한국의 대안학교들을 거지반 망가트려 놓았다. 그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다. 그들은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아니라 '얼마짜리'가 되는가가 목표가 되어버린 교육현실을 뛰어넘어 아이의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까다롭고 섬세한 그들의 취향을 자꾸만 거스르게 하는 공교육 현장을 우회하여 대학에 들어가길 바란다. 말하자면 그들이 대안학교에 기대하는 건 '대안적 삶'이 아니라 '대안입시'다.>(2010.10.20. 규항넷)

내가 겪은 대안학교의 실정과 무관치 않은 말이다. 설사 이와 다른 자세를 견지하는 부모들조차도 기실은 아이가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립시킬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자체는 대단히 선택받은 훌륭한 조건이고 그런 여유가 있음에도 아이에게 대안적 삶을 고민하게 하는 부모는 훌륭하지만 그럴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대안학교에 좌절했던 또 다른 것은 돈 때문이었다. 기부금 수백만 원. 별도 입학금에 월 기숙사비와 수업료. 첫해에만 들어가는 돈이 못해도 기천 만 원이었다. 통상 대안학교들이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씩 해외체험을 하기 때문에 상급반에 올라가도 비슷한 수준의 비용이 들어간다.

물론 이런 고비용의 대안학교는 미인가이기 때문에 국가로부터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한계때문에 의지는 있으나 가난한 부모를 만난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되고 마는 현실이다.

대안학교처럼 맑은 '일 급수'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혼탁한 '사 급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과정은 차치하더라도 동시대 아이들의 아픔을 함께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진정으로 좋은 어른이 되는 비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포기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보낼 형편이 안 되었고, 보내고 싶은 마음도 많이 꺾인 것이다. 이제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제가 원하지 않는 학원으로 밀어 넣지 않는 것과 원치 않는 공부시간을 강제하지 않는 것 정도다. 아이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학교에서 보지 않아야 할 것을 볼 것이고, 가능한 한 겪지 말았으면 하는 일도 겪어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바람직하지 않은 길이지만 경제로도 교양으로도 함량이 모자란 부모를 만난 내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아이가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는 길이다.

지금보다 훨씬 야만적인 학교를 다녀야 했던 우리 세대도 대체로는 선하고 좋은 어른들로 잘 성장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감옥도 마다하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른들도 있다.

그들도,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도 결국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충분히 기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지금 혼돈의 와중에 있는 대안학교가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온갖 시련을 이겨내면서 공교육을 자극하고 스스로도 완성도 있는 학교로 거듭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지금은 그런 결론을 내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 머리에 지인과 나눈 대화 속 주제 즉, (격한 표현이긴 하나) 연좌제에 대한 문제도 그런 연장선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태그:#대안학교, #입학전형, #486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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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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