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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로 들어가는 다리 능파각. 다리보다는 누각이 더 어울린다.
 태안사로 들어가는 다리 능파각. 다리보다는 누각이 더 어울린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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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가는 길

가을인지 겨울인지 분명하지 않은 계절. 가을을 보내지 않은 것 같은데 날씨는 추워진다. 11월이라는 계절은 아직 가을이라고 느끼고 싶을 뿐이다. 한적한 산사가 그리워 곡성 태안사로 향한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17번 국도를 벗어나 보성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18번 국도를 따라가다 태안사 가는 표지판을 보고 보성강을 건넌다.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 산사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로 들어선다. 입구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다. 차는 덜컹덜컹 거리며 먼지가 뿌옇게 이는 꼬리를 만든다. 쉬엄쉬엄 걸으면 좋으련만, 이미 차는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비틀비틀 열심히 올라가기만 한다.

산사로 가는 길이 끝날 즈음 계곡에 걸친 누각이 보인다. 누각형 다리인 능파각(凌波閣)이다. 옛 스님들은 멋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다리만 놓아도 될 텐데, 누각으로 만들어 잠시 쉬었다 가게 한다. 그것도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면서….

절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리를 놓은 뜻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세속에 관한 모든 일들을 물로 씻어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전 스님들이 계곡에 멋들어지게 걸친 누각에 앉아서 쉬다보면 오히려 세속이 그리워 절집으로 들어서지 못했을 것 같다.

선종구산의 하나인 동리산 태안사

가을 화려함을 보내버린 오솔길을 올라가면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은 언제보아도 신기한 문이다. 기둥 두 개에 의지해서 문을 만들고서는 주변 담장은 없다. 문으로 들어가도 되고, 옆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문이라고 말하지만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문이라고 인정해야 문이 된다.

태안사 일주문. 현판에는 큰 글씨로 동리산태안사라고 썼다.
 태안사 일주문. 현판에는 큰 글씨로 동리산태안사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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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기둥에 새긴 코가 쏙 빠진 용
 일주문 기둥에 새긴 코가 쏙 빠진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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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안에는 용이 두 마리 내려다보고 있다. 왼편 푸른 용은 코가 쑥 빠졌다. 보통 용들이 코에 수염이 멋들어지게 나있는 것과 달리 꽈배기처럼 꼬인 코를 만들어 놓았다. 일주문에 용을 새긴 목수의 장난기로만 보인다. 일주문에는 동리산태안사(桐裏山泰安寺)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걸렸다.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742년)에 혜철선사가 선종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일으킨 사찰이다. 처음에는 대안사로 불리웠으며, 한때 선암사, 송광사, 화엄사, 쌍계사 등을 거느린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의 본산지다.

태안사 한적한 풍경.
 태안사 한적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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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광자선사가 중창하였으나, 고려시대 중기에 송광사가 조계종의 본산지가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다가, 한국전쟁 때 능파각과 일주문을 남기고 모두 불타버렸다. 그나마 최근에 옛 모습대로 다시 복원하여 옛 영광의 흔적이나마 볼 수 있게 하였다.

늦가을의 따스함이 있는 절집

일주문 아래 왼편으로는 연못을 만들어 놓고 가운데 작은 섬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삼층석탑은 부서진 것을 복원한 것인데 참 잘생겼다. 화사한 질감의 삼층석탑은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탑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만들고 섬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태안사 삼층석탑
 태안사 삼층석탑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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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75호로 지정된 광자대사비. 대숲 속에 자리잡은 부도전에서 천년세월을 지키고 있다.
 보물 제275호로 지정된 광자대사비. 대숲 속에 자리잡은 부도전에서 천년세월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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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오른쪽에는 부도전이 있다. 부도전에 눈에 띄는 부도가 있다. 보물 제274호로 지정된 광자대사탑이다. 광자대사는 대안사의 2대 조사(祖師)로, 신라 경문왕 4년(864)에 출생하여 고려 혜종 2년(945) 82세로 입적하였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부도탑은 기와형태의 옥개석을 한 팔각형 부도로 상륜부가 그대로 남아있는 잘생긴 부도다. 뒤쪽으로 보물 제275호로 지정된 광자대사비도 있다.

절집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대웅전과 보제루가 마주보고 있다. 양 편으로는 요사인 적묵당과 해회루가 있다. 보제루에는 파란 목어가 눈을 부라리며 마당을 걸어가는 사람을 감시하고 있고, 대웅전 처마 밑에는 네 마리 용이 줄줄이 머리를 내밀고 서로 즐거운 듯 웃고 있다.

용 네마리가 고개를 빼들고 있는 대웅전
 용 네마리가 고개를 빼들고 있는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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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준비하는 절집
 김장을 준비하는 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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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과 해회루 사이 수조 옆에는 김장용 배추가 노란 속살을 보이며 햇살을 받고 있다. 절집은 조용하다. 하다못해 불경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늦가을의 한가로움이 절집 마당을 휘감고 돌아나간다.

고개 숙여 배알하는 적인선사 부도

대웅전 위로 약사전을 지나 절집 맨 위에는 보물 제273호로 지정된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이 자리잡았다. 적인선사는 태안사에 동리산파를 개창한 혜철(慧徹)대사로 신라 원성왕 1년(785년)에 태어나 경문왕 1년(861년)에 입적하였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을 보기 위해서는 배알문을 지나야 한다. 배알문은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을 보기 위해서는 배알문을 지나야 한다. 배알문은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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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선사 부도탑.
 적인선사 부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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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기단 위에 자리 잡은 부도는 작은 문을 만들어 놓고, 배알문(拜謁門)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부도를 보기 위해 배알문으로 들어가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문을 들어서면 말끔한 부도가 한기 있다. 너무나 잘 생겼다. 상륜부가 제 모습을 갖추고 있고, 옥개석도 상한데 없이 말끔하다. 옥개석 기왓골도 석공의 솜씨를 한껏 뽐낸 부드러운 곡선을 보여준다. 팔각형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새겼고, 기단부에는 사자를 돋을새김 하였다.

적인선사 부도는 태안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을 지키면서 흩어져간 세월을 지켜보았을 부도탑이 더욱 당당하게 보인다. 그 곳에 한참을 서서 늦가을 한적한 산사를 내려다본다. 마음이 허해진다. 부도 옆에 탑비의 거북이는 부도를 바라보면서 한발을 살짝 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11월 20일 풍경입니다.



태그:#태안사, #적인선사, #곡성, #선종, #동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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