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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라는 긴 산통 끝인 2001년에 태어난 국가인권위원회, 25일로 9번째 생일을 맞았다. 생일이니 '건강하게 잘 크라'는 훈훈한 덕담이 오갈 법도 하고, 마음을 담은 선물이 건네질 법도 하건만 흔한 생일잔치조차 없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취임한 지난 해 7월 이후 인권위의 생일잔치는 12월에 있는 세계인권의 날 행사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위축된' 인권위의 한 단면이다.

 

9주년을 맞이한 인권위 직원들의 분위기도 암울하다. 인권위 내부게시판에는 현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위원장님, 지금 인권위는 위기입니다. 위원장님이 이대로 임기를 채우신다한들 위원장님께 무엇이 남겠습니까? 직원들은 무슨 낯으로 인권이란 이름으로 일을 하겠습니까? 위원장님 인권위가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용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인권위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가슴이 아픕니다. 10년 전 많은 이들의 감내와 열정으로 만들어진 인권위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모두들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돌린 등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그 몇 배의 고통의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결단이 필요할 때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 '정권이 정권답게 사는 세상' 만드는 기구화 

 

외부의 뼈아픈 덕담도 이어졌다. 새사회연대는 성명을 내고 "25일은 인권위 설립 9주년이 되는 날인 동시에 국가권력의 인권침해에 대응능력을 상실한 국가인권위,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을 훼손당한 국가인권위, 정권이익에 복무한 자들의 나눠먹기식 자리로 전락한 국가인권위가 된 지 2년째가 때이기도 하다"며 "국가인권위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전인수·구상유취 현병철 사퇴가 바로 그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288개 시민사회단체가 꾸린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인권시민단체 긴급대책회의'는 인권위 9주년에 부쳐 장문의 편지를 썼다. 대책회의측은 "국가인권위가 9년 전 처음 품었던 '처음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국가인권위는 '정권이 정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위원장 스스로 '인권'이 무엇인지 질문해본다면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왜 거센지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하루빨리 사퇴하는 것이 고사 직전의 상황에서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국가인권위와 인권을 위한 길"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인권위를 만들 때나 만든 후에나 인권위와 함께 한 최영애 전 인권위 사무총장 역시 인권위의 9번째 생일을 아프게 지켜보고 있었다. 최 전 총장은 2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3년 동안 공대위(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공대위) 활동을 하고 초대 사무총장에 이후 상임위원을 지내며 10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인권위가 이렇게 망가진 것을 보니 기가막히고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최영애 전 인권위 사무총장 "10년 동안 함께 한 인권위...망가진 모습 마음 아파"

 

그는 "최근에 임명되거나 내정된 상임위원들의 면모를 보면 인권 영역에서의 전문성이 없어서 더욱 실망스러운 상황"이라며 "전직 인권위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꽉 막혀서 뚫어야만 하는 벽이 길을 막고 있어 앞이 안 보이고 막막한 느낌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뚫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며 싸워나갈 의지를 다졌다.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이 마련한 <기로에 선 국가인권위, 창립 9주년 토론회>에서도 '앞으로의 인권위'를 위한 제언들이 이어졌다. 현재 뿐 아니라 '그 다음'을 위한 움직임이다.

 

25일 오후 인권위 배움터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현병철 개인의 자질 문제도 있지만 이명박 정권의 인권 후퇴정책이 전반적인 인권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이번 기회에 인권기구의 인선 절차의 보완·사회권 심사를 못하는 인권위 한계에 대한 제도적 보완을 환기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인권위'을 위한 제언..."소중한 인권위 제자리 찾아야"

 

인권위의 인선절차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됐다. 발제를 맡은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현행 인선절차에는 위원의 인권 전문성과 인권 지향성에 대한 검증이 부재하다"며 "현재는 독립기구의 장(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이 아니라 행정부처의 장을 임명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홍 교수는 이어 "인권위원장과 상임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절차를 마련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진한 후 후보추천위원회를 따로 구성해 투명한 인성을 보장하거나 국회가 선출하는 위원의 몫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뒷걸음질 하는 인권위를 구하기 위한 방책이다. 

 

인권위의 미래를 밝히기 위한 행사는 늦은 오후에도 진행됐다. <국가인권위 설립 9주년 맞이 고사 직전의 국가인권위를 '9'하라!!> 촛불 문화제가 오후 7시 30분 인권위 앞에서 열린 것. 이들의 촛불이 바라는 바는 "소중한 인권위가 제자리를 찾는 것" 하나였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사람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떨어짐을 느낄 때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며 "그럴 때 소중하게, 올바르게 인권위가 서 있어야 사람의 가치를 지켜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사태 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천정배 의원은 "인권위는 오랫동안 진짜 민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투쟁한 산물"이라며 "어떤 일이 있어도 인권위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천 의원은 "인권의 'o'도 모르는 인권 위원장이 사퇴해야만 인권위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촛불문화제가 끝난 이후 인권위 11층에서 1박 2일 집중 농성을 벌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26일 오전 현병철 위원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태그:#인권위, #현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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