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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지난 11월 12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났다. 청와대와 정부, 아니 이명박 대통령 자신부터 먼저 나서서 "역사적인 성과"라고 자평하고, 이를 적극 홍보하라고 지시했다 한다.

 

일부 언론도 회의 전부터 "G7 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열리는 최초의 G20"이라며 그 중요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참가자들이 회의기간에 쓰고 갈 돈이 400억 원이나 된다고 분위기를 고조시켜 왔고, 회의가 끝나자 '환율 전쟁을 막기 위해 경상수지 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며 그 '역사적' 의의를 한껏 부풀렸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NGO들은, 단 이틀 동안 치르는 행사에 1300여억 원을 쏟아 붓고, 이 가운데 150여억 원이 치안 경비에 쓰이고, 이를 위해 어린이와 노인을 비롯한 여러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복지비 예산이 삭감될 것이라는 우울한 이야기와 함께, '환경미화'를 위해 노점상이 한 달 동안 생업을 못하도록 막고 또 노숙인들이 자신들의 집(?)인 길거리에서 쫓겨나는 현실을 비판해왔다.

 

<교회와 인권> 10월호에 실린 글처럼,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를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논조의 글이 쏟아져 나오고, 또 이를 반대하는 다양한 회의와 시위가 지속돼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있겠지만, 이들의 처지에서 이번 회의의 결과는 "빈 수레가 요란했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다는 의견이 중론인 듯하다. 앞서 말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합의도 "내년 상반기까지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노력한다"는 선언적 구호로 끝내고, 내년 프랑스 G20 칸 회의로 논의를 미뤘다며, 결국 구체적인 합의는 실패한 것이라고 평했다.

 

이밖에 국제통화기금(IMF) 개혁과 함께 '글로벌 금융안전망', '개발' 등 다른 의제도 서울 회의에 앞서 10월 경주에서 열린 재무장관 회의 선언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정부가 지난 6월 G20 토론토 회의 당시 "남북 문제를 해소할 다리 역할"을 제안하면서 그토록 강조했던 '개발 의제'도 환율과 경상수지 목표에 대한 합의라는 문제에 가려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베스트셀러이자 국방부 지정 "불온서적"인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던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한 일간지 기고에서 이번 서울회의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시장근본주의가 오도해온 개발 문제에 새롭고 현실적이며 뚜렷한 역사적 이해에 바탕한 접근을 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기를 기대했다.

 

이어, G20이 말잔치에 불과하지만 말잔치도 그 시대의 상식을 확인하거나, 그 상식에 도전하는 역할이 있다면서, 서울 G20이 "이미 지적, 실용적 신뢰를 상실한 워싱턴 컨센서스보다 더 공정할 뿐 아니라 더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경향신문> 11월 9일자)고 바랐다.

 

그러나 회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이런 그의 기대와 바람이 좀 무색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시작으로 곤경에 처한 미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허겁지겁 시작했던 워싱턴 G20과 이번 서울회의가 차별성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쓴 글이겠지만, 이번 G20이 얼마나 "효율적인 대안"이 됐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앞으로 서울 회의에 대한 평가는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내릴 것이므로, 다만 나는 여기서 과연 교회의 관점에서 G20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G20과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

 

 

늦은감이 있기는 했지만, G20 서울 정상회의 개최 일주일 앞서서 우리신학연구소와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ICMICA)이 가톨릭 경제학자와 신학자를 초청해 국제 포럼을 열고, G20이 무엇이고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해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런 점에서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다시 생각하는 경제와 개발: 가난한 이를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 모델의 추구'를 주제로 프랑스, 독일, 페루,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에서 40여 명의 경제학자, 신학자, 사제, 수도자와 평신도가 11월 1~4일 G20 정상회의 의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한국이 G20 의제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들고 나온 개발(development) 문제를 중심으로 △빈민국의 빈곤 △금융기구의 규제 △녹색성장 △개발에 대한 신학적 성찰 △교회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역할 등을 논의했다.

 

참가자들은 최종성명을 발표하고, 발전과 빈곤의 바로미터쯤으로 여기고 있는 GDP는 인간복지라는 상황 전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면서, 유엔이 제시한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같은 다른 지표를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인간개발지수는 유엔개발계획이 각 국가의 실질 국민소득, 교육수준, 문맹률, 평균수명 등을 여러 가지 인간의 삶과 관련된 지표를 조사해 각국의 인간 발전 정도와 선진화 정도를 평가한 지수이다). 또, 정부와 국가가 빈곤의 감소를 위해 적극적인 구실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특히 부의 정의로운 분배 문제에서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시작된 국제 정상들의 협의기구인 G20에서 금융기관의 규제를 논의하라는 요구는 당연해 보이지만, 지난 6월 토론토에서 열린 G20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지 말자고 합의한 것(agree to disagree)은 G20의 실효성과 정당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성명서는 구제받은 금융기관은 반드시 이를 되갚아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 정치권과 금융권의 밀착으로부터 금융위기가 발생했으므로 이는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는 독립의 원칙, 금융활동과 상품의 질에 대해 금융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의 원칙을 제시했다.

 

또한 참가자들은 교회 지도자들이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민중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천주교의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해 한국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정부 관리를 만날 때마다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서울 G20의 성공을 주문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포럼을 통해 참가자들은 빠른 속도로 뒤섞여 가고 있는 지구화 과정에서 '자기들끼리의 모임'이지만 결정하면 그 영향력이 막대한 G20과 같은 글로벌한 이슈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식견과 자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포럼에서 물질 중심의 '개발'이 아닌 전체적인 민중의 '발전'과 이에 영향을 주는 현안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한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다만 구체적으로 인간 발전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교회의 관점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해 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식탁에 함께 앉아야 할 라자로

 

일찍이 교황 바오로 6세는 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1967)에서 인간 발전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렸다. 인간 발전이란 단지 배고픔과 빈곤이 감소되는 상태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공동체 건설에 있으며, 그 안에서 민중은 루카 복음에 나오는 거지 라자로가 부자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로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식탁에 함께 동등하게 앉아 음식을 나누는 전인적 해방에 있다고 강조한다(47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 교회가 세상에 문을 열었을 때 세상은 이를 적극 환영했다. 하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너무도 달라졌고, 어떻게 달라졌는가 캐묻지 않을 때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놓치고 만다. 맘몬을 섬기라고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아래서 인간 발전이 물질의 풍요만을 위한 개발이 아니라 개인과 인류전체의 발전, 곧 경제의 중심에 인간을 위치시키는 시각이 중요하다는 바오로 6세의 지적은 생태적 위기라는 커다란 도전을 염두에 두면서 여전히 우리 교회가 명심해야 할 금언이다. 이런 의미에서 G20과 같은 새로운 현상은 "무시하기는 너무도 중요한"(too big to ignore) 현안이며, 그 안에서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식별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황경훈 님은 아시아신학연대센터 실장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G20, #인권, #그리스도교, #신학,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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