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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정문. 사측이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컨테이너 박스. 일명 '몽구산성'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정문. 사측이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컨테이너 박스. 일명 '몽구산성'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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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불태운 거에는 난리가 나도 사람이 불타는 거에는 무심한 나라, 대한민국" (트위터 @sanha88)

시너에 붙은 불길은 막을 틈도 주지 않고 또 한 사람을 집어 삼켰다. IMF사태 이후 생겨난 이 '비정규직'이라는 불길은 그 후로 빈번하게 일어나 그 순서가 몇 번째인지도 알기 어렵다.

20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황아무개(34) 조합원은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분신했다. 불길은 그의 얼굴과 가슴에 3도 화상을 입였고, 집회 참가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공장 안 그의 동료들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황씨가 분신한 무대 옆에는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정문을 봉쇄해 버린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 벽, 일명 '몽구산성'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법의 명령도 소용없었다. 대법원은 지난 7월22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소송에 대한 고등법원 기각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이 판결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이 원청인 현대차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현대자동차가 불법 파견을 진행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사측은 판결에 대한 확정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며 이들의 교섭요구를 거부했다. 노조는 대법원의 판결도 인정하지 않는 사측에 맞서 지난 15일부터 1공장을 점거하고 파업농성 들어갔다.

약 500만 제곱미터의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안에 외부와 차단된 작은 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 1공장을 <오마이뉴스>가  20일 그곳을 직접 찾았다.

공장 출입 통제 강화... 사측 농성장 진입시도

20일 공장 밖에서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이 사측이 노조가 점거 중인 1공장으로 진입을 시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철문을 뜯어 내려 하고 있다.
 20일 공장 밖에서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이 사측이 노조가 점거 중인 1공장으로 진입을 시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철문을 뜯어 내려 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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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측은 전날부터 출입통제 강화했다.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조 파업에 연대하기 시작했고 다른 공장으로 점거농성이 번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측은 정문만 컨테이너 박스로 막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에도 버스를 세워 차벽을 만들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1공장 주변을 관리자들이 빙 둘러 지키고 있어 진입이 불가능했다. 1공장 안으로 더 이상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11시 경 공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정문 앞에서 노상 농성을 벌이던 200여 명의 조합원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1공장 안으로 사측이 용역을 동원에 진입을 시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호돈 현대자동차 부사장이 퇴거통보서를 전달하겠다면서 대열 맨 앞에서 1000명에 가까운 관리자와 용역들을 이끌었다.

사측은 1공장 2층을 점거하고 있던 노조와 폭이 1m 정도밖에 안 되는 계단 위에서 정면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9명의 노조원이 용역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왔고 4명은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강 부사장도 가벼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언론은 이날 강 부사장이 입은 가벼운 부상과 노조원의 분신을 '노사 대립 심화'로 묶어 보도하기도 했다.

충돌 상황을 들은 공장 밖 노조원들은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닫힌 철재 문을 아예 뜯어내기 위해 밧줄을 묶어 당겨보기도 했다. 문이 덜컹거리며 벽 사이에 균열이 생기자 문 안쪽의 관리자들은 노조원들에게 분말 소화기를 뿌려댔다. 노조원들 순식간에 하얀 분말을 뒤집어쓰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공장안 상황은 이경훈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이 중재에 나서 일단락되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회사 측이 폭력을 자제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쟁가가 어색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오전의 충돌이 마무리 된 후 공장 밖 노조원들은 오후 3시부터 진행되는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준비했다. 영남권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전국의 시민사회 단체가 집결하는 대회에 앞서 노조원들은 간략한 사전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때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노동집회에서 흔하게 불리는 '단결투쟁가'를 노조원들은 진땀을 빼면서 배우고 있었던 것.  노래에 맞춰하는 '팔뚝질'도 영 어색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의 조합원 수는 지난 7월 대법원의 판결 이후 두 달여 만에 600여 명에서 1900여 명으로 세배 넘게 늘어났다. 불확실한 투쟁에 소극적이고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하던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투쟁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민주노총 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도 1000여 명의 인원이 참석했다.

새로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이전에 노동운동을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투쟁가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가 멈춘 틈을 타 한 노조원에게 이 노래를 처음 부르는 것인지 물었다. 그는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으며 "들어보기야 몇 번 했지만 불러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답했다.

"비정규직, 파견직이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지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을 못했죠. 그런데 법원에서 현대자동차가 불법이라 했잖아요. 솔직히 기대는 안했지만 이제는 정규직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원도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그래도 노래 부르는 건 아직 좀 어색합니다."

조합원들이 힘겹게 '단결투쟁가'를 완창하고 잠시 쉬는 동안 대회 참가자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1공장 안으로 비정규직들이 먹을 물품이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은 것은 그때 즈음이다. 물품을 실은 차량에 조합원과 함께 탑승했다. 막혀있는 정문과 부정문을 지나 경비가 삼엄한 두 개의 출입문까지 지나쳐 정문 반대쪽에 있는 문으로 돌아 들어갔다.

공장 안까지는 들어왔지만 1공장에 접근하기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1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노사가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계단 앞에 도착했다. 그때서야 기자 신분을 밝혔고, 노조원들의 지원으로 무사히 공장 2층에 올라갈 수 있었다.

조합원 분신 소식에 500여명의 농성자 슬픔에 잠겨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드림산업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황아무개(34)씨가 20일 오후 4시 20분경 공장 정문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 도중 무대 위로 뛰어올라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황씨는 불에 휩싸인 채 무대 뒤쪽으로 떨어졌고 곧바로 앰뷸런스에 실려 인근의 울산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동료 노동자들이 불을 끄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 도중 분신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드림산업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황아무개(34)씨가 20일 오후 4시 20분경 공장 정문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 도중 무대 위로 뛰어올라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황씨는 불에 휩싸인 채 무대 뒤쪽으로 떨어졌고 곧바로 앰뷸런스에 실려 인근의 울산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동료 노동자들이 불을 끄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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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안은 낮처럼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지만 제조라인은 모두 멈춰있었다. 틀만 완성된 차들이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줄지어 있다. 밖의 날씨는 따뜻했지만, 공장 안은 밤의 서늘함이 휘돌았다. 농성자들은 언제 있을지 모를 진압에 대비해 좁은 계단을 빽빽이 채우고 앉아 이었다.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아 보였다. 박스와 비닐로 깐 농성자들의 잠자리 머리맡에는 컵라면과 빵봉지 뿐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남자화장실에는 길게 줄이 늘어섰다.

분신 소식을 들은 것은 공장안을 둘러보고 겨우 자리를 잡았을 때였다. 공장 안에서도 휴대전화 사용은 자유로워 농성자들은 밖의 소식을 빠르게 접했다.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를 유심히 보던 농성자들이 동료들에게 분신 소식을 전했다.

동료 조합원의 분신 소식에 공장 안은 일순간 침울해 졌다. 일하는 공장도 다르고 하청업체도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분신한 황씨가 속해 있던 4공장의 동료들은 큰 충력을 받은듯 말을 잇지 못했다.

노조 지도부는 공장 안 500여 명의 농성자들을 긴급하게 소집했다. 황씨의 분신 소식을 알리고 흐트러진 분위기를 다잡는 자리였다. 분신 소식이 전해지자 1공장 안은 조합원들의 탄식과 분노가 교차했다.

황씨와 4공장에서 함께 일한 한 동료 조합원은 "홀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효자면서 조합에 대한 열정이 넘쳐났던 동지"라면서 "공장안에서 함께 투쟁하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노조 활동을 위독한 어머니에게 알리겠다는 사측의 협박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은 눈물을 쏟으며 건강이 좋지 않은 황씨 어머니에 대해 "우리가 꼭 정규직이 돼, 우리 손으로 돌봐드립시다"라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노조에 따르면 황씨는 17일 새벽까지 공장 안에서 농성을 하다가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공장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이후 공장 안으로 다시 들어오려고 시도했지만 관리자들과 용역들의 경비가 강화돼 공장 밖에서 농성을 진행 중이었다. 황씨는 당장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현재 부산 북구 베시티앙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우리가 잘되면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희망 얻을 것"

20일 오후 동료 조합원의 분신 소식을 접한 후 울산 현대자동차 제1공장에서 열린 보고대회에서 현대자동차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일 오후 동료 조합원의 분신 소식을 접한 후 울산 현대자동차 제1공장에서 열린 보고대회에서 현대자동차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명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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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자들은 컵라면 하나와 찹쌀떡, 빵 등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식사가 끝나고서야 겨우 농성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공장 한편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이번 파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들은 쑥스러운 듯 웃거나 슬금슬금 기자를 피하기도 했다. 결국 동료들에게 떠밀린 한 조합원이 대답했다.

"조합원 모두가 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노조가 파업한다고 하면 밖에서는 다 뭐라 하지만 이번만은 다릅니다. 저희는 별 걱정 안 해요. 법원에서 내린 판결이 있고 비정규직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파업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다 인정하는 거니까. 이번에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겁니다. 아마 회사가 우리를 인정하고 대화에 나서거나, 우리가 피 튀기며 공장 밖으로 쫓겨나거나 하겠죠."

한 사람이 말문을 열자 다른 조합원들도 입이 트였다.

"법원에서 회사가 우리를 불법 고용했다는 대법원 판결이 컸어요. 법에 따라야죠. 법치국가 아닙니까. 가장 확실히 항의 하는 방법은 노조에 가입하는 거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는 항상 있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잘 모르니까 남 일처럼 생각했죠. 이제는 아니까 그대로 해야죠. 법도 2년 일하면 정규직 채용하게 돼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은 중년의 조합원들만이 아니었다. 농성자들 가운데 유독 어려보이는 하아무개(28)씨는 아니나 다를까 경력 2년의 1공장 막내조합원이었다.

인터뷰 요청에 부끄러움을 타는 건 이 공장 조합원들의 공통점인듯 했다. 어렵게 말을 꺼낸 하씨는 "이번 파업이 처음 노조활동을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내 미래를 위해서, 곧 결혼 하고 생길 내 아이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잘되면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희망을 가지고 일어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규직 노조가 쥔 열쇠... "형님 믿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에게 보내는 편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에게 보내는 편지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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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째 불편한 환경에서도 사태해결의 희망을 잃고 있지 않은 노동자들이지만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비정규직노조는 파업을 시작한 이후 기본급 9만982원 인상, 경영성과금 300%(기본급 기준)+200만 원, 일시금 300만 원, 무상주(현대자동차 주식) 30주 지급등 기존 교섭안에 대법원 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울산을 비롯해 전주, 아산 등 비정규직노조 세 곳은 대법원 판결 이후 원청인 현대차에 5번의 교섭을 제안했지만 사측은 이를 모두 거부했다.

게다가 중앙노동위원회는 파업을 시작한 지난 15일 노조가 제출했던 쟁의조정신청에 대해 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정했고,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이상수 비정규직노조 지회장 등 간부 27명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파업 7일째를 맞은 현재까지도 사측은 이들의 직접고용을 불인정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 할 수 있는 것은 현대자동차 정규직노조의 적극적인 연대라는 것이 비정규노조의 생각이다. 정규직노조가 사측의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고 연대파업 등으로 나선다면 사측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비정규직 입장에서 상황은 나쁘지 않다. 이경훈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은 농성 5일째인 지난 19일 농성장을 방문해 "조속한 사태 해결을 위해 교섭창구를 열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비정규 노동자의 분신에 대한 여론도 정규직노조의 적극적인 연대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공장 안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부분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에 나이가 어린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란 색지에 적은 편지는 이번 싸움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형님들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그:#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울산, #현대차,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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