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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끄는 인력거
 손으로 끄는 인력거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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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끄떡없다! 이렇게 튼튼한 팔뚝이 안 보이나?"

무슨 일이 있어도 사이클릭샤-자전거로 끄는 수레-만은 타지 않으려 그리 다짐했건만. 그러나 이 젊은 릭샤꾼은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얇지만 검고 단단한 팔뚝을 내보이며 자랑까지 하면서 말이다.

거리는 온통 진흙탕, 아니 '똥탕'?

워낙 좁은 골목길이 많고, 사람도 많아 번잡한 바라나시. 이곳에서는 직접 페달을 밟아야 하는 자전거로 움직이는 릭샤, 즉 사이클릭샤가 주요 이동 수단이다. 정 타기 싫다면 걸어 갈 수밖에. 바라나시를 떠나기로 한 날,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기차역까지 터벅터벅 걷기 시작한다. 시간은 넉넉했지만 기차역까지는 까마득하고, 짊어진 배낭은 오늘따라 천근만근이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는데, 거리는 온통 질퍽한 진흙탕이다. 아니, 진흙탕인지 '똥탕'인지 알 길 없는 곳이 바로 인도가 아니던가. 요리조리 안전한 지대(?)를 찾아 한걸음씩 내딛는 모양새가, 살얼음판도 이보다 더하랴. 차마 사이클릭샤를 잡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한 대가 멈추어 선다. 못 이기는 척 올라타고 만다.

아그라에서 보았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집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짐이란 짐은 죄다 쑤셔 넣은 듯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두 개씩이나 싣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사이클릭샤 위에 앉아 있던 한 뚱뚱한 청년. 버거운 듯, 느릿느릿 페달을 밟아 나가던 늙은 릭샤왈라. 나는 그 때, 그 광경을 인간이 '인간 이하의 무언가'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경멸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가. 한데 지금 그 자리에 내가 있다. 속으로는 '사실 그 청년이 뚱뚱한 편은 아니었어. 내 삐딱한 시선이 덧 씌워져 그렇게 보였던 거지'라는 둥의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제발, 오르막길만은 나오지 않기를

모터나 자전거가 아닌 손으로 끄는 인력거
▲ 릭샤왈라 모터나 자전거가 아닌 손으로 끄는 인력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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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건 지금 나는 달리는 사이클릭샤에 앉아있다. 젊은 릭샤왈라의 맨발에 묻은 흙 때는 이젠 씻어도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발로 페달을 쉴 새 없이 밟는다. 삐쭉이 솟아있는 돌부리도, 움푹 파인 물웅덩이도, 심지어 곳곳에 널린 동물의 배설물도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단단한 팔뚝 자랑까지 하는 걸 보니 오히려 활력이 넘쳐 보인다. 손님을 안심시키려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축축이 젖어가는 그의 등이 보인다. 제발, 오르막길이 나오지 않기만을 빌고 또 비는 수밖에.

다른 도시에서도 사이클릭샤를 탈 기회가 간혹 있었지만, 절대 타지 않았다. 혹시라도 탈 기세가 보이면 어김없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위함이 아닌 것 잘 알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못 본 척 도망쳐 버리는 거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라도 편하고 싶은 게 고작 나란 인간이니 어쩌겠나. 머나먼 타국에서 이토록 비겁해지는 내 자신과 수도 없이 마주쳐야한다는 사실은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불편한 일이다.

- 여행에서 돌아온 뒤, 꼴까따 인력거꾼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영화, '시티 오브 조이'를 봤다. 구걸이 아닌, 일을 해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음에 감사하던 영화 속 릭샤왈라들의 모습은, 바라나시에서 만난 단단한 팔뚝의 릭샤꾼를 떠올리게 했다. 순간, 생계를 위해 숭고한 노동을 하는 그에게 싸구려 동정을 들켜 버린 일이 그리도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

타지마할을 눈앞에 두고 돌아가다니? '타지마할은 금요일에 쉽니다'

인도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면적을 가진 나라다. 그 때문에 거대한 영토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얘깃거리다. 도시 안에서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는 릭샤나 택시, 로컬버스를 이용하지만,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할 때는 비행기를 타거나 지역에 따라 슬리핑버스 혹은 기차를 타게 된다. 밤에 이동하는 버스나 기차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현지인과 얼굴을 맞닿고 지낼 수 있는 기회-거의 유일한-이기도 하다.

단 문제가 있다면, 인도의 기차는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24시간을 꼬박 기차나 버스 안에서 보내야 할 경우도 있으므로, 머무는 기간에 따라 효율적인 일정을 계획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일주일의 일정으로 인도에 왔지만 결국 못 보고 돌아갔다는 어느 여행자의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자꾸만 연착되는 기차 때문에 일정이 밀린 데다, 도착한 날이 마침 휴관이었던 거다(타지마할은 매주 금요일 휴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곳을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기차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을 꼭 한 가지씩은 갖게 된다. 나라고 그런 경험이 없을까.

인도의 기차는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 소식없는기차 인도의 기차는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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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기차여행 중에는 간단한 간식을 사먹는다.
 장시간 기차여행 중에는 간단한 간식을 사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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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
 기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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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기차여행? 꿈도 꾸지 마!

기차란, 상상만으로도 있지도 않은 추억까지 불러일으킬 것만 같은 공간이다. 혼자 끝없는 생각에 잠기기에도, 여행길의 황홀함을 만끽하기에도 이만한 공간은 없으리라. 여행지에 도착하기에 앞서 몸과 마음이 느긋해질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느리면서도, 지나치는 풍경을 온전히 담아두기에 부족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 이는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매력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도에서의 기차여행은 생각만큼 썩 낭만적이지 못했다.

문제의 시작은 '첫 경험'부터다. 이미 도착했어야 할 자이살메르 행 기차가 30분 째 소식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아직 인도에 도착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가 아닌가. 왜 연착되는 것인지, 언제 도착하는 것인지, 기다리면 오기는 할 것인지 누구도 일러주는 사람은 없다.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기다림은 조금 지루하지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어느 누구도 기차가 늦는다는 사실에 조바심 내거나 궁금해 하지 않는다는 게 괜스레 짜증스럽다. 간혹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나와 같은 처지의 외국인뿐이다. 저기 저 인도인은 이미 플랫폼 앞에서 자리를 펴놓고 곯아 떨어진지 오래다. 만약 서울역에서 기차가 예고도 없이 두 시간이 넘게 연착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안 봐도 비디오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기차 안
 발 디딜 틈도 없는 기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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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행세도 이보다 더할까

긴 기다림 끝에 기차를 탄 후에도, 문제는 그치지 않는다. 한 칸의 정원은 분명 여섯 명인데,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그 틈에 끼어 앉는다. 이 중에 누군가는 무임승차한 것이 분명하지만 외국인 처지에 나서서 표 검사를 할 수도 없는 일.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문제는 어느 누구도 항의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대책 없는 관대함에 점점 울화가 치민다.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내 침대에 허락 없이 누군가 앉아있다니!

자야할 시간이 한참이 지나고 주체할 수 없는 피로가 몰려온다. 드디어 무임승차한 이들을 쫓아낼 꾀를 냈다. 내 기차표에 적힌 좌석번호와 실제 좌석을 번갈아 확인하는 척하며 내 집에 들어온 자신들이 불청객임을 인식하도록, 결국 제 발로 걸어 나가도록 하는 거다. 이때 반드시 눈을 비비며 졸리는 척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집주인 행세도 이보다 더할까. 소심하면서도, 졸렬하기 짝이 없는 수법이지만, 아무튼 작전 성공! 자리를 채웠던 이들은 하나 둘씩 어디론가 사라진다. 원하던 대로 넓어진 자리에 두발 쭉 뻗고 누울 수 잇게 됐다. 허나,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꾸만 옹졸했던 내 마음이 들여다보인다.

거친 모래 공격…마스크와 청테이프는 필수!

다음 날 아침, 밤새 추위에 떨며 얼어있던 몸을 겨우 일으킨다. 창이란 창은 죄다 손가락 한 마디쯤 열려서 닫히지 않아 그 틈으로 밤새 찬바람이 들어왔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작 문제는 추위가 아니다. 자이살메르가 가까워 온 열차는 열린 창문 틈으로 모래바람을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다(자이살메르는 타르 사막 남부의 건조지역에 있다). 기차 구석구석 어디든 거친 모래 공격을 피할 곳은 없다. 이거 오늘 안에 갈 수 있긴 한 거야? 벌써 예정된 도착시간은 넘긴 지 오래다.

혹시 누군가 자이살메르 행을 계획 한다면 기억하시길. 창문 틈을 막을 청테이프와 얼굴을 보호할 수 있는 마스크는 필수품이다. 단, 배낭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SL(Sleeper Class:침대가 있어 잠을 잘 수 있다)등급이 아닌 1A~3A등급을 이용한다면 염려할 것 없다. 창문이 '아주 굳게' 닫고, 에어컨도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 기차는 멈추기를 반복하다 밤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스물 네 시간 걸렸으니, 예정됐던 시간보다 열 두 시간이 지나서다. 꼬박 하루를 기차 안에서 보낸 셈. 물론  이후로도 인도에서의 기차 여행은 결코 순탄할 리 없다. 


태그:#인도, #기차여행, #자이살메르, #릭샤, #릭샤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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