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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이다. 보트 투어하는 모습.
▲ 바라나시 강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이다. 보트 투어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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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
▲ 타지마할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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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사기꾼들의 천국. 물건 값은 꼭 반으로 깎아라! 릭샤왈라의 말은 믿지 마라! 어두워지면 절대 공항 밖으로 나가지 마라!'

인도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여행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나다. 절대로 속을 내가 아니지! 물건을 살 때는 부르는 값에서 적어도 절반은 깎아야 한다거나, 정가가 쓰여 있는 제품도 속여서 파는 경우가 있으니 꼭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 등 대부분 금전적인 사기를 당하기 않기 위한 내용이다. 그 정도쯤이야 우리네 장사꾼들도 다들 쓰는 수법 아니던가? 뭘 그리 소란일까. 일단 부딪혀 보자. 책에서나 보던 일이 설마 일어나겠어?

사실, 시인이자 인도방랑자로 잘 알려진 류시화씨가 겪었다던 일화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의심스러운 참이다. 호텔이 망했다는 둥, 홍수에 떠내려갔다는 둥 하는 릭샤왈라의 말만 믿고 예정됐던 호텔로 가지 못하고 몇 배나 비싼 호텔에 묵었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지리를 잘 모르는 여행자들을 속여 비싼 호텔로 안내해주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 호텔이 홍수에 떠내려갔다니 말이다.

물론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귀여운' 사건이 나에게 벌어지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유치하게 꾸며대는 릭샤왈라에게 속을 만큼 순진한 내가 아니니까. 그런데, 나 이렇게 자신만만해도 되는 걸까?

오호라, 이제 시작이구나... 페스티벌은 무슨, 누구를 속여?

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다. 장시간 비행에 몸은 녹초가 돼 버렸다. 오로지 편히 자고 싶은 마음뿐. 밤에는 공항 밖으로 나가지 말라던 충고가 떠오르지만, 딱딱한 의자에서 웅크리고 밤을 보낼 수는 없다. 별일 있겠어? 공항을 빠져나간다. 퀴퀴하게 풍겨오는 지린내와 오묘하게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 감동과 설렘은커녕 바짝 움츠러든다. 검은 얼굴에 화려한 색상의 터번을 쓰고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이들의 눈빛에 이질감을 느낀다. 힐긋대다 바로 피해버린다.

'일단, 릭샤를 타고 빠하르간지-델리에 있는 여행자거리-에 내려달라고 하자. 가이드북에 적힌 숙소로만 가면 되겠지.'

바가지요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흥정은 기본! 릭샤 타기의 첫 관문은 무사히 통과다. 손님을 태우기 위해 몰려드는 릭샤왈라들끼리 서로 경쟁이 붙어 비싼 요금을 부를 수는 없었던 거다. 에이, 별것 아니잖아? 의기양양하게 릭샤를 잡아 탄 나는 "빠하르간지!"를 외친다. 그런데 릭샤꾼이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다.

"지금 빠하르간지에서는 며칠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가 봐야 남는 방이 없으니 다른 곳으로 내가 안내하겠다."

오호라, 이제 시작이구나. 축제는 무슨, 누구를 속여? 여유롭게 웃으며 "괜찮으니 그냥 가자"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릭샤꾼은 다시 빠하르간지로 향한다. 그러더니 다시 멈추어서는 게 아닌가? 그는 가엾어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거긴 정말 방이 없다. 못 믿겠다면 네가 가려고 하는 숙소에 전화부터 해보자."

릭샤꾼의 귀여운 거짓말에 잠깐 속아주기로 하고, 그가 건네준 핸드폰을 받는다.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로 전화를 건다. 그런데 아뿔싸, 정말 방이 없단다. 몇 군데 더 시도해봤지만 마찬가지다. 이게 아닌데? 거짓말이겠지. 나는 막무가내로 "빠하르간지!"를 외친다. 릭샤꾼은 포기했다는 듯 다시 목적지로 향한다. 그냥 속아줄 걸, 내가 너무했나? 사기 한 번 치기위해 이토록 고생하는 걸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물론 잠시일 뿐, 흐뭇한 마음으로 앉아 인도의 밤거리를 감상한다. 드디어 도착.

내가 칼에 찔릴지도 모른다고?

"지금 축제기간인데 외국인들을 데리고 오다니, 당신 정신이 있는 거야?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말렸지만 이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오자고 했다. 나는 책임 못 져!"

이게 웬일인가. 빠하르간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착하자마자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쫓아온다. 그러고는 릭사꾼과 함께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거다.

"더 말렸어야지! 술 취해 흥분한 사람들이 이 여자를 (칼로) 찔러버리면 어쩔 거야? 빨리 다른 곳으로 데려가!"

나를 사이에 두고 칼로 찌르는 시늉까지 한다. 멍하게 지켜만 보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뭐? 칼에 찔릴지도 모른다고? 내가? 더 이상 모든 상황이 '사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칼이라니, 도착하자마자 이게 무슨 봉변이람? 그토록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온 내 무모함을 탓할 수밖에. 결국 릭샤왈라와 함께 다른 숙소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간. 거리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갈 곳 없어 방황하고 있다. 안전한 숙소를 찾아 밤거리를 헤맨다. 이 친절한 릭샤꾼은 "밤이라 방을 구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이내 구석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낸다. 그는 내가 안전하게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후에 돌아간다. 하루 숙박비로 사흘치 생활비를 날려야 했지만 다 내가 자초한 일인데 누구를 탓하랴.

차마 호텔이라고는 봐줄 수 없는 허름한 방에는 쥐나 바퀴벌레가 들끓을 것 같은 침대만 덜렁 놓여 있다. 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빈 방을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빠하르간지에서 꽤나 먼 곳이리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너무나 긴 하루였지만, 무사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내 눈앞에 보인 것은 'Welcome To 빠하르간지!'

다음날 아침, 지저분한 숙소를 견디지 못하고 일찍 짐을 꾸려 나온다. 이른 아침부터 온갖 장사치들로 소란스러운 델리의 어느 거리다. 괜한 편견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친절한 릭샤왈라는 사기꾼으로 취급했다며 자책한다. 후회도 잠시, 이내 허기를 달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순간, 내 눈앞에 보인 것은 'Welcome To 빠하르간지'라는 표지판!

이제야 모든 사태가 파악된다. 어딘지도 모르고 어젯밤 잠을 잔 그곳이 바로 내가 찾던 빠하르간지였던 거다. 방도 없고 위험해서 들어갈 수 없다던 그곳이, 밤새 축제는커녕 폭죽소리도 한 번 들리지 않은 그곳이 말이다.

지난밤의 일을 곰곰이 떠올렸다. 전화 걸었을 때 방이 없다고 대답하던 호텔 주인, 그의 목소리는 분명 릭샤꾼과 싸우던 그 남자의 목소리와 동일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칼로 위협하는 시늉까지 하며 벌인 연극도 사실 어설프기 짝이 없지 않았던가.

남는 방을 찾기 위해 밤거리를 이리저리 헤맨 것도 아마 빠하르간지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토록 친절하게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해 준 것은 호텔 주인에게 수고비를 받기 위해서였단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절대 속지 않을 거라는 내가 정말 '제대로' 당한 거다.

인도의 시장, 이곳은 자이살메르다.
 인도의 시장, 이곳은 자이살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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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인도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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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아부의 어느 학교
 마운트아부의 어느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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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부자나라... 조금 더 낸다고 억울해 마라"

이제 나 같은 배낭 여행자를 '봉'으로 아는 인도인들이 모두 사기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텐 루피! 텐 루피-루피는 인도 화폐단위-!'를 외치며 쫓아다니는 아이들하며 어디를 가도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 릭샤왈라들과 몇 배나 불린 물건값을 부르는 상인들까지.

어젯밤 일로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대면서도 그깟 일로 여행을 망칠 수는 없다.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빠하르간지의 이곳저곳을 누빈다. 한 상인이 물건값을 터무니없이 높게 불러 좀 깎아달라고 했더니,

"당신들은 부자나라에서 왔다. 그러니 우리에게 조금 더 낸다고 억울해 할 것 없다."

순간, 말문이 턱 막힌다. 엄연히 정가가 붙어 있는 물건값을 몇 배나 더 지불하라고? 적당히 값을 치르고 돌아오면서 이들의 엉뚱하고도 자유로운 사고방식에 허탈한 웃음이 나올 뿐이다. 부자인 내가 돈을 많이 내는 게 당연하다니, 그리고 나는 부자도 아니잖아? 그런데 그 와중에 '부자나라'에서 온 '부자'가 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그들의 때 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주' 타령은 그 이후에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얕은 수에 손해 보는 돈은 우리 돈으로 몇 백 원에서 몇 천 원에 불과하지만 배낭여행자들의 생활비로는 적지 않은 돈이니 함부로 쓸 수는 없다. 다만 어쩌면 그들의 일주일 생활비일지도 모르는 돈을 한 끼 밥값으로 써버리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된다. 대한민국 땅에 사는 우리 또한 매순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단 하루도 못 버티고 델리를 떠나기로 한다. 여기는 머릿속에 그리던 인도의 모습이 아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인도의 수도답게 매캐한 매연은 코를 찔러대고, 짙은 회색빛 연기가 사방에 가득한 곳. 굶주린 개들만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다. 곳곳에 널려 있는 누런 덩어리들의 주인은 개인지, 사람인지 도통 구분이 안 된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인파에 밀려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인도 여행의 첫 관문 델리, '여행에 대한 기대와 그 현실 사이(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한순간도 머물기 싫은 도시로 기억하리라.


태그:#인도, #인도여행, #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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