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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4일 따분한 평일 오후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창덕궁후원을 들른 후 다음 목적지로 부암동 백사실계곡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자니 해는 이미 늘어질대로 늘어져 있고, 그대로 돌아가자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홍제개미마을을 갈까? 북촌한옥마을을 갈까? 어둠이 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머릿속으로 체크하며 동선을 그려보는데 함께한 여행작가님이 계동을 추천해준다. 다년간의 여행경력으로 내공이 축적된 분의 추천이기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서울의 북쪽으로는 아름다운 길이 참 많다. 낭만적인 정동길, 구수한 향기가 전해지는 인사동길, 맛과 멋이 있는 삼청동길 등은 이미 많이 들어서 익숙하다. 서울 북촌에 자리잡은 계동길은 옛 추억을 떠올리는 모습들이 남아 있어 70~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또한 장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많은 공방들이 모여있어 더욱 매력적인 길이다. 오늘 계동길을 따라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북촌문화센터
 북촌문화센터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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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길을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난 곳은 북촌문화센터이다. 간판만 보였을 때는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더니, 건물 자체는 한옥으로 되어있어 한국적인 멋이 묻어난다. 이 건물은 조선말기 탁지부 재무관을 지낸 민형기의 자택을 복원한 한옥으로 1900년 이전에 지어진 북촌의 전형적인 양반집이다.

대문을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북촌가게가 있다. 1평 남짓한 아주 작은 공간에서는 북촌의 장인과 전통공방 16곳의 운영자가 직접 만든 'made in bukchon' 제품이 전시·판매되고 있다.

북촌문화센터의 한옥건물은 ㄷ자형 문간채, ㄱ자형 사랑채, ㄱ자형 안채로 이어지는데, 이 중 행랑채에는 북촌홍보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한옥의 특징뿐만 아니라 북촌의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북촌을 걷기 전에 이곳을 먼저 찾는다면 좀 더 깊이 북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올 때 숨은북촌찾기 안내책자를 챙기는 것 잊지말자. 테마별로 즐길 수 있는 북촌에 대한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다.

안채에는 한지공예와 우리술빚기등 다양한 체험공간과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다. 한지공예는 목요일만 진행되며, 우리술빚기체험은 12월 16일까지 계속된다. 몇몇분들이 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룩을 빚고 있다. 정성스레 빚어진 누룩을 독에 넣고 일주일 발효를 시키면 맛깔스런 우리술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계동길, 최소아과의원의 옛건물
 계동길, 최소아과의원의 옛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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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를 나와 길을 따라 걷다보니 시대극에서나 나올 법한 소아과건물이 눈에 띈다. 지극히 옛스러운 간판과 빨간 벽돌건물이 어릴 적 동생이 팔이 잘 빠져 다니던 병원과 닮아있어 옛 추억에 잠겨본다. 실제로 79세 할아버지원장님이 진료도 한다고 하니 왠지 더욱 흥미로워진다. 최소아과의원, 그 원장님의 성씨가 최씨일까?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건물에 병원을 짓고 많은 어린이들을 봐왔을지 사뭇 궁금하다.

서울게스트하우스
 서울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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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게스트하우스가 궁금했었다. 서울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향기가 전해지는 종로쪽에는 많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서울게스트하우스 목판이 걸린 골목을 따라 들어가본다.

대문앞에서부터 풍기는 분위기가 낯설지가 않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어릴 적 우리집은 한옥이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거의 20년을 한옥살이를 했다. 할머니는 손수 마당에 있는 텃밭을 가꾸셨고, 할아버지는 취미삼아 뚝딱뚝딱 리모델링에 열을 올리셨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워 "왜 우리는 한옥에서 살아야하냐?"고 부모님께 투정을 부리기도 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젠 한옥이 그리워진다. 보일러가 없어 물도 끓여 사용해야하고, 화장실도 대문옆이라 밤에는 화장실 가기가 무서웠다.

할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욕실에서 샤워를 할라치면 수많은 귀뚜라미와 눈치전쟁을 해야했다. 너무 불편한 한옥생활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루에 앉아 온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할머니와 콩나물을 다듬던 기억, 학교 앞에서 사온 병아리들과 마당에서 뛰놀던 기억, 아빠가 잡아온 도둑고양이가 나무를 박박 긁어대던 기억, 무화과가 열릴 때면 항상 따서 먹이려던 할아버지를 귀찮아하던 기억 등 소소한 즐거움으로 새겨진 소중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한테 허락을 구하고 조용히 하우스를 둘러본다. 화장실도 같이 써야하고, 구비된 용품도 없어서 외국인들은 생활이 불편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곳의 문화를 알고가야 진정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어디서나 흔한 호텔보다는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옥을 베이스캠프로 선택하는 게 좋을 것이다. 며칠간의 불편함쯤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면 말이다.

또한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들은 내국인에게도 허락이 된다. 한옥생활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조용한 한옥에서의 하룻밤을 추천한다. 명색이 한국인인데, 한옥을 모르면 쓰나?

집을 나서는데 마루밑에 자리잡고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는 삽살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꿈쩍을 하지 않을 정도로 숙면중이다. 요녀석!!! 자기 몸에 딱 맞는 잠자리를 찾았구나.

계동에는 소개한 서울게스트하우스 외에도 골목마다 다양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시설에 따라 약간의 가격대 차이는 있으니 충분한 정보조사를 한 후 선택을 하는 것이 좋다.

추억의 불량식품과 게임기
 추억의 불량식품과 게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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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우연히 오래된 문방구 앞에 씌여진 문구를 발견한다. '아폴로' 어릴 적 그렇게도 입에 달고 다니던 추억의 불량식품. 쪽쪽 뽑아먹는 재미가 좋아서 하나씩 하나씩 빨아먹다가 금세 지겨워져서 통째로 넣고 우적우적 씹어 비닐껍데기만 뱉어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눈빛이 반짝반짝. 어느샌가 나는 20년 전의 동심으로 돌아가 100원짜리 동전을 손에 쥔 아이처럼 서슴없이 문방구에 들어선다.

'아폴로,아폴로' 내 눈은 불량식품들을 샅샅히 훑고 있다. 없다!!

"아주머니! 아폴로는 어디있어요?"
"거기 있잖아요."

아폴로라는 이름만 찾고 있던 나는 달나라라는 이름으로 둔갑되어진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맛은 변하지 않았기를 기대하며 두 개를 손에 쥐어들고 계산을 한다. 200원. 가격은 여전히 착하다. 부푼 마음으로 봉지를 뜯고 한개를 입에 물고 쪽 빨아보지만 바로 실망하고만다. 예전 그 맛이 아니다. 겉비닐은 너무 딱딱하다.

'그래~ 지난 세월이 얼만데, 괜한 기대를 한 거야.'

같이 간 동생이 아이들이나 하는 게임기 앞에 앉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을 웃는다.기계는 꺼져있다. 그냥 보여지기 위한 전시품이 되고 말았다.

이태리면사무소
 이태리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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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면사무소. 주인장의 센스가 돋보이는 이름이다. 아담한 파스타집에 계동골목길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 붙었다. 이태리 면사무소….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며 웃음을 짓는다. 그 이름만으로도 엔돌핀이 돋게 하는 가게다. 음식의 맛은 어떨지 궁금해지지만,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음을 기약한다.

꼬삔이공방
 꼬삔이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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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진열된 목돌이가 너무 탐나서 걸음을 멈춘다. 수다스러운 여자 넷이서 '이게 이쁘다. 저게 이쁘다'하며 아이쇼핑을 즐기다 뭐에 홀린 것 마냥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꼬삔이 공방으로 이름 붙여진 아담한 가게 안에서는 작가가 직접 제작한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판매되고 있다.

작은 소품에서부터 실용적인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것저것 탐나는 것들이 많지만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제품이라 가격대는 높은 편이다. 너무나 친절한 주인장 덕분에 뭔가 하나를 꼭 사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쉽게 안녕을 고한다. 바라만 보고 가져올 수 없었던 종이로 손수 만들었다는 그 여행 가방이 자꾸 눈에 밟힌다.

계동커피
 계동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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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커피향보다는 진한 카레향이 풍길 것 같은 인디아스러운 커피숍이 자리잡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도 신기한지 머리를 맞대고 유리창 너머로 가게안을 훔쳐보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온다. 멀찌감치 서서 셔터만 누르던 나도 다가가 가게안을 훔쳐본다. 페인트가 벗겨져 얼룩덜룩한 벽에 가득 수놓인 많은 사람들의 흔적, 집에 있는 것들을 그냥 가져다놓은 것처럼 보이는 의자며 탁자, 꾸밈이라고는 전혀 없어보이는 내부 공간이 특색있다.

만듦새
 만듦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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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걷다보니 노란색 벽이 인상적인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겉보기엔 커피숍으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금속공예공방이다. 만듦새라는 이름이 그것을 말해준다. 톱을 연상시키는 간판이 기발하다. 다양한 금속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액세서리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도 가능하다. 직접 만든 액세서리 한 개 정도는 가져보는 것도 매력적일 것 같다.

디아갤러리
 디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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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핸드폰들이 벽에 붙어있지?' 특이한 광경에 걸음을 멈춘다. 디아갤러리라는 디지털아트 갤러리다. 나름 얼리어답터의 기질을 갖고 있는 나에게 꽤 흥미로운 장소이다. 들어가볼까했지만 '잠시 외출중입니다'라는 문구만이 문을 지키고 있어서 다음을 기약해본다.

중앙중·고등학교
 중앙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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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길의 끄트머리에 섰다. 길을 걸으며 하교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어디서 이렇게 쏟아져나오나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계동길의 끝에는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유명한 중앙중·고등학교가 있다. 고풍스러운 외관이 한눈에 발길을 잡아끈다. 학교 안을 구경하고 싶어서 수위아저씨께 여쭤보니 오늘은 개방이 되지 않는단다.

이곳은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만 개방이 된다. 1·3·5주 토요일에는 오후1시부터 6시, 2·4주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는 오전9시부터 6시까지 개방되니 내부를 둘러보고 싶은 사람은 날짜와 시간을 맞춰서 가야한다.

한류열풍의 주역 배용준이 출연했던 겨울연가가 촬영됐던 곳이라서인지 학교 앞 문방구에는 한류스타들의 브로마이드가 깔려있다. 학창시절 좋아하는 스타의 브로마이드를 하나 갖기 위해 학교 앞 문방구를 줄기차게 들락거렸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추억에 잠겨본다.

계동길은 안국역 3번출구로 나와 첫번째 블럭에서 좌회전을 하면 길을 쭉 따라가며 만날 수 있다. 옛 추억이 그리울 때 가까운 서울 계동길을 걸어보자. 타임머신을 탄 듯 새록새록 펼쳐지는 기억들이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140117929869



태그:#서울나들이, #계동, #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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