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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문득 라디오의 뉴스 꼭지 하나가 10년 전 군대에서의 아름답지 못한 기억 하나를 상기 시켰다. 바로 2010 서울 G20 정상회의를 맞아 9일 밤 행사장인 코엑스 주위를 대청소했다는 뉴스였다.

 

하라고 해서 했습니다, 아스팔트 걸레질

 

내가 떠올린 건 2000년 6·15정상회담 당시 비무장지대(DMZ) 내 1번 도로를 청소하던 기억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1번 국도로 개성을 지나 평양으로 간다는 소식에 그 지역 DMZ를 책임지고 있던 우리 수색중대는 한 달 내내 1번 국도와 그 주변을 정리해야 했다. 대통령이 지나가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대성동 마을 사람들 대신 모판을 정리했고, 길가의 우거진 수풀을 정리했으며, 아스팔트 위의 조그만 돌멩이들도 눈에 불을 켜고 제거했다. 

 

그 중 백미는 2000년 6월 14일 아침에 벌어졌다.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나오는 소방차를 따라가라는 행정보급관의 이상한 명령.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소방차를 따라 판문점 앞까지 이동했고, 그곳에서 대걸레 한 자루씩을 배부 받았다. 소방차에 대걸레? 에이 설마.

 

그러나 설마는 '역시'로 바뀌었고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는 기어이 내게 아스팔트를 대걸레로 닦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물을 뿌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소방차와 그 뒤로 소총을 짊어진 채 대걸레질하는 군인들. 말로만 듣던 전설이 지금 바로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게다. 아스팔트의 걸레질. 지금 떠올려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 10년 전 군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아니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가 했던 행동을 보자.

 

한밤중에 철체 펜스로 방호벽을 치고 청소용 살수차로 반짝반짝 아스팔트 청소를 하는 건 약과다. 서대문구의 음식물 쓰레기 배출 금지(반발로 철회하기는 했다), 삼성역 지하철 무정차 통과, G20 포스터 낙서 시민 불법구금, 택시기사 세면 및 두발 상태 감시 등 G20 회의가 다가올수록 늘어가는 정부의 기상천외한 발상들. G20이 뭐기에 정부는 이리도 요란법석을 떠는가? 1년에 두 번씩이나 열리는 회의에, 돌아가며 하는 의장국 지위인데....

 

왜 G20은 국민을 G20 전문가로 만들지 못하나

 

오랜만에 서울 화곡동 본가에 들르니 어머니께서 대뜸 물으신다. G20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어머니는 왠지 꺼림칙한데 아버지가 보시는 <KBS>와 <조선일보>는 마냥 G20 찬양일색이라 나의 의견이 궁금하신 듯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정부에서 오버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못미더우신 어머니.

 

문제는 어머니의 질문에 나 역시 뚜렷한 답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틈틈이 시사 잡지도 보고 G20에 대해서는 할 말도 많다고 생각하던 나였지만 막상 설명을 하려니 G20에 어떤 나라가 포함되고 G20에서 어떤 논의가 진행되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G20이란 G7의 연장체로 꽤 산다는 나라가 포함됐고,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 세계적인 경제 현안을 이야기하는 회의라는 사실이 내가 가진 지식의 전부였다. 덧붙이자면 이번엔 환율 문제가 가장 큰 이슈라는 정도.

 

그렇다면 과연 일반 국민들은 G20을 잘 알고 있을까? 정부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주위 사람들을 보건대 매우 회의적이다. '황우석 파동'은 국민을 줄기세포 전문가로, '미국산 쇠고기 파동'은 국민을 광우병 전문가로, '국민동생 김연아'는 국민을 피겨스케이팅 전문가로 만들었지만 G20은 그 어떤 지식도 신장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개국 정상이 서울에서 회담을 갖는 것이 일반 국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비록 정부는 G20의 경제적 효과가 적어도 21조, 많게는 450조 원쯤 된다고 하지만 결국 그 효과는 '국가 이미지가 좋아져 수출이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아닌가. '국익'이란 말도 애매한데 거기다가 더 불명확한 '경제적 효과'란다.

 

G20 정상회담의 의제가 우리와 밀접한 관련만 있어도 좀 나으련만 불행히도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의 금융시장 경향과 우리 정부의 방향은 정반대에 서 있다. 그러니 정부는 G20의 내용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터, 결국 G20이 여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것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MB 정부 동안 올림픽이 열리지 않아 다행이다

 

현 정부의 G20 정상회의 챙기는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 군사정부가 88올림픽을 챙기던 그 때가 떠오른다. 외국 손님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며 판자촌이 강제철거되고, 노점상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등 많은 국민들의 인권 탄압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던 그 시절.

 

우리는 알고 있다. 정치적 정당성을 잃은 군사정부가 국민들을 홀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유치해 온 국제적 행사가 바로 올림픽이었다는 걸. 그럼에도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짧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았고 국민들 역시 올림픽을 치르면서 자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많은 국민들이 '세계 속의 한국'을 실감하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반면 현 정부가 거의 올인하다시피 하는 G20 정상회담은 올림픽과 같은 위상을 갖지 못한다. 정부야 그만큼 중요하다고 '오버'의 극치를 보이고 있지만 그 규모나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는 올림픽과 비교했을 때 미미하다.

 

외국인이라곤 각 국의 정상들과 그 수행원이 전부이며 그 기간 역시 기껏해야 이틀이지 않은가. 게다가 회의 내용은 너무 현학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우며 정부는 철통 같은 보안으로 국민들의 접근조차 불허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니 국민들이 G20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밖에.

 

오히려 이러한 현실에도 정부가 이렇게 난리법석인 것을 보면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정치적 저의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자신들의 약한 정체성을 커버하기 위해 오버를 한 군사정부처럼, 4대강이다, 대포폰이다 하면서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는 현 정부가 G20을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현재 정부는 G20의 보안을 위해 갑호비상을 내려 경찰력의 40%를 서울로 집중 시키고 있다. 지방의 치안부재를 무릅쓰고서라도 G20의 성공적인 개최에 열을 올리는 정부의 노력은 참으로 가상하나 부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기 바란다. 결국 80년대 말 90년대 초 경기도 화성에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간 것은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경찰들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나저나 MB 취임 기간 동안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다.


태그:#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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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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