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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일찍 대문 밖을 나서다가 텃밭에 배추, 상추 잎사귀에 찬 서리가 내려앉은 것을 보았다. 길옆에 세워둔 자동차 지붕 위에도 서리가 하얗게 앉았고, 차 앞 유리에는 성에가 두껍게 끼어 있어 계절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산자락 아래 있는 동네라 계절의 작은 행보도 눈에 띈다.

 

엊그제만 해도 창가에 비쳐드는 늦가을 햇살이 부드러웠건만 오늘은 창 밖에 부는 바람소리가 향방을 잃은 듯 거칠게 나부낀다. 길 잃은 바람이 미친 듯 긴 머리 풀어헤치고 휘이잉 휘잉~휘몰아친다. 그 바람에 밖에서 우당탕 플라스틱 통이 뒹구는 소리가 요란하다.

 

바람 부는 날도 따뜻한 날도 이 하루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누구나 선물 받기를 좋아한다. 누군가 마음 깃든 작은 선물하나 줄 때면 거저 기분이 좋다. 받은 선물 꺼내보고 또 꺼내보면서 선물을 준 사람을 생각한다. 하나님이 주신 '하루'라는 선물은 밤이라는 포장지에 잘 싸여서 내게로 온다. 선물이 든 검은 포장지를 벗기면 새벽이 열린다. 오늘이라는 이 하루, 이 선물. 이 하루가 감사하다. 하루 종일 무슨 일인가 치중하다가도 문득 문득 이 귀한 선물을 들여다보고 또 보면 감사가 샘솟는다. 우리가 언제나 이렇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을 기쁨과 감사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린 대부분 오늘 이 하루가, 나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산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로 유명한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물여덟 살에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다. 영하 50도나 되는 추운 겨울날 형장으로 끌려간다. 형장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고 한 기둥에 세 사람씩 묶었다. 그는 세 번째 기둥의 가운데에 묶여졌다. 사형집행 예정시간은 딱 5분 남았다는 것을 안 도스토예프스키는 남은 5분의 시간을 어떻게 쓸까 생각해 보았다. 형장에 같이 끌려온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2분, 오늘까지 살아온 생활과 생각을 정리하는데 2분을 쓰기로 했다. 남은 1분은 눈  앞에 보이는 자연을 한 번 둘러보는데 쓰기로 했다.

 

그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최후의 키스를 하고 이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려는데 문득 3분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28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헛되게 느껴졌다. 다시 살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지만 돌이킬 수가 없었다. 그때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가슴이 오그라드는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바로 그 순간, 한 병사가 흰 손수건을 흔들며 달려왔다.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났고 거기서 인생의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과 사색을 하게 되었다. 일생 동안 그는 사형집행 마지막 5분, 그 절실했던 시간을 생각하며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았다. 불후의 명작들은 거기서 나오지 않았을까.

 

빠삐용(영화 <빠삐용>)은 절해고도의 감옥에서 어느 날 밤 꿈을 꾼다. 그가 심판대 앞에 서서 자신은 누명을 썼노라고 항변하며 무죄를 주장한다. 그러자 심판장은 냉정한 목소리로 빠비용에게 말한다. "그대 인생을 허비한 죄"하며 유죄를 선언한다. 빠삐용은 그 대목에서 아무런 항변을 하지 못한다.

 

어려서는 얼른 얼른 자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언제 얼마만큼 자랄까 발돋움했고, 사춘기엔 오히려 어른들의 세계에 환상이 깨어졌고, 한 땐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했다. 자아의 껍질 속에 숨어들었다. 20~30대엔 혼돈이었고 견딤이었다. 하루의 소중함과 감사를 느낄 만한 눈이 없었다.

 

요즘은 가끔 오래전의 어떤 기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문득 놀라곤 한다. 아~시간이란 뭘까. 고1 땐가 누군가 내게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나는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의미로 '작가!'고 대답했다. 문득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며 경악했다.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나는 아주 멀리 와 있다. 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살아갈수록 시간이 얼마나 잘 지나가는지, 활시위를 벗어난 활처럼 과녁을 향해 달려간다. 어린 아이 적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한 인식이다. 하루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

 

이 나이 되고 보니 주어진 하루 하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오늘 이 하루가 기적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다. 깊은 밤 잠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뜰 때, 내게 주어진 하루가 시작된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잠이 들 때 우리는 죽음을 연습하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일어나면서 부활을 경험한다. 삶 속에서 삶과 죽음이 함께 숨쉰다. 간밤에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다시 이 아침에 깨어 일어난 것이 어찌 기적이 아니랴.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당연시 하고 살아간다. 자고 깨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 이 하루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는지 알지 못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는 찰나보다 더 짧으면서도 아주 긴 시간이다. 얼마나 빠른지 시간의 흐름이, 시간의 지문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 1초, 단 1분, 5분이 운명을 가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버나드 쇼의 묘비명) 이 말은 살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하루는 우리 생애의 집약이며 하루가 모여서 일생이 된다. 내게 주신 선물, 이 하루를 어떻게 쓸 것인가. 사랑과 감사로, 겸손하게, 아름답게 사용하자.


태그:#선물,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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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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