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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구루루 ------."

 

낙엽 구르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소리에 마음이 처연해진다. 세상에 홀로라는 생각이 나락의 끝으로 추락하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에 스며드는 외로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바람에 굴러가는 낙엽의 소리가 마음을 더욱 더 애잔하게 만든다. 뜨거운 열정으로 넘치던 여름이 엊그제였는데, 실감하기 어렵다.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낙엽의 계절 한 가운데에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텅 빈 가슴을 주체하기 어렵다.

 

종남산 송광사.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근교의 산사를 찾았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산사에도 가을이 깊이 내려앉아 있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종루에도 가을이 넘쳐난다. 동종과 목어, 그리고 운판과 북이 삼라만상의 생명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준다. 영혼과 영혼에 공명되는 울림들이 생명의 기운을 왕성하게 한다. 가을의 한 가운데에서 종루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왠지 그것도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위한 울림이고 누구를 위한 메아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소리에도 허전함이 진하게 배어 있다.

 

맑은 물이 샘솟고 있는 약수에 시선이 닿는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목마른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기 위하여 쉼 없이 솟고 있는 약수가 아름답다.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도 욕심내지 않고 오직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사람들 모두 약수처럼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이 바람인 세상에서 무슨 집착을 그리도 많이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놓아버리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 그것을 놓지 못해서 갖은 고통을 감수한다. 알 수 없는 것이 욕심이다.

 

약수 앞의 작은 동산에는 나무로 깎아놓은 목상들이 서 있다. 관세음보살상도 있고, 여인의 상도 있다. 미소를 띠고 있는 온화한 표정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상이란 바라는 마음의 고착된 형상일 뿐이다. 그것에서 벗어나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상의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깨달음은 모두 다 허상일 뿐이다. 원래 모습이 없는데, 상에 매달려 있게 되면 그 모든 것이 거짓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본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구절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벌 나비들은 꿀을 취하느라 정신이 없다. 가을이 깊어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꿀을 취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하고자 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게 되면 가을의 허전함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결국 가을을 느끼는 이 감정도 정신적인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처연한 감정을 떨쳐버릴 수는 없다. 사람이란 원래 이중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붉은 색깔이 보석처럼 빛난다. 허전함을 주체하기 어려운데, 단풍은 어찌 저리도 곱게 빛난단 말인가? 텅 빈 마음을 채워주지도 못하는 색깔이어서 더욱 더 공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붉은 단풍 이파리가 맑으면 맑을수록 마음은 더욱 더 공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란 은행 이파리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노란 색깔과 붉은 색깔이 서로 어우러져 가을 세상을 더욱 더 곱게 치장하고 있다. 치장된 가을에 서 있는 나 자신도 가을 색깔에 곱게 물들여지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우주의 모든 기운을 들이마신다. 오묘한 우주의 기를 내 안에 깊이 흡입한다. 세포 하나하나에 삼라만상의 정기를 빼곡하게 담아본다. 눈을 감고 우주의 기운을 내 안에 깊이 들이마시게 되니, 정신이 쇄락해진다. 정신이 맑아진다. 잠자고 있는 내 안의 신성을 깨워내는 것 같다. 불뚝불뚝 일어나는 힘을 온 몸으로 감지할 수 있다. 텅 비어 있던 마음이 알 수 없는 기운으로 채워지니, 가뿐해진다. 날아갈 것 같다. 파란 가을 하늘 위로 자유롭게 날아오를 것 같다.

 

그리운 사람.

산중 다원에 앉아 따끈한 쌍화탕을 마신다. 가을의 곱게 내려앉은 다원에는 손님이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탕을 바라보면서 음미한다. 쌍화탕에서 배어나는 한약냄새가 감미롭다. 냄새와 함께 나를 유혹하는 이는 바로 그리운 사람이다. 보고 싶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전화하면 되는 일이고, 달려가서 만나면 되는 일이다. 가을이 처연하고 가슴이 텅 비어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쌍화탕 한 모금을 혀 위에 굴리면서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春城>


태그:#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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