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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이소, 유기농 국화차 한잔하고 가이소!"

'2010 안동서후봉정사국화대향연' 축제장의 국화차 시음부스, 아주머니가 생활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국화향 물씬한 맑고 노란 국화차 한잔을 권한다.

유기농 국화 시음장에 관광객들이 제품별로 맛을 보고 있다
▲ 국화차 시음회 유기농 국화 시음장에 관광객들이 제품별로 맛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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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 군데군데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판을 끼고 국화꽃 나란한 도로를 따라 천년고찰 안동의 봉정사를 찾아 길을 나섰다. 매년 이맘때면 봉정사 주변으로 국화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2010 안동서후봉정사국화대향연'이란다. 주변 사람들 말이 올해는 국화꽃을 보기가 힘들다고 해서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국화꽃으로 유명한 봉정사로 향했다.

전국적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대형축제들도 있지만 작은 면단위에서 지역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의 특산물을 홍보하는 작지만 제법 알찬 축제들도 있다. 안동에는 서후봉정사국화축제와 안동학가산마축제가 그런 류에 속한다고 하겠다.

면단위 작은 축제는 농민이 직접 생산한 지역특산물이 주류를 이룬다
▲ '2010 안동서후봉정사국화대향연' 면단위 작은 축제는 농민이 직접 생산한 지역특산물이 주류를 이룬다
ⓒ 권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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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국화축제는 지역단위 소규모 행사라 주민들이 직접 놓아 생산한 국화를 선별하고 가공해 관광객에게 선보여 홍보하고 판매하는 소박함과 정겨움이 묻어나는 마을축제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봉정사를 다녀간 후 유명해진 봉정사 국화는 가을이 되면 국화생산지인 서후면 태장리 일대를 온통 노란 빛으로 물들이고 진한 향기로 관광객들을 사로잡는다. 만발한 국화꽃의 흐드러진 풍경은 전국의 사진동호회 회원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예년 같으면 벌써 피어야 할 국화가 아직 꽃망울만 맺고 있다
▲ 서리맞은 국화 예년 같으면 벌써 피어야 할 국화가 아직 꽃망울만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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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후봉정사 국화차는 기후조건과 토질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 국화보다 맛과 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봉정사 인근 암자에 살던 한 스님이 만들어 주민 몇몇과 나누어 마시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처음엔 3,000제곱미터(1,000평)의 작은 면적으로 시작해 지금은 재배농가 21가구에 10ha의 넓은 면적에서 형형색색의 국화가 생산되고 있다. 전국에서 국화차 생산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 이곳은 전국 매출 10억원 중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국화꽃 흉작에 농심은 착찹하다

이런 영향으로 매년 국화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늘면서 안동시에서는 주민들과 함께 봉정사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과 연계한 도시민 유치사업의 일환으로 축제를 지원, 올해로 3회째를 맞고 있는 축제장. 맑고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 국화꽂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자 국화차 생산업체들이 저마다 하나씩 자리를 마련해 시음회를 열고 분주하다.

"어서 오이소 저희 제품은 유기농재배라서 향이 진하고 맛이 탁월합니더. 다른 곳에서도 드셔보시고 비교해 주이소!"하며 저마다 자신들의 국화차를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다. 축제장 한 켠에서는 연인들이 국화꽃을 배경삼아 사진기에 추억을 담느라 바쁘다.

많지 않은 국화밭에서 가족, 연인들이 추억을 담고 있다
▲ 국화밭 많지 않은 국화밭에서 가족, 연인들이 추억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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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 같으면 행사장 인근 밭에는 국화꽃이 만발해 온통 노란 국화밭들이 손님을 맞았다. 인근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수건을 감싼 모자를 쓰고 풍성한 꽃을 따며 늘어놓는 입담으로 국화밭을 웃음으로 채웠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축제장 주변으로 국화가 보이질 않았다. 듬성듬성 핀 꽃과 피우지 못하고 꽃망울만 맺힌 밭들뿐이었다. 축제는 국화축제가 아니라 국화차 축제가 되어버린 듯하다.

듬성듬성 핀 국화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듬성듬성 핀 국화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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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추진위원장은 "금년에는 연작으로 병이 올까봐 기존 재배지를 옮겼기 때문에 축제장 인근에서는 많지 않다. 예년보다 일찍 서리가 연일 내려 국화가 피지도 못하고 죽게 됐으니 일 년 농사를 망쳐 재배농가들은 한숨이 깊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 26일 이후 한파주의보와 함께 내린 서리로 핀 국화는 물러버렸고 몽우리는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말라 버렸다고 한다. 그나마 축제장을 장식한 국화꽃은 일찍 심어 놓았던 일부 국화로 채웠다고.

어느 한 국화차 부스에서는 "국화 없이 행사를 진행하게 돼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뿐입니다. 따뜻한 국화차 한 잔에 마음 녹이고 가이소"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축제장을 빠져나오는 길, 울긋불긋 약이 오르기 시작한 단풍이 좀 전에 얻어 마신 국화향 만큼이나 진하지만 농부의 아들로 시골에서 나고 자란 필자로서는 왠지 마음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화축제, #이상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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