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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점점 깊어가면서 강원도 설악산에도 단풍이 찾아들었다. 매년 단풍구경을 가지는 않지만 올해 단풍은 어느 때보다 예쁘다고들 하니, 놓칠 수가 없어 친구와 함께 설악산을 찾았다. 친구도 나도 자주 산행을 하지는 않으니 설악산의 꼭대기인 대청봉까지는 언강생심, 아예 생각을 안하고 그나마 덜 힘들면서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는 남설악 흘림골로 향했다.

흘림골이란 삼림이 빼곡하고 숲이 우거져 늘 흐린 듯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흘림골이 좋은 이유는 산행길이 6㎞ 정도로 그리 짧지 않으면서도, 초입길의 오르막을 빼곤 전체 코스의 대부분이 줄곧 내리막과 평지라 부담이 없다기 때문. 이렇게 쉽게 설악의 절경과 곱게 물든 단풍을 만난다는 것이 설악산의 산신령님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한계령을 넘어가니 갑자기 주변 산들이 옷을 화려하게 갈아입고 있다.
 한계령을 넘어가니 갑자기 주변 산들이 옷을 화려하게 갈아입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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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을 타고 한계령(1004m)을 넘는 순간, 초록색이었던 주변의 산들이 갑자기 화려한 단풍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맞이했다. 한계령 휴게소를 넘어 오색약수터까지 간 후, 주변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산채 비빔밥을 먹었다. 겉보기엔 거칠고 투박한 나물들이었지만, 밥과 함께 버무려 한 입 먹으니 강원도 산중의 깊은 맛이 내 입 안으로 들어온 듯했다.

밥을 먹은 식당 주변에 무료 주차를 하고 한계령 휴게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설악산 흘림골(770m)에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인데, 우리는 한계령 휴게소에서 내리막 찻길을 20여분 걸어가는 것을 택했다.

이렇게 한계령을 넘는 국도를 내려와 흘림골과 주전골을 거쳐서 오색약수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지난 1985년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됐던 흘림골은 무려 20년 만인 2004년 가을에 다시 문을 열었지만, 2006년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2년 만에 다시 문을 닫아 걸고 말았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흘림골 초입까지 걸어 내려가는 길 주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흘림골 초입까지 걸어 내려가는 길 주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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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한계령 휴게소에서 구불구불한 찻길을 따라 걸어내려오다 본 주변 설악산의 산세가 참으로 웅장하고 장대했다. 저멀리 구름과 안개사이의 산등성이들이 신비롭게 보이고 가까이에 보이는 산꼭대기의 기암괴석들이 자꾸 걸음을 멈추게 한다. 내리막길 도로를 내려오는 차량들도 속도를 늦추고 창문을 연 채 사진을 찍으며 감탄한다. 설악산은 골산(骨山)이라더니 정말 남성미가 철철 넘친다. 흘림골에 산행 오시는 분들에게 한계령 내리막길도 꼭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무 데크길을 따라 가을 설악산의 깊은 품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무 데크길을 따라 가을 설악산의 깊은 품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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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휩싸인 거대한 암봉들이 자꾸만 걸음을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게 한다.
 안개에 휩싸인 거대한 암봉들이 자꾸만 걸음을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게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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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설악의 흘림골은 설악산 대청봉의 남쪽 골짜기이면서 동시에 점봉산의 북쪽 골짜기를 이루는 곳이다. 그래서 이른바 골산(骨山)인 설악산의 웅장한 아름다움과 육산(肉山)인 점봉산의 부드러운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 계곡의 단풍은 외설악이나 내설악의 단풍명소에 결코 뒤지지 않는단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오르막 초입길을 오르다보면 흘림골의 최고 조망대이자 신선이 오른다는 등선대(登仙臺)가 나타난다. 보기만해도 아찔한 등선대를 올르니, 설악산 주변에 우람하게 솟은 암봉과 안개에 휩싸여 마치 멋스러운 동양화같은 설악의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계곡의 예쁜 단풍 보는 것도 즐거운데 뭐라 표현하기 힘든 기암괴석의 암봉들을 대하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친구도 나도 한동안 입만 벌린 채 풍경을 쳐다보기만 했다.

사진과 글로는 도저히 묘사하기 힘든 설악산의 풍경, 거대한 동양화가 펼쳐져 있는 것 같다.
 사진과 글로는 도저히 묘사하기 힘든 설악산의 풍경, 거대한 동양화가 펼쳐져 있는 것 같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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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지나가자 설악산에 살던 토박이인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며 짖는데 그 소리가 메아리를 치며 신묘하게 들려온다.
 사람들이 지나가자 설악산에 살던 토박이인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며 짖는데 그 소리가 메아리를 치며 신묘하게 들려온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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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골에는 수백 살 먹은 아름드리 전나무와 굴참나무, 단풍나무, 주목들이 뒤섞여 원시림속 같다. 묵직하고 커다란 바위들에는 이불처럼 푸른 이끼들이 덮여 있다. 흘림골 최고 명소로 꼽히는 여심폭포까지는 오르막이지만 숨은 차도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자꾸만 뒤를 쳐다보길래 나도 한 번 돌아보았더니 '칠형제봉'이라는 우람한 바위산이 그림 같이 서있다.

교과서나 미술 전시회 때 보았던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들을 생생하게 마주하니, 장딴지가 잠시 마취되었는지 힘든 줄도 모르고 걷게 된다. 산위로 오를수록 어느샌가 까마귀들이 하나 둘씩 주위를 맴돌며 특유의 새소리를 낸다. 한라산 정상부근에서도 까마귀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산꼭대기를 좋아하는가보다. 깊은 산중에서 까마귀 지저귀는 소리가 메아리를 타고 멀리까지 퍼지니, 산신령의 메신저 같기도 하고 신묘하게 들려온다.

흘림골을 다 내려오면 용소폭포길과 함께 오색약수 마을까지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의 주전골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흘림골을 다 내려오면 용소폭포길과 함께 오색약수 마을까지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의 주전골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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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골에선 여심폭포, 십이폭포, 용소폭포등을 만날 수 있는데 폭포는 아담해도 물 흐르는 소리가 속시원하다.
 흘림골에선 여심폭포, 십이폭포, 용소폭포등을 만날 수 있는데 폭포는 아담해도 물 흐르는 소리가 속시원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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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대에서 오색약수까지의 5㎞ 남짓 산길은 거의 내리막길로 부담이 없이 걸을 수 있다. 계곡을 따라 곱고 예쁜 단풍이 물들어 있고, 크고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 계곡의 굽이를 하나씩 돌 때마다 달라지는 단풍의 모습과 색감에 사진을 찍느라 산행이 진도가 안 나간다. 산행하는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카메라를 주고 받으며 사진을 찍어준다. 나와 친구도 어떤 외국말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멀리 홍콩에서 설악산을 보러 왔단다. 설악산의 가을풍경은 홍콩에까지 소문이 났나보다.    

용소폭포를 기점으로 길은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이름이 바뀐다. 주전골은 계곡과 함께 단풍이 잘 어울리는 평탄한 길로 주전(鑄錢)이란 이름은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 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옛날 이 계곡에서 승려로 위장한 도둑 무리들이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단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계곡에선 물이 흐르고 있었다. 땀도 식힐겸 계곡 물가에 앉아 쉬면서 간식도 먹고 세수를 했는데 계곡물이 마시고 싶을 정도로 참 깨끗하고 청명하여 설악산이 그대로 느껴졌다.  

다리도 아프고 몸도 지쳤지만 친구와 추억을 만들고 더욱 돈독하게 해주는 뿌듯한 가을 산행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몸도 지쳤지만 친구와 추억을 만들고 더욱 돈독하게 해주는 뿌듯한 가을 산행이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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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물이니 만큼 오색 약수터에선 아주 조금씩 물이 나오고 있다.
 귀한 물이니 만큼 오색 약수터에선 아주 조금씩 물이 나오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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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휴게소에서 걸어 내려온 지 4시간 반만에 드디어 물소리 청량한 계곡과 함께 산행의 끝을 알리는 오색약수 마을이 나타난다. 계곡 옆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길래 뭔가 하고 가보니 위 사진 속 자그마한 샘터인 오색약수터의 물을 마시고자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네랄 성분이 많아 몸에 좋다하니, 아주 조금씩 약수가 나오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줄을 서 있었다.

한동안 잊기 힘들 것 같은 설악산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몇 시간 동안이나 감상했기 때문일까. 여행기를 쓰는 지금도 다리가 퍽퍽하게 아프지만 마음은 흐뭇하고 뿌듯하기만 하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깃거리가 될 추억을 공유하고 돈독한 우정을 다질수 있어서 설악산이 더욱 고맙던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ㅇ 10월 19일날 다녀왔습니다. 이번 주말 설악산 단풍은 절정을 향해 치달을 것 같습니다.
ㅇ 오색약수마을 입구에 시외버스터미널도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좋겠습니다.



태그:#설악산, #흘림골, #단풍,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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