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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트 숙모와 댄 숙부는 서로를 미워했지만 엄격한 가톨릭 신자인 탓에 이혼은 하지 않았다. 제프리가 도착할 무렵, 두 사람은 서로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건도 더 이상 함께 쓰지 않았다. 머지않아 집안 물건은 모두 두 개씩이 되었다. 화장실 두 개, 텔레비전 두 개, 냉장고 두 개, 토스터 두 개, 가능했다면 제프리마저 둘로 나누려고 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제프리를 쪼갰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는 도트 숙모, 화요일에는 댄 숙부와 저녁을 먹는 식이었다." - <하늘을 달리는 아이>(다른 출판사 펴냄) 중에서

주인공 매니악(제프리 매기)은 3살 때 끔찍한 사고로 부모가 모두 죽는 바람에 고아가 된다. 그리하여 유일한 혈육인 삼촌 집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삼촌 부부는 앙숙처럼 지내고 있었다. 매니악은 결국 12살 때 삼촌 집에서 뛰쳐나오고 만다. 숨막힐 듯 살벌한 공기만 존재하는 삼촌의 집에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소년은 달리기 시작한다. 소년이 달리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사람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가정을 찾아서이다. 1년 후, 소년은 이 소설의 배경인, 투밀즈 '이스트엔드' 거리로 오게 되고 흑인 소녀 아만다를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백인 소년 매니악은 아만다의 집에서 그들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다.

흑인 거주 지역으로 뛰어들어간, 백인 소년

이 소설의 역사적 배경은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0년대 미국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흑인 거주 지역인 이스트엔드와 백인 거주 지역인 웨스트엔드 사이에는 절대로 화합할 수 없을 것 같은 확고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 선을 경계로 두 인종은 철저하게 분리되었으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당장 꺼져라 흰둥아. 옷 챙겨서 당장 너희 집으로 돌아가란 말이야." "이제 집에 가라 꼬마야. 백인들이 사는 데로 돌아가. 마을 잔치에 네 녀석이 끼어서는 안 돼."

"저는 여기서 살아요. 바로 저기요." 아이는 시카모어 쪽을 가리켰다. 그 남자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성이 안차지, 그렇지, 흰둥아? 점점 더 욕심이 나지. 우리가 거리에서 물을 즐기는 것조차 못 봐주는구나. 넌 우리를 신기한 춤을 추는 원숭이로 보지? 그래서 동물원 오듯 여기에 온 거잖아?" "네놈 백인들한테 돌아가. 네가 바라는 거잖아. 살던 대로 살란 말이야. 당장 꺼져. 네놈의 인종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귀가 좋지 않은 가봐, 하고 매니악은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정말로 크게, 천천히, 소리치며 다시 가리켰다. "저-는-시-카-모-어-7-2-8-번지-에-살-아-요. 정-말-로-요."

<하늘을 달리는 아이>겉그림
 <하늘을 달리는 아이>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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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소년 매니악은 흑인 소녀 아만다와 그의 가족 혹은 또 다른 흑인들이 백인인 자신과 피부가 다르다는 것을, 단지 피부가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절대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함께 어울려 살며 사람간의 온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일뿐이다. 이런지라 소년은 아만다 가족들을 사랑한다. 매니악은 흑인 거주 지역을 서슴없이 드나들며 흑인 아이들과 서슴없이 어울리는 유일한 백인소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을 축제장에서 한 흑인 노인의 이와 같은 무차별 공격을 받게 되고, 난생 처음 '사람간의 온정'과 '진정한 가족'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해준 아만다 가족을 떠나 예전처럼 떠돌게 된다. 소년은 아만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다시 사람들과 세상 속을 달리기 시작한다. 또 다른 진정한 가정을 찾아.

이런 소년에게 슬프고 어둡고 아픈 일들이 일어난다. 갈 곳 없는 소년은 엘름우드 동물원의 들소 우리에서 들소의 젖을 먹으며 들소들에 섞여 잠을 잔다. 그리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정붙일 곳을 찾아 세상과 사람들 사이를 달리고 달린다. 들소 우리 한 모퉁이에서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몰골로 죽어가던 소년은 노인 그레이슨에게 발견된다.

왕년에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운 나쁘게도 결정적인 순간에 재수 없는 공만 던지는 바람에 마이너리그에서마저 쫓겨나 잊혀져버린, 보잘 것 없이 살아가는 그레이슨과 소년은 생애 가장 따뜻하고 빛나는 나날들을 보내며 버려진 자신들의 삶을 비로소 위로받게 된다.

그레이슨과 매니악은, 집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들만의 보금자리에서 난생 처음 가장 따뜻하고 축복으로 충만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노인은 5일 후 죽게 되고, 소년은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진정한 가정을 원하며. 그리고 또 다른 엄청난 일들이 소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데….

<하늘을 달리는 아이>는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고아가 된 한 백인 소년이 진정한 가정을 찾아가는 성장과정을 그리고 있는 '제리 스피넬리'의 대표작품이다. 저자는 이 소설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뉴베리상과 보스톤 글러브-혼북상을 동시 수상했다. 또, 미국 도서관 협회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200만부 이상이 팔린 현대 고전으로 손꼽힌다.

사실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책을 읽다가 저자의 또 다른 작품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읽게됐다. 유난히 길었던 올 추석 연휴에 청소년들에게 가볍고 재미있게, 그러나 쉽게 잊혀버리지 않고 두고두고 생각날 의미 있는 소설 몇 권을 추천하고 싶었다. 저자의 또 다른 소설 <내 이름은 도둑>도 그중 하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가 유태인들을 처참하게 학살한 그 실태를 도둑이라 불리는 순진무구한 소년을 통해 들려주고 있는 소설인데, 어이없도록 처참한 현실을 독특한 유머를 섞어 들려줌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저자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력과 함께.

누군가 잘 아는 사람이 죽어 그의 빈소에 문상을 갔는데, 죽음의 의미를 아는 어른들은 모두 슬퍼하고 애통해 하지만 죽음의 의미도 모르고 부모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그 와중에도 웃고 떠들거나 늘 그랬던 것처럼 싸우거나 다투기도 한다. 그걸 봐야만 하는 어른들은 더욱 비통할 수밖에 없다.

  '제리 스피넬리(1941~)'는...
미국의 대표적인 아동작가인 저자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는 고민과 방황들을 유쾌하고 리듬감있게 묘사, 어린이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까지 즐겨 읽는 성장소설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어릴 때 꿈은 프로야구선수였단다. 하지만 16세 때 바뀐다. 자신이 쓴 미식축구에 관한 시가 지역신문에 게재되면서. 그리하여 작가를 꿈꾸며 처음에는 어른 책을 써서 여러 출판사 문을 두드리나 번번히 거절 당한다. 이 때문에 심한 좌절감에 빠지나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던 중 가족 파티에서 아이들의 깜찍발랄한 행동을 보다가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을 글로 쓰면 좋겠다고 마음 먹게 된다. 그리하여 어린이책을 쓰나 이번에도 출판사들로부터 문전박대, 하지만 결국 전세계 300만명 이상의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된다.

대표작 <하늘을 달리는 아이>로 이례적으로 뉴베리상과 보스턴 글로브 혼북상을 동시에 수상, <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로 뉴베리 아너상을 받았다. 이 두 작품 외에 <문제아> <스타걸> <돌격대장 쿠간> <블루 카드> <내 이름은 도둑>이 국내 출간되었다.
<내 이름은 도둑>이 그랬다. 소년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래서 바보, 얼간이라 불릴 정도였다. 부모형제가 나치에게 폭격당해 죽어가는 것을 고스란히 봤음에도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자신에게는 이런 부모, 이런 형제자매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바르샤바 거리와 유태인 수용소를 넘나들며 본능적으로 도둑질을 한다.

도둑이라 불리는 소년의 순진무구함이나 작가의 유머가 빛날수록 독자인 내게 전해지는 유태인 학살의 처참함과 전쟁의 피폐함은 깊게, 그리고 생생하게 와 닿았던 것이다.

<하늘을 달리는 아이>도 마찬가지. 세상 사람들은 모두 흑인과 백인은 절대 섞일 수 없다며 스스로 분리하여 대립하는데도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이 백인 소년은 두 인종 간을 넘나들며 흑인 소녀 아만다와 아만다 가족을 통해, 보잘것없는 그레이슨을 통해 사람간의 진실한 정(사랑)과 진정한 가정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고아 소년의 이런 성장과정을 특유의 유머를 섞어 들려줌으로써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독자들이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다.

소년에게,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사람에게,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르다는 것, 그것은 편견과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 나도 또 다른 누군가에는 또 다른 누구라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증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읽은 책이다. 내 아이들과 그 친구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이 소설은 진정한 가정을 찾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그리고 있다. 불행하고 가난하지만 꿈을 잃지 않는 이 소년의 현실은 인종간의 갈등을 넘어서는 진정한 인간애로 아롱 져있어서, 그늘진 사회가 반드시 슬프고 불행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특유의 해학과 기지로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표피적인 인터넷문화에만 빠져있는 우리 아이들이 꼭 읽어야 할 빼어난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의 과정을 절실하게 형상화되면서 작품 속에 번져나는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잔잔한 미소와 가슴 저린 슬픔으로 알맞게 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 오탁번 교수(고려대 사범대/국정교과서 편찬위원) 추천의 글 중에서

덧붙이는 글 | 하늘을 달리는 아이|제리 스피넬리(지은이)|김율희(옮긴이)|다른|2007-08-20|값:11,000원



하늘을 달리는 아이

제리 스피넬리 지음, 김율희 옮김, 다른(2007)


태그:#성장소설, #청소년(1318), #인종갈등, #제리 스피넬리, #다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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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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