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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끓인 추어탕에는 맛과 정성, 그리고 믿음이 담겨있다
 직접 끓인 추어탕에는 맛과 정성, 그리고 믿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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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미각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데 있다. 자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경외심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키워나갈 때 미각도 그만큼 풍부해진다. 진정한 음식은 공장이 아닌 자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궁극의 미각에 도달하는 일 또한 요원하기만 하다. 자연과 음식은 동의어라고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연의 변화에 먹을거리가 영향을 받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배춧값 폭등만 해도 일정부분 환경적인 데에 원인이 있다. 이는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4대강 유역의 채소경작지 감소도 환경적인 부분으로 본다. 잦은 비는 아열대성 기후로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열대성 기후로의 진입은 곧 우리 식문화에 중대 변화가 온다는 것과 같다. 바야흐로 자연을 모르면 음식을 알 수 없고 음식을 모르면 자연을 알 수 없게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가을이다. 이 가을의 미각으로 산에는 버섯, 바다에는 전어와 낙지 그리고 대하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륙에서는 미꾸라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렇기에 가을만 되면 꼭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추어탕 한 뚝배기 생각이 간절하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각나는 음식이 달라지는 것 또한 음식이 자연의 일부여서다.

내 어린 시절 미꾸라지는 식재료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 시절 양식미꾸라지는 듣도 보도 못했다. 강물에 밟힌 게 미꾸라지였다. 지금이야 귀하디 귀한 자연산 미꾸라지지만 잡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미꾸라지보다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잡기도 수월했던 빠가사리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돌 밑에 손을 넣어 잡은 빠가사리를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는 빠가사리탕을 끓이셨다.

푹 익힌 빠가사리를 갈아서 갖은 양념을 넣고 끓인 다음 막바지에 채 썬 깻잎을 넣었다. 그 맛이란… 지금 누군가가 최고의 추어탕과 바꿔 먹자고 한다면, 아마 백 그릇과도 바꾸지 않을 맛이었다. 빠가사리탕은 '뭍천어'와 함께 내 인생 최고의 민물요리에 등극해 있을 정도이다.

뭍천어라는 말의 뜻은 육지란 뜻의 '뭍'과 내천(川) 그리고 물고기어(魚)자가 결합된 말이다. 뭍천어가 발음하기 좋게 '무천에', '물천어', '물천에' '물처네' 등으로 불러지게 되었다. 냇가는 본디 육지에 있으므로 뭍은 굳이 쓸 필요가 없는데 쓴 이유는 바닷물고기와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추론된다. 따라서 뭍천어는 피라미같은 민물고기를 두툼한 무와 함께 끓인 탕으로 요즘의 매운탕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강의 은혜를 입으며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요즘은 빠가사리탕은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간혹 시장에서 빠가사리를 파는 게 눈에 띄지만 선뜻 살 맘이 발동하진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내가 알던 빠가사리와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시중의 빠가사리는 준 메기급이지만 예전의 빠가사리는 미꾸라지보다 조금 더 컸을 뿐이다. 난 큰 사이즈의 식재료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이런 내 성향과 달리 대부분의 식재료들은 자꾸만 커지고 있다. 나로서는 끔찍한 일이다.

성인이 되어 추어탕으로 눈을 돌렸다. 빠가사리탕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날을 새울 것만 같아서다. 추어탕이라고 해서 다 같진 않다. 도시의 추어탕은 왠지 못미더운 구석이 있다. 때문에 그리 즐기지는 않는다. 이 증세는 남원추어탕을 맛 본 이후 더욱 심해졌다.

도시의 추어탕은 이제 식재료에 대한 불신에 더해 맛도 떨어진다는 병살플레이로 다가왔다. 남원 추어탕은 도시의 추어탕과는 확연하게 다른 레벨. 왜 사람들이 남원추어탕이라고 찬사를 보내는지 알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남원까지 내려가 맛보고 올 수도 없는 일.

자연산 미꾸라지의 색은 제각각이다. 인위적인 환경에서 자란 미꾸라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자연산 미꾸라지의 색은 제각각이다. 인위적인 환경에서 자란 미꾸라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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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을 내렸다. 추어탕을 직접 끓여 보겠노라고. 문제는 미꾸라지다. 업소의 추어탕이 못미더워 직접 끓이기로 한 마당에 시장에서 파는 미꾸라지를 쓸 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스럽게 지인이 자연산 미꾸라지를 구입해 보내주어 가장 큰 걸림돌이 해결되었다.

획일적인 색상의 양식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각양각색의 색상은 인위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런 게 자연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너무나 비자연적인 일들로 넘쳐난다. 심지어는 인간까지도. 획일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라는 우리의 학생들, 따지고 보면 그런 교육도 양식이나 다름없다.

추어탕에 대한 불신, 직접 끓이게 만들다

콜라겐은 열을 받으면 젤라틴으로 변한다. 미꾸라지 표면에서 상당량의 젤라틴이 나왔다. 추어탕이 보양식 뿐만 아니라 피부미용에도 도움을 주는 음식이라는 얘기다
 콜라겐은 열을 받으면 젤라틴으로 변한다. 미꾸라지 표면에서 상당량의 젤라틴이 나왔다. 추어탕이 보양식 뿐만 아니라 피부미용에도 도움을 주는 음식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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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와 함께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시래기는 양구에서 가져왔다. 배추도 넣을까 했는데 쌈용 배추 한 통 가격이 무려 3000원이나 한다. 예년 같으면 세 통에 2000~3000원 할까 말까 한 게 말이다. 배추는 포기했다. 대신 토란대와 숙주를 사고 홍고추와 마늘도 갈았다. 미꾸라지는 푹 과서 갈았다. 다시 끓기 시작하면서 된장과 고추장을 분량만큼 넣었다.

삶은 시래기도 적당하게 잘라 넣었다. 홍고추물과 마늘, 토란대, 숙주를 넣었다. 깻잎은 채썰어 넣고 파도 듬직듬직하게 썰어 넣었다. 들깻물도 부었다. 불을 내리기 전에 부추를 넣었다. 부추는 미꾸라지에 많은 콜라겐을 우리 몸이 흡수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추어탕의 맛은 된장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집된장이 들어갔다
 추어탕의 맛은 된장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집된장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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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두고 뭉근하게 끓인 다음 맛을 봤다. 민망하지만 자화자찬 할 수밖에 없는 맛. 재료에 대한 신뢰가 있고 정성을 다했으니 당연한 맛이다. 추어탕은 별다른 반찬이 필요치 않다. 그렇다고 아무 반찬이나 먹을 수는 없다. 해서 추어탕용 열무김치를 따로 담궜다. 자 이제 한 상 차리면 된다. 후배들을 불러놓고 추어탕 잔치를 벌였다.

나에게 있어 추어탕은 초피를 먹기 위한 음식인지도 모른다. 곡성에서 가져 온 초피가루는 시큼한 매운맛과 강한 풍미가 압권이다
 나에게 있어 추어탕은 초피를 먹기 위한 음식인지도 모른다. 곡성에서 가져 온 초피가루는 시큼한 매운맛과 강한 풍미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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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을 메인으로 열무김치, 간 마늘, 다진고추, 초피를 놓았다. 시큼하고 알싸한 초피의 풍미는 추어탕의 맛을 배가시켰다. 아니 초피를 먹고자 추어탕을 먹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초피귀신이다.

어쩌면 내가 추어탕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이유도 맘에 드는 초피를 내놓는 추어탕집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추어탕 한 그릇으로 가을을 먹은 기분이다.

"맛 어때?"
"......."

추어탕을 먹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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