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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축구경기 때 붉은악마 응원단은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을 펼쳐 보이며 응원을 했다. 일본 수군을 격파했던 이순신 장군처럼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처럼, 당당하게 일본에 맞서 승전을 거두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월드컵 출전권이 걸린 경기도 아닌데 뭐 그리 호들갑 떠느냐고 이의제기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과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까지는 보잘 것 없게 여겼던 국가가 발 빠르게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해서 뼈아픈 식민지 지배를 강요했던 역사가 빚어낸 결과이다.

 

식민지 지배를 강요당했던 '수난의 근현대사'의 경험 때문에,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대안으로 '위대한 고대사'를 부각시키고자 애썼다.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과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자랑하고 자부심으로 내면화시켰다. 그 결과가 한일전 축구 경기장에서 고스란히 재연되어 나타난다.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고대 국가들의 위대성'이 아니다. 고대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에서 벌어지는 물적·인적·사상적 흐름, 국가가 아닌 민중을 비롯한 한반도의 주민의 다양한 계층·집단이 서술 대상이다. 광개토대왕의 '칼'보다 고대 한반도 젊은 남녀들의 '야합(중매 없는 결혼)'이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책 속에서)

 

정복과 확장에만 최선의 가치를 두고 역사를 바라볼 경우, 정복당한 것은 씻지 못할 치욕이 되고, 정복한 것은 두고두고 자랑해야할 영광이 된다. 정복과 확장이란 관념에만 머무르다 보면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한다는 이분법적 시각의 포로가 되기 쉽다. 그래서 축구 경기에서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 지는 것은 치욕이고 이기는 것은 영광이기 때문에.  

 

단일민족이란 관념에 묻혀 살아온 우리들에게 박노자의 시선은 고맙기만 하다. 우리라는 걸 강조하면서도 정작 우리 내부에서조차 우리와 우리가 아닌 이들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데 익숙했던 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구별과 차별이 심화되면 적대적 감정이 된다. 적대적 감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뻔하다.

 

잘 알려있다시피 이스라엘의 근현대사 서술은 홀로코스트를 위시한 각종 '우리들의 피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유대 민족의 피해사(史)'를 너무도 강조하는 나머지, 고향 잃은 팔레스타인들의 비극을 생각할 틈이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 교과서 속 고대사는 말 그대로 '화려하다'. <출애굽기>, <신명기> 등 구약성서의 서술대로, 이집트를 떠나 결국 가나안(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을 유일신의 계시에 따라 '영웅적으로' 정복하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무용담,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의 위대한 대국 이스라엘, 다윗과 솔로몬의 수도였던 화려한 예루살렘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 속에서)

 

우리 또한 '수난의 근현대사'와 '위대한 고대사'의 도그마에 묻혀 살아오지 않았을까. 100년 전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형성된 문제의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만들어진 고대사가 아니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꺼꾸로 보는 고대사>는 그래서 가치가 있다.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불편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불편하게 느낄 만큼 진솔하게 우리의 모습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덧붙이는 글 | 박노자/한겨레출판/2010.9/12,000원


거꾸로 보는 고대사 - 민족과 국가의 경계 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2010)


태그:#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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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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