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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떠난 2010 세계 대백제전 기행
 가족과 함께 떠난 2010 세계 대백제전 기행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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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부터 꼭 가보겠다고 다짐한 2010 세계 대백제전. 그런데 그 계획을 하루 앞둔 12일 밤, 내게 황당한 사고가 일어났다. 지하철 입구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우당탕 소리를 내며 구른 것이다. 실수치곤 대가가 너무 컸다. 부랴부랴 찾아간 병원에서 다리 깁스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디 돌아다닐 생각 말고 집에서 푹 쉬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는 '부여 기행을 포기하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같이 가기로 했던 가족조차 '올해는 틀렸고, 내년 대백제전에 가자'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내년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란 게 참 사소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고 2010년에 꼭 해볼 계획 중 하나로 정한 목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소한 이유가 'NO'를 'YES'로 만들어줬다. 난 결정했다. 그냥 깁스를 한 채, 떠나기로, 붕대를 묶어주시던 의사 선생님도, 집에서 쉬라던 가족들도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안 데려가면 혼자서라도 가겠다'는 내 말에, 모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떠난, 2010 세계 대백제전 기행은 시작되었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전설이 깃든 궁남지에 가다

부여 궁남지의 다리
 부여 궁남지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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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궁남지에서- 가족사진 찰칵
 아름다운 궁남지에서- 가족사진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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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다리로 어쩌려고 그래?"

13일 부여로 가는 도중, 엄마의 폭풍 잔소리가 이어졌지만 나는 능청스럽게 자는 척을 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얼마전 군 제대를 해 걱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던 동생까지 "걸을 수 있겠어?"라고 묻는 것을 보니 내가 좀 무모한 일을 꾸미긴 꾸몄나 보다.

어쨌든 나의 무모한 결정에 2010 세계 대백제전을 기행할 가족 연합군(?)이 탄생했다. 외할머니, 엄마, 누나, 동생, 그리고 나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NBA 드림팀 부럽지 않은 '우리집 드림팀'이 제일 먼저 찾은 기행지는 부여의 궁남지였다. 사적 제135호로 등록된 궁남지는 백제의 찬란함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아름다운 연못과 멋진 건축물은 천년 전의 백제 왕국의 번영을 짐작게 한다. 이 아름다운 장소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무왕은 백제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친근한 인물이다. 바로 <서동요> 때문이다. 신라 선화공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서동요>가 그 노래를 만든 무왕을 정겨운 역사 속 왕으로 만든 듯하다. 그래서일까? 무왕의 흔적이 깃든 궁남지는 더욱 이채롭게 보인다.

아름다운 궁남지를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깁스를 한 다리로 꾸부정하게 걷는 모습을 남들이 본다면 분명 웃음을 짓겠지만, 난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들뜬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누나와 동생은 물론 엄마와 할머니까지 밝은 표정을 지으며 궁남지를 거닐고 있었다.

"할머니, 궁남지, 정말 아름답죠? 진짜 멋져요."
"그러게, 정말 보기 좋구나."

부여 궁남지의 모습
 부여 궁남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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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의 영화같은 풍경, 궁남지
 한폭의 영화같은 풍경, 궁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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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정원인 것 마냥, 난 생색을 내며 할머니께 궁남지 자랑을 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자랑이 부끄럽지 않은 곳이었다. 선화공주와 무왕의 아름다움 사랑의 전설이 남아있는 궁남지의 수려한 연꽃과 아름다운 연못을 봤다면 말이다. 한 폭의 수채화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멋진 풍경에 관람객들은 넋을 잃은 채, 궁남지의 가을 정취에 빠져들었다.

큰 연못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정박해 있는 돛단배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돛단배를 보며 과거 이 궁남지의 아름다운 정취를 떠올려 본다. 문득, 선화공주와 무왕이 이 공간에서 속삭였을 행복한 대화가 들려올 것 같다.

장엄한 5층 탑, 흥미진진 백제 문화단지

궁남지에서의 행복한 추억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2010 세계 대백제전이 열리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볼 것 많은 부여에서, 우리가 택한 곳은 백제 문화단지였다.

장장 17년간, 무려 7000억 원 가까운 예산이 투여된 백제 문화 단지의 모습은 그 긴 시간과 막대한 돈을 투자한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특히 전문가들의 철저한 고증으로 이뤄진 사비궁에서는 장엄함마저 느껴졌다.

2010 세계 대백제전이 열리는 백제 문화단지의 모습
 2010 세계 대백제전이 열리는 백제 문화단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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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 단지 내, 백제 관료들의 모습을 재현한 배우들
 백제문화 단지 내, 백제 관료들의 모습을 재현한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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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백제 문화단지에 도착할 때까지만해도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라고 생각했지만 한발 한발 걸으면서 이곳의 엄청난 크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다리 깁스를 하고선 도저히 다 돌아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참을 걷다가, 끝없는 크기에 놀라 발걸음을 멈추자, 마음 급한 동생이 외친다.

"형 빨리 와, 아직 전부 돌려면 멀었어."
"잠시만 기다려, 헉헉, 나 깁스해서 힘들다."

그런데, 잠시 발걸음을 멈춘 내 앞으로 한 무리가 행렬을 이루며 걷고 있었다. 흥미를 끄는 이들, 알고보니 백제문화단지 내에서는 백제시대 복장을 갖춘 배우들이 등장해 단지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호위 병사, 시녀, 관료 갖춘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었다. 그들은 어린 학생 관람객들의 얄궂은 장난도 자연스레 받아넘기며 2010 세계 대백제전의 청량제 역할을 했다.

틈 사이로 본 능사 오층석탑
 틈 사이로 본 능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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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능사 오층 목탑
 장엄한 능사 오층 목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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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과 성을 다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난 다시 힘을 내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 좋게 백제 문화단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때론 놀라고, 때론 감탄했다. 특히 높이 39m에 이르는 능사 오층 목탑은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된다.

번영했던 백제의 모습이 눈앞에 상상이 됐다. 이 능사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발굴돼 백제의 고고한 문화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소산성이 백제 패망의 아픈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이라면, 이곳 백제 문화단지는 강성했던 백제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볼거리가 많은 백제 문화 단지를 총총 움직였지만 워낙 크고 넓은 탓에 전부 돌아보지는 못했다. 사비궁, 능사, 고분공원, 생활문화마을, 위례성으로 나뉜 백제 문화단지에서 위례성을 못간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얼른 다리가 나아서 이곳을 꼭 다시 찾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은 그래서다. 그런 다짐 속에 백제 문화 단지 기행은 마무리 되고 있었다.

코스모스 아름답게 핀 백마강 주변, 색채의 향연에 빠지다

부여에는 모든 것이 백제의 문화였고, 백제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본 구드래의 풍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듯하다. 형형색색의 코스모스 꽃이 강 주변에 피어 황홀한 장관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백마강 주변에 끝없이 이어진 코스모스는 환상적이었다.
 백마강 주변에 끝없이 이어진 코스모스는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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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은 집으로 돌아가던 많은 관람객들을 구드래로 끌어 모았다. 햇살을 머금은 코스모스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깁스한 다리로 백제 문화단지를 배회하느라 축 지쳐있던 나도, 이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금 힘이 났다. 그래서 달랑 사진기 하나만을 어깨에 멘 채, 꽃의 호수에 풍덩 뛰어들었다.

꽃과 함께 찍는 기념사진,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만화 주인공을 빼닮은 허수아비와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덧 저녁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덧 기행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픈 다리 때문에 다소 무모하게 생각된 여행,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소중한 가족과 함께한 2010 세계 대백제전 기행은 내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고 있었다.


태그:#세계 대백제전, #궁남지, #능사, #구드래,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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