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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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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열린 한국은행(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기준금리를 현 수준(2.25%)으로 동결했다.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높인 이후 3달째 금리를 동결한 것이다. 이번 금통위는 한은이 '물가'와 '환율'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결국 한은은 '환율'을 선택했다.

최근 각국의 양적완화정책으로 외국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1110원대로 급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최근 4년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되돌리고, 5조 엔 규모의 추가 양적완화책을 발표했다. 미국은 최대 1조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 조치를 준비 중이다. 이러한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는 자국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환율전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브라질, 인도, 베트남, 태국 등의 국가들도 자국통화의 절상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각국이 추가적인 양적완화 조치들을 취하고, 환율방어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을 할 경우 금리차익을 노리는 외국 자금이 국내로 유입돼 추가 환율 하락이 발생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한은의 금리동결에 대한 근거로 볼 수 있다. 

서민들의 물가부담 외면

서울시가 배추값 폭등 대책으로 배추 30만포기를 시중가 70% 가격으로 재래시장에 공급하는 가운데 지난 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용답시장에서 1망(3포기)에 1만5000원씩 총 2700포기가 판매되고 있다.
 서울시가 배추값 폭등 대책으로 배추 30만포기를 시중가 70% 가격으로 재래시장에 공급하는 가운데 지난 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용답시장에서 1망(3포기)에 1만5000원씩 총 2700포기가 판매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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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금리동결로 한은은 서민들의 물가부담을 외면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9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대비로 3.6% 상승률을 기록하며 8개월 만에 다시 3%대로 진입했다. 특히 생선과 채소 등 신선식품지수는 전년동월대비 45.5%나 상승해 1990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일상생활에서 소비자들이 자주, 그리고 많이 구입하는 생활필수품을 대상으로 작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전년동월대비 4.1% 상승했다. 그만큼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 부담은 더욱 큰 상황이다.

물가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2~3개월 이후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고 하는 생산자물가는 9월 전년동월대비 4.0%상승했다. 농림수산품은 전년동월대비 29.6%, 전월대비 16.0% 급등했다. 또한 보통 1~2개월의 시차를 두고 생산자물가에 반영되는 수입물가(원화기준)는 9월 전년 동월보다 7.8% 상승했다. 6개월째 오름세다. 여기에다 인상된 전기요금, 가스요금은 향후에도 여타 물가의 상승을 부추길 것이다. 한은의 소비자물가 관리목표치가 3.0±1%인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물가가 관리 목표치를 조만간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향후 물가잡기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란 점이다. 이번 한은의 금리동결 논리대로라면 향후에도 금리인상은 어렵다. 여전히 세계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각국들의 '양적완화' 정책과 '환율전쟁'이 쉽게 누그러질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11월 3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최대 1조 달러의 양적완화 조치가 예상되고 있고, 각국들은 환율방어를 위해 추가적인 양적완화나 외환시장 개입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다. 특히 경기부양을 위해 별다른 정책 수단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일본, EU 등은 돈을 찍어내는 방법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회담은 공조보다는 각국들의 '환율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금리인상의 시기를 잡기 어렵다. 물가 부담을 계속해서 증대해 나갈 것이다.

더군다나 향후 세계적으로 양적완화 조치가 증가하면 할수록 물가상승 압력에 대응한 금리인상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점점 증가하는 상황에서 물가부담을 견디지 못해 금리를 인상하면 '금리인상→외국자본 유입→국내 유동성 증가→물가상승압력'으로 이어져 정책의 효과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환율전쟁이 펼쳐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외환당국은 수출대기업을 위해 인위적 고환율정책을 추구해 왔고, 그에 따른 서민들의 물가 피해가 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은은 또다시 물가냐 환율(수출경쟁력)이냐의 선택에서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여전히 서민들보다는 대외환경과 수출대기업들의 경쟁력 저하에 더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경제위기가 터졌을 당시 일단 수출대기업이 잘돼야 다른 부문도 잘 될 것 아니냐는 정부의 논리 연장선상에 있다. 

게다가 ▲ 환율은 여전히 2008년 9월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이전 수준(1000원 선)보다는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 현재의 외국자본 유입 흐름은 세계적 양적완화 조치에 따라 갈 곳을 찾아 헤매는 자본이 들어오는 것으로 금리가 0.25%p 오른다고 해서 들어오지 않던 자본을 들어오게 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한은의 금리동결은 서민들의 물가부담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결정이다. 

스스로 사면초가에 빠진 김중수 총재와 이명박 정부

물론 이번 금통위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준금리인상을 전망하는 측과 동결을 전망하는 측이 팽팽히 맞섰다. 물가부담과 환율급락, 외국자본 유입에 따른 변동성 증대 등 현 경제 상황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은이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이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까지 몰고 온데에는 한은과 정부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한국경제는 2009년 중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여 왔다. 그에 따라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풀었던 유동성을 회수해야 한다는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들이 일었고, 2009년 하반기에는 금리인상에 대한 주장들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었다. 한은이 금리를 인상한 것은 2010년 7월에 와서다. 물가부담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한국은행으로서는 좀 더 일찍 금리인상을 단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출구전략' 논의를 회피해 왔고 한은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률 수치에 집착했고, 6·2 지방선거, G20회담 등의 정치적 일정 때문에 열석발언권 행사 등 한국은행에 압력을 가하면서 금리 인상을 억눌러 왔다. 당시 정부의 확고한 의지 때문에 6·2 지방선거 이전에는 절대 금리인상이 없을 것이란 의견들이 대다수였다.

새로 임명된 김중수 한은총재는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최종적으로 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며 한은 총재는 이런 방향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는 게 필요하다"는 등의 한은 총재로서는 부적절한 발언을 하며 정부정책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상한 지난 9월 금통위는 예상과는 다르게 금리를 동결했다.

세계경제의 '더블 딥(이중침체)' 우려가 부각되긴 하였으나 그동안 한은은 더블 딥 가능성을 낮게 평가해왔었다. 결국 9월 금리동결은 정부의 8·29 부동산 대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정부가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정책을 내놓았는데 한은이 금리를 인상해 정부 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 이유로 물가부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금리인상을 뒤로 미루던 외환당국은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만일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조금씩 인상했다면 외부 경제여건에 대응하는 것도 한결 선택의 폭이 컸을 것이다. 물가상승 압력을 조금씩 줄여나갔다면 지금과 같이 '물가'냐 '환율'이냐의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외환당국의 실기는 국민들에게 피해로 돌아가고 있다. 물가상승 압력을 외면하며 기준금리를 장기간 동결해온 외환당국은 축적된 물가상승 압력이 거세지는 시기에는 적절한 대응을 못하고, 결국 수출대기업과 대외변수에 눈을 돌리고 있다. 또한 장기간 저금리 국면은 부동산 거품 조장 등 향후 한국경제에 또 다른 충격을 주어 국민들의 삶을 힘들게 할 것이다. 

외국자본 통제의 필요성을 보여준 한은의 금리동결

지난 9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추석물가 걱정이 많다"며 "장·차관들과 공공기관에서 추석 전에 현장을 많이 방문해서 점검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 9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추석물가 걱정이 많다"며 "장·차관들과 공공기관에서 추석 전에 현장을 많이 방문해서 점검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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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기준금리 인상-동결의 적절성 여부와 함께 한 가지 더 주목해봐야 할 것은 한은 정책의 효과다. 14일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하락세(원화가치 강세)를 나타냈다. 13일 1120.7원을 기록했던 원/달러 환율은 14일 9.75원 하락한 1110.95원으로 마감했다. 한은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환율이 움직인 것이다.

지난 7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한은 금통위는 7월 9일 기준금리를 0.25%p 인상했지만 외국자본이 국내 채권을 구매하면서 실질금리가 오히려 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7월 금통위가 있기 전(7월 8일) 3.94%였던 3년물 국고채 금리는 7월 말에는 3.80%까지 하락했다. 7월 8일 4.50%였던 5년물 국고채 금리 역시 7월 말 4.38%로 하락했다.

결국 외환시장을 좌지우지한 것은 한은의 금리정책이 아니라 외국자본의 움직임이었다. 현 시기 적절한 외국자본에 대한 통제장치 없이는 제대로 된 정책적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물환 한도 규제 같은 부분적 대응이 아니라 외국자본에 목을 매던 이전 시기의 생각들을 전반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브라질 정부는 투기적 단기자본 유입에 부과하는 금융거래세 세율을 2%에서 4%로 전격 인상했다. 한국정부도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과 투기자본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적극 모색해야 할 시기다.


태그:#기준금리, #한국은행, #김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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