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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수)

기지포해수욕장의 해안사구 관찰로
 기지포해수욕장의 해안사구 관찰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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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는 두 얼굴을 가진 섬이다. 태안반도 남쪽에 커다란 가지 모양으로 매달려 있는 이 섬은 400여 년 전만 해도 현재의 태안군 남면과 붙어 있던 육지였다. 그랬던 곳이 조선 인조 때 지금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 신온리 사이의 땅을 파내고 천수만과 서해를 연결하면서 현재와 같은 섬이 되었다. 전라도 지역에서 올라오는 세곡미를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안면도는 순수하게 말해서 육지이면서도 육지가 아닌, 또 섬이면서도 온전한 섬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이중의 성격을 가진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안면도는 또한 서쪽과 동쪽이 완전히 판이한 형태의 해안선을 형성하고 있어, 양쪽이 모두 같은 섬 안에 있는 해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서쪽은 줄잡아 13개 정도의 해수욕장이 있다.

가장 북쪽의 백사장해수욕장에서부터 가장 남쪽의 바람아래해수욕장까지 해안선을 온통 해수욕장이 차지하고 있다. 해안선 전체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반해 동쪽에는 해수욕장이라고 이름이 붙은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어떻게 보면 매우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안면도는 상당히 친숙한 섬이다. 그러니까 대체로 안면도는 이제 더 이상 보고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면도는 두 가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섬이다.

서해안을 줄줄이 사탕처럼 잇고 있는 13개의 해수욕장도 대부분 한두 가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백사장해수욕장을 다녀왔다고 해서, 그리고 꽃지해수욕장을 다녀왔다고 해서 안면도의 해수욕장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육지면서 육지가 아니고, 섬이면서 섬이 아닌 안면도

삼봉해수욕장' 소나무가 우거진 해변 자전거길
 삼봉해수욕장' 소나무가 우거진 해변 자전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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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해수욕장에는 해변에 우아한 자전거 길이 있다.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가는 넓은 길 위에 굵은 자갈을 깔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 약간 불편한 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길 위로 시도 때도 없이 모래가 날아드는 걸 감안하면 자갈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솔향기가 그윽하다. 길 위에 방금 떨어진 듯한 솔가지와 솔방울들이 덮여 있다. 자전거가 하늘을 가린 울창한 소나무 아래 자갈길을 달리다가 2/3 지점에서부터는 나무 데크를 깐 모래 둔덕 위를 달리기도 한다. 모래 둔덕 위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수 있게 배려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길은 바로 옆에 있는 기지포해수욕장까지 연결이 되어 있다.

이런 걸 보면, 해수욕장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일고 있는 걸 읽을 수 있다. 다양한 시설, 한두 가지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서는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제는 사람들이 단순히 해수욕만 즐기기 위해 해수욕장을 찾는 시대는 지났다.

밧개해수욕장. 검은 돌로 둘러친 곳이 독살.
 밧개해수욕장. 검은 돌로 둘러친 곳이 독살.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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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개해수욕장은 백사장 일부가 검은 바위로 뒤덮여 있다. 검은 돌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는 게 너무 거칠어 보여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해변으로 내려가 검은 바위 언저리 가까이 다가가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다른 세상, 외계에 있는 다른 땅 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검은 바위 위로 올라서자 독살체험을 하기 위해 쌓아 놓은 돌담이 눈에 들어온다. 독살은 해변 가까이 올라왔던 물고기들을 물이 빠질 때 가두어 잡기 위해 쌓아둔 돌담을 말한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 곳에서 주로 이용한다.

밧개해수욕장의 이색적인 풍경.
 밧개해수욕장의 이색적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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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물이 거의 다 빠진 상태다. 혹시나 돌담에 갇힌 고기가 있나 해서 가까이 다가가 본다. 운이 좋으면 한두 마리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모두 잡아갔으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바닷가 쪽 돌담에 둥근 시멘트 파이프를 연결해 물고기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곳으로 바닷물이 줄줄 새고 있다.

파이프를 막으면 물고기가 갇히고, 파이프를 열어놓으면 물고기들이 얼마든지 달아날 수 있는 구조다. 물고기 하나 애꿎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하려는 바닷가 사람들의 착한 심성을 읽을 수 있다. 이곳에는 뾰족하게 모가 나 있는 돌들이 많아 밟고 지나갈 때 주의해야 한다.

바닷가 해수욕장이라고 꼭 모래사장만 있으라는 법도 없다. 밧개해수욕장에 가면 모래사장밖에 없는 해수욕장이 조금 밋밋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른 해수욕장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은근한 매력을 가진 해수욕장이 밧개해수욕장이다.

'때'묻지 않은 건 좋은데, 너무 썰렁하네

바람아래해수욕장.
 바람아래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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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래해수욕장은 안면도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해수욕장을 거쳐 내려오는 탓에 위에서 방문객들을 모두 다 뺏긴 탓인지 지나치게 한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 썰렁하다. 심하게 표현해서 버려진 듯한 인상마저 든다.

그렇지만 이 해수욕장 역시 다른 해수욕장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보았던 해수욕장들이 대체로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양 옆에 바다로 돌출한 산줄기들로 에워싸여 있는 데 반해, 이 해수욕장은 그런 것 없이 사방이 확 트여 있는 형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걸 그대로 다 보여주고 말겠다는 듯 화끈한 모습이다. 바람아래라는 이름만큼이나 시원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해변이 심하게 어질러져 있다. 쓰레기들마저 나 좀 보란 듯 여기저기 화끈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조금만 가꾸고 돌보면 둘도 없이 훌륭한 해변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그런 '때'를 만나지 못한 게 분명하다. 겉모습이 아무리 더러워도 그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까지는 아직 때가 묻지 않은, 내가 보기에 안면도에서 가장 순수해 보였던 해수욕장이 바로 바람아래해수욕장이다.

13개 해수욕장을 모두 다 돌아보지 않았다. 더러 이정표를 놓치기도 했고, 더러는 시간상 그냥 건너뛴 곳도 있다. 꽃지해수욕장 같은 경우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너무 많아 알려진 곳이라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고 있었다.

해수욕장 말고 방포항 같은 곳 역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다. 방포항에서 빨간 꽃다리를 건너 꽃지해수욕장으로 넘어가면서 상당히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만큼 그림이 나오는 곳이라는 얘긴데, 너무 자주 봐 식상한 감도 없지 않다.

경찰이 자전거도 지켜주겠다, 두 다리 뻗고 잠들다

꽃지해수욕장. 할배, 할매 바위.
 꽃지해수욕장. 할배, 할매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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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해수욕장에서는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한 쌍의 다정한 연인을 보았다. 그 모습이 내가 본 연인들 중에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그 자리에서 세상에 모든 연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광경을 그려봤다. 정말 환상적이다.

꽃지해수욕장에 가면 수많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할배바위와 할매바위가 있는 곳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샛별해수욕장에서 자전거를 타던 연인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샛별해수욕장까지 가는 길도 그렇지만, 자전거를 타고 샛별해수욕장에서 장삼포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길이 무척 복잡하다. 뭐에 홀린 듯 산길로 들어섰는데,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는 방향을 찾을 수가 없다. 산 위에 삼지창 모양으로 갈라진 길에서 가장 오른쪽 길은 해안 초소가 있는 절벽길이고, 그 다음 길은 해안까지 내려가는 막다른 길이다.

모두 되돌아 나오는데 애를 먹었다. 마지막 세 번째 길은 가도 가도 마을이 나타나지 않아 이 길마저 나를 속였나 해서 속을 끓였다. 다행히 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을 만나 온전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람아래해수욕장에서 안면도 최남단에 있는 영목항까지는 77번 국도를 이용한다. 원래는 영목항에서 하루를 묵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숙박요금이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어서 마음을 접었다.

영목항에서 바라본 낙조
 영목항에서 바라본 낙조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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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저녁 6시 무렵, 아직 해가 지려면 1시간가량 더 여유가 있어 내친 김에 바로 안면읍까지 치고 올라간다. 대천에 숙박 시설을 예약해 놓은 상태에서 일정과 거리를 고려한 결과, 적어도 오늘 안으로 안면읍내까지는 가 있어야 한다는 계산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안면읍에서는 친절한 여관 주인의 도움을 받아, 낯짝도 두껍게 경찰서 현관 앞에 떡하니 자전거를 묶어두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 걱정 없이 맘 편히 잘 쉬었다. 당직 경찰관이 우리가 잘 보관할 테니 편히 쉬라며 웃었다. 자전거여행을 하다 보면 평소와는 다르게 친절한 경찰관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게 또 자전거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오늘 달린 거리는 78km, 총 누적거리는 1058km다. 오늘 드디어 1000km를 돌파했다. 꽃지해수욕장을 지난 뒤였다.

속도계.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가 1000km.
 속도계.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가 1000km.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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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면도, #삼봉해수욕장, #밧개해수욕장, #바람아래해수욕장, #영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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