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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에 벼가 익어가는 횡성의 시골마을
▲ 마을 들녘에 벼가 익어가는 횡성의 시골마을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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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매실 따고, 살구를 따 와선 언니가 자랑을 삼곤 했다. 여름이면 보리수랑 앵두가 익었다고, 가을이면 밤과 잣이며 다래와 머루가 지천이라고 했다. 요즘이 제철인 송이버섯을 따러 가자고 해서 함께 나선 곳은 강원도 횡성의 한 작은 마을, 형부가 나고 자란 고향마을이다.

어디든 시골이 사정이 비슷하겠지만 그곳 역시 대부분 노인들이 가구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양이었다. 언니 내외는 부모님이 사시던 빈 집을 찾아가기에 앞서 앞집 어르신들께 들러 인사를 하고 가져온 음료수를 건넸다. 크고 작은 개들이 집에 온 손님을 향해 연방 짖어 대면서도 꼬리를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한다.

요즈음 시골에선 개도 외로운 모양이다.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개 본연의 임무(?)를 팽개친 채, 저를 쓰다듬어 주는 낯선 손길에 마냥 좋아라 꼬리를 흔들어 댄다. 사람의 난 자리를 개가 채워주나 싶게, 시골은 개들이 많다.

시골에 사는 이들이 대부분 나이드신 분들이고 보니 그분들이 떠나고 나면 집들은 텅 비게 된다. 사람의 온기를 잃은 집은 쇠락하기 마련이다. 들보 역할을 하라고 긴 장대를 기둥에 받쳐 놓았으나 형부네 시골집 역시 조금씩 무너져 가는 걸 어쩌지 못한다.

가을을 장식하는 들꽃들도 한창이다.
▲ 들꽃 가을을 장식하는 들꽃들도 한창이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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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은 빈 집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봐주는 사람이 없는데 담장엔 보라색 나팔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쓸쓸하게 쇠락해가는 집 마당은 아직 건재하다. 형부가 가끔씩 찾아가 만지고 돌보는 까닭이다. 마당 앞에 심어둔 과실나무들이 집 주변에 온기를 더하는 듯도 싶다.형부가 직접 심었다는 나무들은 제법 아름드리 둥치를 뽐내며 서 있다. 가운데 밤나무를 사이에 두고 살구나무와 앵두나무 그리고 잣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마당을 지나면 봄이면 10킬로 가량이나 매달고는 한다는 매실나무도 보인다.

과연, 집 앞에 심어둔 잣나무 밤나무가 잔뜩 열매를 매달고 수확의 계절임을 알린다. 집 뒷곁엔 시어른이 살아 계실적 알뜰 살뜰히 가꾸셨을 너른 밭을 건너면 낙엽송 우람한 숲이 펼쳐졌다. 앞에서 바라보면 마을이 한눈에 다 내려다 보인다. 이곳이 삶의 터가 아닌 구경꾼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없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들녘이다. 삶의 신산은 그곳을 터전으로 삶아 땅을 일구고 가꾸는 이들의 몫일 것이지만 어찌 우리가 흙으로부터 온전히 분리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결국 흙에서 나는 것들이 아닌가.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는 마당에서 차 한잔씩 끓여 마시고 본격적인 하루 일정에 들어간다.

오늘의 목표는 송이다. 소나무 진액을 받아 먹고 자란다는 그 귀한 송이버섯을 따러 나선다. 쉽기야 할까 싶으면서도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품고 산을 오른다. 눈 감고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형부가 앞장선다. 등산의 목적이 아닌 채취의 목적으로 산을 오르는 일은 낯선 흥분을 동반하는 일이다. 그것이 꼭 송이가 아닐지라도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내 손으로 직접 따는 행위가 주는 그 기쁨을 누리는 일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었다.

제각각인 버섯이 종류도 참 많다.
▲ 버섯 제각각인 버섯이 종류도 참 많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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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송이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올 여름과 가을에 거쳐 비가 많이 탓인지 많은 종류의 버섯들이 숲에 창궐하고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버섯들의 모양도 제각각이고 색깔들도 다양했으나 그것들이 한결같이 꽃처럼 예뻤다.

버섯은 버섯을 오랫동안 다뤄본 사람도 헷갈리기 쉬운 법이라고 들었다. 하물며 버섯에 관한한 거의 문외한인 다음에야 먹을 수 있는 버섯을 분별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터였다. 그저 꽃처럼 예쁜 버섯을 만날 때마다 감탄사나 연발하면서 송이를 만나기를 기대할 뿐.

그러나 온 산을 다 뒤지고도 단 한개의 송이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실망이냐고? 천만에다. 감히 뿌리지도 않은 것들을 거두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저 산을 헤매고 다닌 일들이 재밌었다고 느낄 뿐이다. 송이는 따지 못했지만 몇 뿌리의 영지버섯을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영지버섯뿐이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향기로 유혹하던 더덕을 캤던 기쁨은 어쩌고? 전문가들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몇 뿌리였지만 더덕을 캐낸 순간은 감동, 그 이상이었다.

수확의 기쁨이 이러할까?
▲ 열매들 수확의 기쁨이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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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저온현상으로 냉해를 입은 것들은 밭에서 나는 것에 그치지 않은 모양이다. 매년 한자루씩을 따고는 했다는 다래가 올해는 흉작을 면치 못했다. 냉해를 피한 꽃들도 자주 내리는 비에 속절없이 떨어져 내리곤 했으니 수확이 신통치 않으리라 예상을 했단다. 우리보다는 처제 부부한테 뭔가를 보여주고 싶으셨던 형부의 실망감이 더 커보였다. 그러나 실망감은 곧 감탄사로 바뀌었다. 

잣을 한아름, 밤을 또 한아름 수확하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들이 잣송이 밤송이를 줍는 동안 언니와 나는 마당과 텃밭을 오가며 고들빼기를 캤다. 조금만 움직이면 먹을거리들이 널려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하던가. 고들빼기는 김치를 담아 먹어도 별미지만 한 번 데친후 물에 담가 두었다가 쓴물을 뺀 후, 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맛있다는 언니의 고들빼기 요리법을 배우는 사이, 마당엔 잣송이, 밤송이가 한 가득 쌓였다.

형부가 직접 잣송이 까는 시범을 보여주신다. 잣송이는 송진처럼 진득한 즙이 흘러 매우 끈적거렸는데 두 발을 이용해 겉 껍집을 벗겨내야 속에 있는 씨를 발라 낼수 있었다. 겹을 이룬 속껍질 속에 알알히 박힌 잣 열매를 하나 하나 빼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빼곡하게 층을 이룬 사이 사이에 어김없이 두개씩 박힌 잣을 빼 내는 동안 진하게 맡아지던 잣나무 향기는 또 얼마나 좋았던지 모른다.

잣 열매를 분리하는 일에 비하면 가시에 찔릴 염려가 있을 뿐인 밤송이 분리하는 일은 매우 간단한 편에 속한다. 산에서 따온 영지버섯과 더덕을 잣과 밤 옆에 나란히 놓고,그 옆에 고들빼기랑 대추 한웅큼을 나란히 놓고 보니 뿌듯하기 그지없다. 비록 송이버섯은 구경도 못했지만. 아마도 수확의 기쁨이 그러하지 않을까? 씨뿌리고 거두는 농부의 마음하는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횡성장이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1일, 6일장). 형부네 시골집을 돌아나와 횡성장으로 향했다. 오일장이 제법 크게 열려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포장되어 마트에서 팔리는 보기 좋은 것들이 아닌 들쑥 날쑥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싱싱함이 살아 있는 먹을거리들이 지천이다.

어라, 그토록 찾아 헤매던 송이가 시장판에 널렸다. 송이가 나올 철에 수확한다는 능이버섯도 여기 저기 좌판에 풍성하다. 모양으로 봐서는 먹고 싶은 마음이 그닥 생기지 않는, 능이버섯이 사실은 송이를 능가하는 맛을 낸다는 사실도 횡성장을 돌아다니가 알게 되었다.
1능이, 2송이라고 한다니 그 맛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름도 생김도 처음 보는 능이버섯이 시장 여기저기서 팔리는 걸 보면 강원도 산골에선 흔하게 나오는 버섯이 아닌가 싶다.

장을 기웃거리다 보니 허리가 아파서 쉬어야 겠으니 싸게 사가라고 고춧잎 파시는 할머니가 불러 세운다. 고춧잎 한보따리가 2천원이다. 잘 생긴 애호박을 천원 주고 샀다. 거의 횡재다. 그렇게 장을 한바퀴 돌고 나오니 두 손에 봉다리가 주렁 주렁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고해서 찾아 간 곳은 시장 깊숙히 자리 잡은 메밀전병을 파는 곳. 장날 구경할 때면 먹고 했다는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전통먹을거리다. 숙주나물에 묵은지 소를 넣은 메밀전병은 메밀의 담백함과 묵은지의 칼큼한 맛을 한번 먹어보면 또 찾게 된다고.

횡성장까지 여러가지 볼 거리들이 참 많은 하루였고 들고 갈것도 많은 풍성한 하루였다. 언젠가 농사지으며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 품었다. 이런 시골이라면 그 꿈을 실현시켜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흙은 노력한 만큼 돌려주는 법이어서 들판 가득 풍요로움이 넘치던 횡성의 작은 시골마을을 다녀오고 나서 든 생각이다.  산에서 들에서 수확의 계절을 알리는 수런거림이 들리는 풍요의 계절, 가을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마을을 다녀오면 어떨까, 싶다. 기획성 농촌체험이 아닌, 살아있는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풍성한, 가을이다
▲ 가을 풍성한, 가을이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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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횡성, #버섯, #들꽃,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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