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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혜화CGV에서 제5회 이주노동자영화제 개막식이 열렸다. 이주노동자 방송 MWTV가 주최하는 이주노동자영화제는 이주민들이 직접 찍은 영화를 볼 수 있는 뜻깊은 영화제다.

이번 영화제에선 이주여성, 이주아동, 인권 탄압 등을 주제로 한 23편의 작품이 선보였다. 그중 이주민이 직접 만든 작품은 열 작품이다. 작품들은 모두 30분을 넘지 않는 단편이지만, 한국사회가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이주민이 바라보는 한국사회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주민이 바라보는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를 통해 살펴봤다.

영상에 담긴 이주노동자들의 날선 푸념 "한국사람은 모두 다 사장이야"

로빈(방글라데시) 감독은 <형들의 이야기>라는 작품을 통해 주변에 있는 이주노동자 '형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내가 일하는 곳엔 사장이 한두 명이 아냐. 한국 사람은 다 사장이야. 운전기사도 사장이야."
"사장님이 욕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거야 그가 형편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지."
"한국에 살면서 재밌었던 적은 없어. 일만 하니까 재미있을 시간이 없지. 밤새도록 일하는 게 제일 재밌어."

<형들의 이야기>는 이주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한국사람들은 다 사장이야", "재밌었던 기억은 없어. 일만 했으니까" 등의 대사에서 이주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엿볼 수 있다.
▲ 로빈 감독 <형들의 이야기> 중 한 장면 <형들의 이야기>는 이주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한국사람들은 다 사장이야", "재밌었던 기억은 없어. 일만 했으니까" 등의 대사에서 이주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엿볼 수 있다.
ⓒ MW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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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형들'의 이야기에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웃다가도 가슴 한쪽이 쓰려오는 이유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현실이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형들의 이야기>는 전문 카메라 장비가 아닌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작품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어설프지만 인터뷰 대상자에게서 속이야기를 진솔하게 끌어내는 솜씨와 어두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미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미누 감독은 좀더 날카롭고 리얼하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파헤친다. 이 작품은 미누 감독이 지난해 네팔로 강제 출국되기 전 촬영한 작품이다.

'불법체류자'라는 말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낙인과도 같은 말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불법체류자라는 말은 쉽게 쓰이고 있으며 불법체류자를 범죄자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누 감독은 이주노동자의 처지에서 '불법체류' 문제를 파헤친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농번기인 겨울철에는 일을 구하기 어렵지만 구직기간인 2개월을 놓치면 '불법' 신세가 된다.

카메라는 이주노동자의 근무일지를 샅샅이 들춰가며 휴일도, 밤낮도 없이 일하는 노동현실과 고용허가제의 불합리한 요소를 알린다. 또한 당사자인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뿐 아니라 각 사회단체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담아내며 '불법체류' 문제가 노동자만의 책임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활동가 미누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버마에서는 어른 앞에서 팔짱을 끼는 것이 존경의 의미다. 영화엔 사소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큰 갈등을 빚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통과 대화의 중요성이다.
▲ 아웅틴툰 <건방지다? 존경하다?>의 한 장면 버마에서는 어른 앞에서 팔짱을 끼는 것이 존경의 의미다. 영화엔 사소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큰 갈등을 빚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통과 대화의 중요성이다.
ⓒ 배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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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어른 앞에서 팔짱 끼고 얘기하니? 건방지게..."

아웅틴툰 감독은 <건방지다? 존경하다?>를 통해 사소한 문화적 차이가 큰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재치있는 콩트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어른 앞에서는 팔짱을 끼지 않지만 버마에서는 어른 앞에서 팔짱을 끼는 것은 존경의 표시다. 아웅틴툰 감독은 "나라마다 문화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교육이나 대화가 별로 없어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며 "문화적 차이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싶어 영화를 찍었다"고 말했다.

어속타파 감독은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밴드 '스탑 크랙다운'의 여정을 따라간 작품 <어둠 속의 등불>을 내놨다. '스탑 크랙다운' 밴드는 '월급날', '한강', '자유' 등의 노래를 만들어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희망과 화해를 노래하는 그룹이다. 카메라는 이들이 밴드를 결성해 노래를 부르는 목적과 공연 모습을 담았다. '스탑 크랙다운' 밴드의 열정적인 공연 실황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삐다오, 몬니못, 럿하, 분튼 감독은 <공부하고 싶어>라는 작품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다함께 생활하는 기숙사에서 마음 놓고 책 한 권 읽기도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기 위해 이곳저곳 옮겨다니다 결국 주인공이 택한 곳은 화장실.

이주여성들 "발로 청소하는 것이 뭐 어때서? 한국식 문화만 강요하지 마세요"

이번 영화제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결혼 이주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이들은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남편 혹은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었던 경험을 영상 속에 발랄하게 담아냈다. 이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보며 웃을 수만은 없는 까닭은 이주여성들의 문화를 무시하고 한국 문화를 강요하는 영화 속 한국인의 모습에서 한국식 다문화의 한 단면을 엿보게 돼서가 아닐까.

"슈퍼에서 사온 빵을 아침으로 먹으라고? 빨리 밥해!" 영화 속 남편의 대사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이운실 감독은 <꿀맛>을 통해 사 먹는 아침식사에 익숙한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결혼 첫날부터 밥하는 것이 어색하고 쉽지 않지만 노력 끝에 지은 아침밥 맛은 '꿀맛'이다.

하은순 감독은 <환한 미소>에서 인사 문화의 차이 때문에 겪는 오해를 이야기한다. 필리핀에서는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것이 자연스런 인사법이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갑작스런 포옹에 당황한다. "너무 버릇없는 것 아니니?"라는 시어머니의 핀잔에 당황한 제니는 인사하는 방법을 배우며 시어머니와 화해한다. 시어머니도 그런 제니를 안아주며 다독여준다.

발로 청소하는 문화에 익숙한 이주여성은 발로 청소하는 것을 나무라는 시어머니가 이해되지 않는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자신의 나라를 모두 버리는 것이 옳은 것일까? 결국 주인공이 선택한 해법은 손과 발을 모두 이용해 신나게 청소하는 것!
▲ 제니 감독 <발청소>의 한 장면 발로 청소하는 문화에 익숙한 이주여성은 발로 청소하는 것을 나무라는 시어머니가 이해되지 않는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자신의 나라를 모두 버리는 것이 옳은 것일까? 결국 주인공이 선택한 해법은 손과 발을 모두 이용해 신나게 청소하는 것!
ⓒ 배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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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감독의 <발청소>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한국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한국의 주부로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발로 걸레질을 하다가 시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하지만 걸레질을 발로 하는 문화에 익숙한 주인공은 시어머니의 꾸지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과연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문화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배웠던 문화는 버려야 할까. 결국 주인공이 택한 해답은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손과 발을 모두 이용해 걸레질을 하는 것. 경쾌한 음악에 맞춰 신나게 발청소를 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일하는 틈틈이 영화 찍었다는 사실 놀라워"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양운석(72)씨는 "나도 해외 이주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었지만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1967년에 베트남에서 4년 6개월, 1971년도에 미국,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멕시코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했던 양씨는 "개인적으로 차별을 받은 적은 있지만 일하는 조건으로 차별을 받은 적은 없다"며 "멕시코에서 일할 때는 근무시간이 주 45시간을 넘기지 않았으며 시간을 넘겨 일했을 경우엔 오버타임 임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 조건 속에서도 영화를 찍었다는 점이 놀랍다"며 "작품 수준을 떠나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공동체 상영 문의: 02-776-0416



태그:#이주노동자영화제,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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