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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영화제, 여성영화제, 청년영화제, 대학생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영화제가 있다. 이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이주노동자영화제'가 그것이다. '뭐야? 그런 영화제도 있어?"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정도로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주노동자영화제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주노동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직접 한국사회에 말을 거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이주민 100만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림자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색깔을 가질 수도 없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자신들이 '그림자가 아닌 똑같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지난 4일 열린 이주노동자영화제 개막식에 30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해 86석 규모의 상영관을 가득 채웠다. 일부는 바닥에 앉거나 서서 영화를 봐야 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 이주노동자영화제 개막식 지난 4일 열린 이주노동자영화제 개막식에 30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해 86석 규모의 상영관을 가득 채웠다. 일부는 바닥에 앉거나 서서 영화를 봐야 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 MW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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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5일 이틀간 대학로 CGV에서 열린 제5회 이주노동자영화제에서 그들이 직접 찍은 영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림자에서 인간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이주민과 한국인이 함께 영화를 보고 문화를 즐기는 소통의 자리였다.

아웅틴툰 집행위원장은 "이주민들이 그림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빛이고 주인공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영화제를 마련했다"며 "이번 영화제가 이주민과 한국인이 마음을 터놓고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객으로 꽉 찬 영화제 개막식...대체 무슨 일이?

개막식 행사가 열린 4일 저녁 7시 30분에는 30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해 작은 상영관이 가득 찼다. 86석의 관람석이 꽉 차자 일부는 영화관 측이 준비한 방석을 바닥에 깔고 영화를 봤으며 나머지는 서서 관람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작품은 총 23작품이 상영됐다. '이주'를 주제로 이주여성, 이주아동, 해외 한국인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었다.

특별상영작으로 선정된 '어둠 속의 등불'은 2009년에 추방당한 미누 씨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미누 씨는 스탑크랙다운 밴드 보컬, 다문화 강사, 이주노동 활동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이주민과 한국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외에도 23편의 작품 중에는 ▲이주아동의 문제를 다룬 '세리와 하르',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온 네팔 여성 찬드라의 이야기를 다룬'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직전 쿠바로 건너간 조선인들의 현재 모습을 낭만적인 쿠바 음악과 함께 전한 '시간의 춤', ▲미국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블랙코메디 형식으로 전하는 '멕시코인이 사라진 날', ▲감독이자 배우인 마불 알엄이 한국으로 오는 과정을 그린 '러브인 코리아', ▲이주노동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이 별에서 살으렵니다', ▲인천의 명물인 바타르 씨를 찾는 과정을 그린 'The City of Crane' 등 작품성 있는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공부하고 싶어'를 만든 삐다오 감독(가운데)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삐다오 감독은 "여러 노동자들이 작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다보니 자기 생활을 가지기 어려운 점을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 이주민 감독과의 대화 '공부하고 싶어'를 만든 삐다오 감독(가운데)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삐다오 감독은 "여러 노동자들이 작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다보니 자기 생활을 가지기 어려운 점을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 배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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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꽃인 개막작은 이주민 감독들이 직접 찍은 영화들로 선정했다. 아웅틴툰 집행위원장은 "보통 개막작 하면 장편영화 한 작품을 상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 영화제는 이주민 감독들이 주인공이 돼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들을 모아서 상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주민 감독들이 직접 찍은 영화에는 이주민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사회의 맨 얼굴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려낸 이야기들에 관객들이 울고 웃으며 호응했다.

카메라를 든 결혼 이주여성들 "우리도 할 말은 하겠다"

이번 영화제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주민 감독들이 한국사회의 현실을 알리는 '방식'이다. 지난 영화제에서 어두운 현실을 진지하게 비판하고 알리는 영화가 많았다면 이번 영화제에서는 색깔이 밝아졌다. 비판정신을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전달방식을 택해 소통의 폭을 넓혔다.

또한 결혼 이주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결혼 이주여성인 제니, 이운실, 하은순, 사라 아브레군도 감독은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남편 혹은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었던 에피소드를 짧은 영상에 담았다. 이들의 영상은 '한국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다문화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아프리카 공연팀, 몽골 가수 가나 등 여러나라의 문화공연이 펼쳐졌다. 북소리에 흥이 난 관객들은 공연팀과 함께 춤을 추고 다양한 나라의 전통음식을 즐기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관객들 "공감되고 재미있다", "생각지도 않은 시선에 놀라"

영화제에 참가한 아지(왼쪽) 씨와 구마루 씨는 "현재 안상영상미디어센터에서 사진을 배우고 있는데 나중에는 영화를 찍고 싶다"며 "내년 영화제때 작품을 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우리도 영화 만들고 싶어요" 영화제에 참가한 아지(왼쪽) 씨와 구마루 씨는 "현재 안상영상미디어센터에서 사진을 배우고 있는데 나중에는 영화를 찍고 싶다"며 "내년 영화제때 작품을 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배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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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알마문(방글라데시) 씨는 "영화가 어떤 작품이냐를 떠나서 이런 영화제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깊다"며 '영화제에서 친구들을 만나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영화제에 참가한 동갑내기 친구 아지(스리랑카, 35) 씨와 구마루(스리랑카, 35) 씨는 "우리도 영화를 찍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아지 씨는 "현재 안산영상미디어센터에서 사진 찍는 것을 배우고 있는데 매우 재미있다'며 "앞으로 영상을 찍어서 다음 이주노동자영화제에 작품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구마루 씨는 "영화 내용이 이해가 되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고생이 건너가 달러가 올다'라는 작품을 만든 김선주(25), 정슬아(24) 감독은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20대 대학생의 시선으로 영상에 담았는데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돼서 기쁘고 뿌듯하다"며 "영상을 찍기 전엔 이주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현주(25)씨는 "영화제 내용이 알찼고 생각지도 않았던 시선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며 한국사회에 이런 면이 있었는지 새삼 알게 됐다는 반응도 있었다. 양운석(72) 씨는 "나도 멕시코, 월남, 미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생활한 적이 있지만 욕을 듣거나 임금체불을 당한 기억은 전혀 없다"며 "영화를 보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주노동자영화제는 보다 많은 이주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이주민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지역상영회를 열 계획이다.

지역상영회는 ▲오는 12일 마석(남양주시 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을 시작으로 ▲19일 김포(이주민지원단체혐의회), ▲10월 3일 포천(포천 이주민지원센터 나눔의집), ▲10월 10일 안산(외국인주민센터), ▲10월 15일 고양(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열리며 ▲10월 17일 부천(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상영회를 끝으로 내년을 기약한다.


태그:#이주민, #이주노동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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